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극찬하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세기의 부랑아 북한을 길들인 공적을 높이 샀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이르는 험난한 도정(道程)의 온갖 투쟁과 저항을 대신 짊어진 순교자의 의미가 더 커 보였다.>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순교자' '세기의 부랑아 북한을 길들인'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지나치다. 김대중은 세기의 부랑아 김정일 앞에서 굴종하였지 그를 길들인 적은 없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속이고 간첩 두목에게 4억5000만 달러를 보내주도록 하곤 국민들에겐 간첩 신고하라고 하였다. 김대중 정권 때 북한으로 들어간 현금은 核과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것이 定說이다.
     
     김대중은, 그렇게 많은 돈을 건네 주고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단 한 사람도 데려오지 못하였다. 돌려달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轉向하지 않은 빨치산과 간첩 출신 63명을 보내주었다. 그 가운데는 일본인을 납치해가지고 가서 북한에서 죽게 하였던 신광수도 끼여 있었다.
     
     2002년 서해 사태 때 김대중 정권하의 군 지휘부는 도발 조짐을 알고도 햇볕정책에 충실하기 위하여 미온적인 대응을 하다가 기습을 받았다. 김대중은 군에 대하여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오더라도 절대로 먼저 쏘아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하여 수십 명이 죽고 다치는 비극을 불렀다. 김대중씨는 박정희 앞에선 당당하였으나 김정일 앞에선 고분고분하였다. 김정일이 김대중을 잘 길들인 것이다.
     
     김대중씨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 방해를 한 인물들에 대하여 보복적인 수사를 철저히 하였다. 그는 대통령의 특권으로서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특혜를 누리면서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였다. 특히 大選에서 진 李會昌 후보의 정치자금을 수사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정치자금을 수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런 김대중씨에게 '순교자'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칼럼은 이어진다.
     
     <2009년 4월, 그는 젊은 시절의 분신이자 그보다 더 무모하고 순진무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일갈했다. 반민주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들고 일어나라고. 육신은 쇠락했지만, 열정은 펄펄 살아 있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임종 일기에 썼을 때, 그는 자신을 괴롭힌 세상과 화해했다. 그는 빈곤한 나라의 궁핍한 정치를 민주주의의 궤도로 쏘아 올린 발사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모하였다기보다는 무식하였고 절대로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보수층을 향하여 '별놈', 헌법을 '별놈', 군대를 '인생 썩히는 곳'이라고 저주하고, 북한의 허수아비 국회인 최고인민회의장을 '인민主權의 전당'이라고 美化하고 4000만 학살자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힘 센 자신의 형을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사람', 대우건설 사장을 '좋은 학교 나와서 출세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비아냥거려 자살로 몰고갔던 자를 '순진무구했던'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송호근 교수는 나와 다른 韓國語를 쓰고 있는 셈이다.
     
     빈곤한 나라의 궁핍한 정치를 민주주의의 궤도로 쏘아 올린 사람은 김대중을 포함한 한국인 전부였다. 특히 공이 많았던 두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의 노선을 정한 李承晩, 경제건설로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박정희였다. 김대중씨는 10등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反민주 권력이라고 선동한 것을 '열정'이란 말로 美化할 순 없다. '失言' 또는 '妄言'이 맞다.
     
     칼럼은 이어진다.
     
