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간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전교조 기관지인 ‘교육희망’을 통해 자기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는‘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에서 “지난 12월 첫날로부터 시작된 저의 시련과 상처는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프기만 합니다. 상처와 충격으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하루하루가 악몽의 나날이었으며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숱한 고통의 순간들이 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고 일상의 삶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날을 보내면서 체중은 급격히 저하되었고 탈모와 시력 저하, 정서 불안, 대인기피증까지 겪게 되어 10개월이 넘게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여전히 저는 예전의 삶을 찾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현재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그 동안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 저의 진정어린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지속적으로 전교조와 소통을 했고, 진심어린 조직의 해결 의지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통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저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과 조직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더 아파해야 했고 이제는 조직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직은 피해자인 저를 우선시하는 해결이 아니라 늘 조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라고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조직은 저를 더욱 방치했는데 갑자기 10월 21일자 교육희망에 징계자 3인과 위원장의 사과문을 냈습니다. 조직은 사과문조차 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기관지에 내보내는 가혹함으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사과문으로 자기 신분이 노출돼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직도 해결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조직이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여 저의 상처가 치유되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조합원이었고 지금도 조합원이며 앞으로도 조합원의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희망을 이루어줄 조직이라 믿고 믿으며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편지 전문]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피해자입니다
    전교조 조합원 동지들께 드립니다

    “지난 10월 21일자 교육희망에 징계자 3인과 정진후위원장의 사과문이라는 형태의 입장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저에게 어떤 한마디 고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과문이 실렸고, 그것을 교육희망을 통해서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희망에 저의 입장글도 게재될 수 있도록 지지모임을 통해 요청하였고, 이렇게 교육희망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저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2월 첫날로부터 시작된 저의 시련과 상처는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프기만 합니다.
    상처와 충격으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하루하루가 악몽의 나날이었으며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숱한 고통의 순간들이 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고 일상의 삶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너무나 아파서, 상처의 충격을 한시라도 잊을 수 없어서, 집으로 학교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시달리면서, 때로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때로는 비웃는 웃음으로 바라보는 동료교사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10번 정도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으면서, 용서하고 합의해 달라며 집과 학교로 찾아오는 가해자 김**의 배우자를 보면서, 저의 고통보다는 징계자 3인을 용서하면 안되냐고 부탁하는 주변 동지들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동지와 조직의 외면으로 받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 잠도 잘 수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날을 보내면서 체중은 급격히 저하되었고 탈모와 시력 저하, 정서 불안, 대인기피증까지 겪게 되어 10개월이 넘게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여전히 저는 예전의 삶을 찾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전교조, 제가 즐겁게 활동했던 조직과 함께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바람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저는 외부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부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조직 상황이 더욱 더 어려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야 했던 상처가 너무 컸었고, 그 때 누구보다도 저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해 주기를 바랐던 동지와 조직으로부터 제대로 된 위로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저의 이 고통이 저만의 고통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겪은 상처의 본질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 여성 활동가들이 조직으로부터 동지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앞으로는 더 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내 자신이 괴롭고 힘들어도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서 잘못된 조직 내의 몰성적이고 성폭력적 환경과 문화를 바꿔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진정으로 조직을 살리고 나 자신도 살고 나와 같은 피해자를 살리는 길이다." 라는 제 자신과의 약속을 했습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 자신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 저의 진정어린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지속적으로 전교조와 소통을 했고, 진심어린 조직의 해결 의지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통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저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과 조직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더 아파해야 했고 이제는 조직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직은 피해자인 저를 우선시하는 해결이 아니라 늘 조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
    조직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고, 조직 내에서 해결하자는 조직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1월 사건진상조사위가 구성되고 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저는 조직이 제대로 해결해 줄 거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언론에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면서 일파만파로 사건은 커져만 갔고 조직 보위에 급급했던 조직은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기보다는 사건의 본질을 과도하게 감추려고만 했기에 사건 초기부터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조직이 스스로 막는 크나큰 과오를 범했고, 그 결과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원장과 세 번의 직접적 만남을 가졌고 대리인, 지지모임을 통해 여러 번 저의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저의 상처와 고통이 치유받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조직 내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조직이 나서서 제대로 해결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저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사건의 실체를 더욱 왜곡하여 만들어진 말들이 퍼져나가 오히려 제가 조직을 해하면서 징계자 3인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파렴치한 가해자가 되어버려 본부 홈피에 끊임없이 저를 비방하는 글들이 난무했고 급기야 징계자 3인을 구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을 크나큰 아픔으로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던 저는 그저 뼈를 깎는 아픔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저의 심정을 호소할 그 어떤 통로도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는데도 피해자인 저를 그토록 심하게 비방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저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징계자 3인의 징계위원회, 대의원대회에서의 안건 논의 등을 앞두고 위원장은 저와의 만남을 요구하였고 저는 위원장과 만나서 저의 요구를 전했고 한 번만이라도 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저의 요구는 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무참하게도 짓밟혀버려졌습니다. 또, 조직은 징계위원회의 1심, 재심에 대해 제가 알아야 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저는 매번 결과만 통보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저는 점점 더 조직을 신뢰할 수 없었고 조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난 8월 경, 저의 고통을 지켜보기만 했던 제 소속 지회 집행부는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결의로 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저와 지회집행부는 장시간 논의를 하여 위원장과 징계자 3인의 공식적인 사과와 징계자 3인의 자숙 기간을 둘 것을 요구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며 지회집행부는 위원장과 간담회를 하면서 요구 사항을 전달했고 위원장은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면담 이후 시간이 흘러도 조직에서는 그 어떤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다리고만 있던 지회장이 조직에 연락을 취하며 공식사과문을 간담회에서 논의된 대로 조직에서 빨리 해결줄 것을 요청했지만 조직에서는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던 중 대대가 열렸고 대대에서 저의 요구를 담은 안건이 부결되면서 결국 제 소속지회집행부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대에서 안건 부결 이후, 조직은 저를 더욱 방치했었는데 갑자기 10월 21일자 교육희망에 징계자 3인과 위원장의 사과문을 냈습니다. 조직은 사과문조차 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교육희망이라는 기관지에 내보내는 가혹함으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
    위원장은 사과문에서 "사건 처리과정에서도 나름대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라면서 "결과적으로 피해자 선생님이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건 해결의 책임이 오히려 피해자인 저에게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셨습니다. 이것은 저의 간절한 요구를 한번도 동의하지 않았던 위원장과 조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징계자 중 1인은 사과문을 통해 제 신분을 노출시키는 우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대인기피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징계자 3인은 사과문을 통해 "잘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조직을 살리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과는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스스로 바라보고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아파했을 때만이 사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과문에는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에게 했던 가혹한 말과 행동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기 구제에 급급해 했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징계자 3인은 저와 함께 했던 동지였습니다. 그런 동지에게 상처받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저 저만의 마음이었습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동안의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정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조합원들이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과 동지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과 동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두 아프고 힘들지만 이런 시간들로 인해 조직과 동지가, 그리고 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해결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조직이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여 저의 상처가 치유되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조합원이었고 지금도 조합원이며 앞으로도 조합원의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희망을 이루어줄 조직이라 믿고 믿으며 기다리겠습니다.
    2009년 12월 피해자가 씁니다.
    *늘 제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어 고통의 나날 속에서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금도 함께 하며 저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지지모임과 대리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들로 인해 저는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