•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이가 적군의 총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지만, 소년의 떨리는 손에선 자꾸만 총알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사이 허공에서 슬피 울던 하나의 눈빛이 생명을 잃었다. 폭음에 찢겨져 나간 고막에서 피가 흘러내리지만, 그 어떤 아픔도 느낄 수 없다. 두려움과 함께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을 쏟아낼 겨를도 없이 “시체 치워”라는 매정한 한마디가 지금 소년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투신. 전쟁 시퀀스에 가장 공을 들였다는 이재한 감독의 말처럼, 완벽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은 탄성을 자아낸다.

  •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쉼 없이 전쟁터를 뛰어다니지만, 어지럽게 느껴지지 않은 카메라 워크와 커다란 스크린을 수 놓은 피와 불꽃의 잔인한 아름다움은 전쟁미학의 진수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영화의 주인공인 학도병들이 등장하기 전, 배우들의 대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바로 그때까지가 영화의 절정이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제작된 영화 ‘포화속으로’는 낙동강 지지선과 포항을 지키기 위해 교복을 입고 전쟁에 뛰어진 학도병 71명의 전투를 그린 영화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故 이우근 학도병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던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호언장담으로 기대를 모았던 최승현의 연기 역시 설명하기 힘들다. 연기 경험이 부족한 사람치고 이 정도면 잘했지라고 칭찬해 줄만도 하지만, 한국전쟁을 담은 대작에 주연으로 내세울만한 흡입력을 가진 연기를 보여줬다고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다.

    또한, 강렬한 이미지만을 강조하며 매끄럽지 않은 연기를 선보이는 권상우 역시 극의 긴장감을 와해시킨다. 다른 학도병들 역시 마찬가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전쟁에 서툴다고 해서 그들의 연기 또한 눈에 거슬릴 만큼 서툴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스토리의 총체적인 부실이다.

     

  •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학도병이라는 참신한 영화적 소재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71명의 학도병들은 그저, 미성숙한 군인 그 뿐이었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서는 학도병들.

    71명의 숫자만큼, 71개의 사연이 존재해야 했다. 물론, 2시간 안에 그들의 모든 사연을 들어 줄 시간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터에 나오게 된 과정에서의 아무런 드라마적 요소가 없다는 것은 지나친 방관으로 비춰진다. 

  •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 영화 '포화속으로' ⓒ 뉴데일리

    ‘감동 실화’라는 포스터의 글귀에 자꾸만 눈이 멈춰 선다. 아무리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총을 겨눠도 상처를 입힐 만큼의 이유가 없던 장범과 갑조의 대치가 그 어떤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없게 했고, 서로 우정을 쌓아갈 시간조차 없던 이들이 누군가를 위해 총알받이가 된다는 설정 역시 공감대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오마이”라는 단어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담아냈다지만, 그 역시도 어중간한 느낌이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가장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도저히 찾아낼 수 없다.

    상상을 넘어서지 않는 요소들. 어디서 본 듯한 얕은 감동의 장치들을 억지워 끼워넣은 듯한 태도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진지한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고, 웃어야 할 타이밍이구나 싶을 때 아무도 웃음을 터뜨리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된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냐는 지적에 감독은 “최대한 이미지적으로 인물들의 배경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즉, 함축된 영상의 미로 영화에 승부를 걸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누가 ‘스토리’ 없는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름다운 화면을 담아내기로 유명한 감독은 또 다시 자신이 만족할 만한 한 편의 그림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는 그 그림은 관객의 입장에서 한 없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