     <하의도 섬 소년은 위대한 정치인이 되어 떠났다. 1만 달러 수준에서야 비로소 꽃피었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100달러의 암흑지대로부터 꿈꾸고 달려 왔던 그가 있었기에 환한 세상을 누리는 우리들은 그가 떠난 태평로에 남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위대한 정치인? 대한민국의 헌법상 정통성, 정체성, 정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6.15 반역선언이 위대한 것이었나? 선동, 거짓말, 속임수에선 '위대한' 바가 없진 않았다. 물론 이때의 '偉大한'은 역설적 표현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어서야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송 교수의 自認은 그렇게 만든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같은 기업인들, 그리고 묵묵히 법을 지키면서 살아간 국민들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민주주의의 건설자였음을 웅변한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의 국민소득은 100 달러 아래였다. 이 시대를 송 교수는 '암흑시대'라고 표현하였다. 자유가 없어서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가난하였기에 '암흑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광명을 선물한 것은 생산하고 건설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의 功도 물론 있다. 송호근 교수는 김대중씨가 암흑시대를 광명의 시대로 만든 공을 독차지하도록 하고 생산-건설세력의 공을 무시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깽판-건달세력과 생산-건설세력의 대결장이었다. 김대중과 박정희는 어느 편으로 분류될까? '그가 있었기에 환한 세상을 누리는 우리들' 속에서 '조갑제'는 빼주어야 할 것이다. 내가 환한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네 가지 요소 덕분이다.
     
     1. 자유민주주의 체제
     2. 이승만 박정희 같은 위대한 지도자
     3. 한미동맹
     4. 근검 성실한 국민들
     
     송 교수는 김대중에게 '위대한'이란 찬사를 되풀이하였다. 역사적 평가가 거의 끝나서 안심하고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써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치인은 이승만, 박정희뿐이다. 김대중이 역사평가에서 '위대한'이 될지 '악랄한'이 될지는 아직 더 기다려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富者나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함은 이제 세계 정치학계의 定說이다. 그리하여 양식 있는 학자들은 박정희나 이승만을 독재자라 부르지 않는다. 우선 제도를 만들고 경제를 건설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지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라는 의미에서 Liberal Authoritarian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이승만은 6.25 전쟁중에도 국회를 해산하지도 선거를 중단하지도 언론을 검열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3년째인 나라가 이 정도 하였다면 잘 한 것 아닌가?
     
     
     참고로 '강철군화'라는 필명을 쓰는 한 40대 기자의 글을 싣는다.
     
     <애덤 쉐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는 1950년에서 199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조사했다 (1985년 달러화 기준).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의 정권 평균수명은 8년으로 나타났다. 1500달러에서 3000달러 사이는 18년 정도 지속되었고, 6000달러 이상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탄력적으로 나타났다.
      1인당 6000달러 이상을 버는 국가에서 민주 정권이 붕괴될 확률은 1/500이었다. 일단 부유해지면 민주주의는 불멸하는 것이다. 대략 9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32개의 민주정권들의 지속연수는 총 736년이다. 단 한 곳도 붕괴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69개 빈국 중 56%인 39개 민주 정부는 실패하고 말았다.(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1인당 3000달러에서 6000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민주주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성공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역설한다.
      그는 "다수의 국가들이 1945년 이후 대략 1인당 GDP 6000달러를 전후한 시점에 안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면서 지난 30년 사이에 권위주의 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성공한 스페인,그리스와 포르투갈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을 바츨라프 하벨, 넬슨 만델라, 레흐 바웬사 등과 함께 '자유의 역사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러나 자카리아는 "그들의 승리가 왜 가능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혹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1인당 소득이 아니라 '도덕의지'라며, 위 관심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YS나 DJ,혹은 그 추종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해 자카리아는 신랄하게 따지고 든다.
      " 우간다와 벨로루시, 그리고 이집트는 결의에 찬 도덕적 명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의 운동가들도 1960,1970,1980년대에 모두 실패했다. 실제로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 그 당시 대부분 기간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왜 그가 1970년대에는 실패했으며, 1990년대에는 성공했는가? 그가 1990년이 되자 갑자기 '도덕 의지'를 갖게 되었는가?
     
      자카리아는 독재정권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붕괴되지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무엇이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대답은 국가의 富"라고 말한다.
     
      자카리아는 그 이유로 첫째, 국가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분파(사기업과 광범위한 부르주아지)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획득하도록 하고, 둘째, 이 분파들과의 협상에서 국가는 덜 폭압적이고 덜 변덕스러워지며, 규칙 지향적으로 사회의 요구(최소한 사회 엘리트 집단의 요구)에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 과정에 자유화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좋은 것들의 功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모든 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처럼 비과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