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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세계의 관심은 이달 말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모아져 있다.
    김정일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계기에 6자 회담 복귀를 포함하여 북한 핵 문제에 모종의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가 감정일에게 압력을 가하고 김정일이 중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핵 개발 계획 포기를 약속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그보다 4월12-13일 핵 안전 정상회담과 5월3-28로 예정된 2010 NPT Review Conference 를 앞두고 중국과 북한은 북한 핵 문제를 세계의 핵 문제라는 더 큰 테두리에서 접근하려 할 것이다.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핵 군축회담을 요구하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중국은 북한과 함께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려 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핵무기 감축회담에 앞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먼저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도 주장할 것이다.

    작년 10월 원자바오 중국총리가 김정일과 만나 김정일이 6자 회담에 복귀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공언하면서 관련국들에게 북한과 대화를 가질 것을 권유한 이후 5개월이 지났다.
    원자바오 총리의 권유에 따라 미국은 12월에 보즈워스 특별대표를 평양에 파견했고, 한국은 10-11월에 싱가폴과 개성에서 북한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6자 회담에 복귀하지 않았고, 북-미, 남-북 접촉에서도 아무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조해진 중국은 2월 김정일을 설득하기 위해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재차 파견했다.
    김정일은 지방 시찰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 피일 면담을 미루다가 왕자루이의 2월8일 함흥에서 왕부장을 면접했다.
    그러나 후지 타오 주석의 구두 메시지에 대한 김 위원장의 답변은 의례적인 것에 불과했다.
    신화사 통신은 김정일이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일관된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6자 회담의 재개를 위해서는 당사국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작년 10월 김정일이 원자바오 총리에게 말한 내용이나, 12월 방북한 보즈워스에게 북한 고위 관리들이 언급한 내용과 같은 수준에 불과하다.

    어떻게 김정일이 후진타오 주석의 메시지를 이처럼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가?
    그래도 중국이 북한을 응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요약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한계에 달했거나, 아니면 무슨 이유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 이거나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6자 회담이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실질적, 효율적 방법이라는 가설을 재 검토할 때가 되었다.

    북한이 작년 5월 제2차 핵실험을 필두로 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 착수 선언, 재 처리한 플루토늄의 무기화 위협 등 오바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선 지 10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취한 대응 조치는 6월13일 채택된 안보리 결의 1874호 하나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거나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도발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관련국들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수출과 핵무기 제조기술의 대외유출을 저지하는 공동전선을 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난 1년 동안에 북한의 무기수출을 통한 수익을 80%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북한의 대외관계를 마비시켜 머지않아 북한 지도부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 갈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6자 회담 복귀가 늦어지고 있고 그것이 의장국인 중국의 의지와 지도력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는 중국 때문에 다른 회담 참가국들은 경제 제재 등 압박정책은 뒷전에 미룬 채 중국의 북한 설득 노력이 성과를 맺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북한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 행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국과 동북아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이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중국의 정세 분석가들은 미국이 불량국가들의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 위험을 과대 포장해서 선전했다고 주장했다.

    안보문제 연구기관 Nuclear Threat Initiative에 의하면, 심지어 많은 중국인들은 미국이 불량국가들의 미사일 위협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망 개발과 전개를 위한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은 북한의 핵 무기와 미사일을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을 견제할 대응력의 일환으로 간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북한 핵 개발계획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2005 NPT Review Conference 에서 행한 중국측 수석대표 Hu Xiaodi의 연설에도 반영되어있다.

    첫째, 중국은 6자 회담의 목적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다.
     
    둘째, “핵 문제 당사국은 북한과 미국”이며, 중국의 역할은 양국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중국의 임무는 북한에게는 “조기에 회담에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미국에게는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 중국이 6자 회담에서 어느 편에 서있는 지 명백해졌다.

    본질적으로 북한 핵 문제는 미-북간 양자문제가 아니며, 핵 선진국 미국과 이해관계가 다른 핵 중진국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하는 6자 회담을 통해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북한 핵 문제는 동북아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인 동시에 전 세계 핵확산 방지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앞으로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엔의 핵확산 방지 체제를 점검하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하여 4월12-13일간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핵 안전 정상회담과 5월3일부터 28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는 5년마다 열리는 유엔의 NPT Review Conference 는 핵확산 방지 체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과 이란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과거에 NPT 를 위반함으로 해서 국제사회에 핵무기를 이용한 테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모두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려면 핵무기 보유국은 물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도 일치 단결하여 기존 NPT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