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일이 며칠 안 남았다. 그런데 여전히 후보자들 간 정책대결은 보기 힘들다. 

    며칠 전 제17대 대통령 후보 TV 토론을 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그러는데 대화란 대놓고 화내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그런 건지 요번 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바로 옆에 두고 피차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한 마디라도 더 비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나온 분들 같았다. 마치 아이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것 같은 유치함을 국민들한테 선사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발언 당사자나 그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정책대결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직 상대방 흠집 까발리는 일이 마치 선거운동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정치문화는 언제나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지 요원하기만 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 보라. 옛 선인들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했다. 세 번 생각해 보고 한 번 말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중을 기했다는 것이다. 칭찬은 아끼지 말고 비판은 서두르지 말라는 서양 격언도 있다. 진정 남 칭찬하는 거야 뭐 아낄 거 없이 퍼 부으면 좋겠지만, 비판 하는 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비판하는 자신은 비판 거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티는 흉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 걸 모르는 우매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한 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그 상황에 처하면 여지없이 꺼내 썼지만 삼천포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열 받았다는 것이다. 삼천포라는 특정 지역이 그렇게 삐딱한 지역으로 거론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 삼천포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하여 그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다. 삼천포가 뭐가 어째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이상한 지역으로 구설수에 올라야 하느냐는 것이다. 

    최근엔 떡값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뇌물을 주면서 떡값이라 하고, 수 천 만원을 주면서 떡값이라니 진짜 떡장수가 기분 나쁘다고 한 마디 한 것이다. 떡장수가 진짜 그런 떡값을 받는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모두 재벌 됐을 것이다. 아무리 식구가 많아봤자 떡값이 몇 만원이면 뒤집어쓴다. 그런데 몇 백, 몇 천 심지어는 몇 억까지도 떡값이라고 하니 떡장수 환장할 노릇이다. 떡 한 번 해야 몇 만원이 고작이다. 그거 받으면서 근근이 사는 건데 몇 백, 몇 천, 몇 억이라는 돈은 진짜 딱값 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치과에 가서 이빨이 아파서 왔다고 하면 눈깔은 괜찮냐고 한단다. 치과 자체가 비하되는 것 같은 말이기 때문에 치과의사 기분 나쁘다는 얘기다. 왜 치아를 그렇게 비하해서 부르느냐는 것이다. 듣는 상대방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이다. 귀를 귀때기라고 하고, 배를 배때기라고 말하는 것은 그건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나 아니면 가깝게 지내는 아랫사람한테 농담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서 무례하지 않는 것은 지성인의 기본이다.
     
    선거운동도 변해야 한다.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비방폭로에서 정책대결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자료를 달라는 것이다. 어차피 심판은 표로 할 것이니까 굳이 상대방 후보 ‘나쁜 놈’이라고 내 핏줄 세울 필요가 없다. 국민들 수준이 높아져서 뻥 친다고 뻥을 다 믿지 않는다. 따라서 괜히 상대방 욕하다가 자기 점수 깎이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진짜 자살꼴이 됨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도 정책대결 구도로 나아갈 때 국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남은 며칠이라도 우리의 성숙한 선거문화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