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밤 12시가 지난 뒤에 한 교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학교 앞에 학원차가 줄줄이 열을 지어 학생들을 가다리고 있더라. 야간학습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다시 학원 수업을 위해 실어나르려는 차들이었다. 순간, 이런 게 교육인가 싶더라. 정말 출구가 안보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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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퀸즐랜드대 정재훈 교수 ⓒ 뉴데일리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 있는 퀸즐랜드 대학교 언어 및 비교문화학부 정재훈 교수(52)가 4일 창립기념식을 치른 한국-퀸즐랜드 비즈니스 협의회(QKBC)를 만든 몇가지 계기 중에는 한국의 숨막히는 과열 입시전쟁을 목격한 경험이 포함된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경쟁에 내몰리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공부를 하고서도 결국엔 청년 실업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출구가 안보이는 한국 현실에 길을 열만한 것이 없을까.

    "이럴 바에는 우리 학생들을 기회가 무궁무진한 호주로 보내면 어떨까 싶더군요. 호주는 한마디로 돈을 얼마 쓰지않고 평생을 보장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꼭 한국에서 대학을 가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호주에서는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영주권을 받는다면 공짜로 공부하고 자식 교육까지 무료로 시킬 수 있거든요”

    한국인으로 오랫동안 호주에 살면서 한국과 호주 양쪽에 다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던 터. 호주 인구는 2200여만명. 선진국답게 생활은 풍족하지만 문제는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수적인 직업인을 국내 인구로만으로는 채울 수 없어 필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호주가 꼭 필요로 하는 부족직업군에 종사할 젊은이를 훈련시켜 현지에서 취업시키면 한국 학생들은 취업난을 해결하며 윤택한 인생을 누릴 수 있고 호주로서도 긴요한 인력을 부족함없이 쓸 수 있어 두 나라가 서로 이득이다.

    정 교수는 평소 ‘100만 프로젝트(M-Project)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한국 젊은이 100만명을 호주에 데려온다는 얘기다. 호주 인구의 5%쯤이면 대략 110만여명. 이런 숫자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라면 흔적도 없는 인구라고 할 수 있지만 호주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정도 숫자라면 호주 사회에서 무시못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크기다. 수백만명을 넘어선 한국의 청년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묘책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학생이 4만5000명 정도 와 있는데 호주에서는 유학생이 주 20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방학땐 풀타임도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학비를 다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는 풀타임 일을 허용하므로 부인을 공부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 ▲ <span style=지난 4일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QKBC 창립행사 ⓒ 뉴데일리 " title="▲ 지난 4일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QKBC 창립행사 ⓒ 뉴데일리 ">
    지난 4일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QKBC 창립행사 ⓒ 뉴데일리

    정 교수에 따르면 부족직업군쪽의 기능을 가진 사람은 호주에서 취업 걱정을 할 일이 없다. “타일공을 예로 들면 숙련공은 한달 수입이 무려 2만4000만 호주달러 정도 됩니다. 일년에 10개월만 일하면 24만달러. 대충 우리 돈으로도 연봉 2억4000만원이죠. 마스터 타일공은 1년에 10개월을 휴가로 보낸다 해도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전문의는 연봉 25만 호주달러 정도 되죠. 교육 정상화, 취업난 해소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면 잘 하는대로, 또 기능에 관심있는 사람은 그들대로 전문 분야에서 경제적 여유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물론 이곳으로 처음부터 공부를 하러 오는 것도 유리하다. 이곳에서 일반 대학 공부를 하는 데 드는 학비는 대략 주당 250~350 호주달러, 10주면 많아야 3500달러로 1년이면 1만~1만4000달러가 든다. 기술이나 기능대는 대략 1만달러. 한국과 그리 차이나는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졸업 뒤에는 전공에 따라 선택의 기회가 훨씬 넓다. 호주에서는 한국 대학의 학점을 인정하므로 전공의 심화과정만을 들을 수도 있다. 영주권을 받으면 박사과정까지 무료로 공부도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던 내 조카는 호주에서 필요한 부분을 더 공부하고 지금은 회계사일 하고 있다. 또 대학서 호텔경영학 했던 취사병 출신 친구는 요리공부를 해 호텔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 <span style=지난 4일 열린 QKBC 창립행사에서 담소 중인 정재훈 교수(가운데) ⓒ 뉴데일리 " title="▲ 지난 4일 열린 QKBC 창립행사에서 담소 중인 정재훈 교수(가운데) ⓒ 뉴데일리 ">
    지난 4일 열린 QKBC 창립행사에서 담소 중인 정재훈 교수(가운데) ⓒ 뉴데일리

