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만 해주면 사교육장으로 가지 않겠다" 

    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영어 공교육 강화정책 마련을 위한 현장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가졌다. '영어 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로 명명된 이 자리에는 교육관련 학자, 현직교사, 교육청 관계자, 학부모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저마다 현실적인 영어 공교육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영어 공교육 활성화를 통해 고등학교만 나와도 국민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면 한다는 생각, 그리고 영어 공교육을 완성해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싶다는 취지"라며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영어는 원하건 원치않건 세계 공용어 중 하나이며, 인터넷 언어의 90%가 영어로 돼 있어 국가경쟁력과 영어교육이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는 이 위원장의 모두발언과 천세영 전문위원의 발제에 이어 인수위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의 사회로 각계 패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참석자들은 '영어 공교육 강화'라는 큰 틀에 환영하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세부적으로는 영어 전담교사 충원 문제나 영어 사교육이 늘 것이라는 일부 우려를 지적하며 면밀한 검토를 요구했다.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이경자씨는 일선 교사들의 경쟁력 제고를 당부해 눈길을 끌었다. 맨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이씨는 "선생님들이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한) 자신들의 재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지라고 요구하는데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가야할 분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 개인적으로 자기 돈을 들여 공부하고 있다"면서 "인터넷에서 보니 한 선생님이 '그래, 내 영어 실력 향상시켜봐라. 하는 거 보자'는 식의 글이 있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지, 정말 자세가 이래서는 안된다"며 일선교사들의 보다 책임감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이씨는 또 "학부모들은 (인수위 발표대로) 이렇게만 해주면 사교육으로 가지 않겠다"면서 "학부모들이 불안감만 없다면 획기적인 교육안에 왜 안된다고 생각하겠나. 학부모들이 (공교육에) 자신감을 갖도록 정책 입안과정과 병행해달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중학교 최병갑 교장은 "인수위가 대학수능에서 영어시험을 분리한 결정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조치"라며 반겼다. 최 교장은 "현장의 영어선생님들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어교육 현실을) 바꿔야한다는 당위성에는 전체적 합의가 돼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건만 된다면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강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영어 사교육비 증가라는 역효과를 거론하면서 그는 "교육목표, 즉 진도가 국가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회화 과정 중심의 교육일 경우 (일선에서) 단계적 진도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국가가 정하지 않으면 진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무한경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직 영어교사인 김인정 교사(경기 고양 오마초등학교)은 "내가 맡고 있는 한 개반 43명 중 40명이  학원을 다니고 있다"며 대부분 학생, 학부모가 영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알렸다. 그는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학교 영어의 시수(현재 주당 1시간, 인수위안 주당 3∼4시간)가 부족해 '저거 배워서 대학에 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문장 하나를 알아듣게 하는 것보다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위를 집중시키는 기술이 더 필요하다"면서 "일주일에 40분 보고 헤어지는 현실보다 항상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담임선생님이 영어를 맡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정책에 반영하고 실현할 때까지 초등학교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수렴해달라"고 요구했다.

    충북 청주 청운중학교 임동원 교장은 "영어 공교육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에 두손 들어 환영한다"고 말했다. 임 교장은 인수위의 영어전용교사 2만3000명 단계적 확대안이 현직 교사들에게 줄 부담을 지적하면서 "전용교사는 영어로 수업하고 현직 교사는 그렇지 않다는 평이 나올 경우 선생님들의 입지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면서 "현재 선생님들을 더 훈련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경숙 위원장은 " 단계적이고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달리 미리 많은 관심으로 보도가 나가고, 여기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았다"면서 "확실하게 준비하고 차근차근하려는게 인수위 입장이고 새 정부도 그렇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정부가 기안하고 실천하려고 해도 국민이 신뢰하고 협력해야만 성공한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니 본인 뿐 아니라 후세대 자녀를 위해, 그리고 학부모들의 걱정을 던다는 차원에서 정부·교사·학부모 모두 한마음으로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홍후조 고려대 교수, 이효웅 아시아영어교육학회장, 장윤금 숙명여대 교수, 박준언 숭실대학교 교수, 최병갑 구로중 교장, 김점옥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임동원 청운중 교장, 김인정 경기 고양 오마초 교사, 김영숙 대구교대 교수, 이경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대표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편,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에 반대하는 전교조,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은 인수위 무단 진입을 시도하려다 전경들과 마찰을 빚었다. 공청회에 초청되지 않았던 이들은 인수위 앞에 모여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온 나라를 입시학원화하고 교육양극화를 고착시켜 사교육비를 두배 이상 늘리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