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이 486 되어 이제는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의 중진으로 차고 들어 앉아 세(勢)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최근 방송계, 사법부 등에서 목격된 일련의 돌출적인 사태와 사건들이 모두 그 탓이라고 했다. 반미, 친북, 반(反)대한민국 주류(主流)로 설명할 수 있는 그들의 비(非)정통적 사조(思潮)가 이제는 단순한 저항 운동 아닌 권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들의 사고(思考)가 매우 조잡하다는 데에 있다. 그저 좌파적인 정도인 것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53번째 주(州)인가...?” 하는 정도의 무식하다면 무식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민족주의적인 정서에서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해 반감을 느낀다고 해도, 만약 한-미 동맹이 없었다면, 그래서 수 십년 전에 서울이 이미 인민공화국 수중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과연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었겠는가를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한-미 동맹을 일제 시대를 보는 것과 똑같은 잣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우선 웃기는 노릇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선진국도 후진국도 없이 일제히 똑같은 수준에서 일렬 횡대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아이티에 지진이 나면 미국과 한국이 구호대를 파견하게 되어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이티와 미국이 처음부터 똑같았기를 바라는 그 근본주의적 신앙이야 이해하지만, 그럴 방도는 없는 것이다.

     386은 198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 보는 눈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도 한다.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세상이 달라질수록 생각이 발전적으로 바뀌는 게 정상이다. 속이 더 티어지고, 외곬에서 벗어나고,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줄 알고, 내 생각이 과연 절대로 옳은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성숙이라는 것이다. 그게 인생을 사는 구도자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386에게선 그런 걸 찾아볼 수 없는 모양이다. 지적(知的) 인격적 성장, 성숙이 정지됐다고나 할까.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덮어 씐 외부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를테면 빙의(憑依) 현상이다. 나 아닌 다른 X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그 ‘다른 X’이란 바로 신학(神學)이나 종교도 아닌 것이 마치 신학이나 종교 같은 행세를 하는 케케묵은 구(舊) 이데올로기의 찌꺼기다. 그들은 결국 유사종교의 신도라 할 수 있다. 난감한 것은, 유사종교 신도들은 어김 없이 스스로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 구세주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임한다는 점이다. 소통 불가능한 철벽이 가로 놓여 있는 꼴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그런 부류와 아직도 그들이 80객이 되는 30년은 더 부대끼며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곤혹스럽다. 그 아랫 세대가 이제는 386은 가라며 걷어찰 만한 시점도 됐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