    “평소 한국 교욱상황을 관심있게 봤는데 많은 사람이 내게 호주 유학 및 취업관련 상담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호주 제도를 잘 이용하면 되겠다 싶었죠. MD/PhD 등의 과정에서는 자녀 학비가 면제됩니다. 애를 유학보낼 돈으로 자기 공부하고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 있는 셈이죠”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주고 정보제공 하려고 QKBC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호주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는 너무 부족하다. 한국에 대한 호주인의 인식은 형편없고 인적 교류면에서 불균형이 심각하다. “대학생간 교류가 특히 그러한데 지난 2008년 한국 학생 4만5000여명이 호주로 유학왔지만 같은 기간에 호주 학생은 겨우 100명이 한국으로 갔습니다” “호주의 대외 교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데도 호주는 한국을 거의 ‘졸(卒)’로 보는 실정입니다. 한국은 호주의 세 번째 큰 교역 파트너죠. 무역흑자로만 따진다면 호주는 한국과의 무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큰 흑자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 ▲ <span style=반주원씨 ⓒ 뉴데일리 " title="▲ 반주원씨 ⓒ 뉴데일리 ">
    반주원씨 ⓒ 뉴데일리

    "호주인들은 한국 하면 북한과 비슷하게 취급할 정도로 한국 위상이 너무도 낮죠. 호주 학생들이 한국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일도 드물고 한국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국을 전혀 모릅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데도 채택하는 수가 점점 줄어듭니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라면 한국과 호주간의 인적 교류는 답보 아니면 축소될 뿐입니다”

    정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양국간의 인적교류, 그중에서도 젊은이들간 교류를 확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걸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한 조직이 QKBC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자신이 살고 있는 퀸즐랜드주에서부터 한국과의 교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의도였다. “상호 혜택을 입는다는 호혜의 원칙에서라도 호주도 한국에 내놓을 것은 내놔야 합니다. 그러자면 실무정책 결정자가 한국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그 중요성은 알지만 이걸 실행에 옮길 구심점이 없습니다. 그동안은 우리끼리 걱정을 교환하는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호주 사람들도 같이 하자는 게 QKBC의 취지죠”

  • ▲ <span style=한정아씨 ⓒ 뉴데일리 " title="▲ 한정아씨 ⓒ 뉴데일리 ">
    한정아씨 ⓒ 뉴데일리

    물론 QKBC가 이런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퀸즐랜드 경제인들에게 한국과의 사업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양측 정부 혹은 재계간의 상호 이해를 위한 만남도 주선할 계획이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각종 컨퍼런스와 세미나 등을 수시로 개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퀸즐랜드 및 호주 경제가 한국에 본격 진출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려 한다. 한국에서의 구체적 사업요령을 알리는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4월에는 창원에서 '퀸즐랜드 데이'도 열 계획이다. 이 행사에는 QKBC 멤버는 물론 퀸즐랜드의 정책결정 담당자, 경제 및 교육계 인사, 상공인 등이 방문해 한국 진출을 모색할 예정이다.

    "내가 무슨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거죠. 하지만 이 사업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 일은 내 개인 차원이 아니라 QKBC가 조직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제 협의회가 자리도 잡혔으니 내 전공 분야가 아닌 쪽으로는 다른 전공자를 영입해서 같이 일할까 생각 중입니다"

    현재 QKBC에는 사무를 총괄하는 반주원 실장과 재무회계를 담당하는 한정아 실장, 현지인 아담 쉐스씨 등이 정 교수와 뜻을 같이 하며 일하고 있다. 한 실장과 반 실장은 두 사람 모두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수년 전부터 호주에 자리를 잡고 한국 호주 양측의 교류 증진과 상호 이해에 애쓰고 있다.  QKBC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생각 역시 정 교수와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호주에 살면서 한국과 호주, 퀸즐랜드 모두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길이 바로 우리가 일하는 QKBC라고 생각한다"며 보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