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열린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의 정책간담회는 이 후보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불안한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 자리였다.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노총 산별노조위원장 및 각 지역 노조위원장들은 이 후보의 노동관을 지적하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노동 정책 뿐 아니라 이 후보의 과거 말실수까지 끄집어냈다.

    이날 간담회는 한나라당의 ‘취약층’ 중 하나로 꼽히는 노동계를 끌어안고자 마련된 자리였지만 이 후보가 그동안 가졌던 여느 간담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던 다른 간담회와 달리 이 후보와 마주 앉은 노조 관계자들은 작심한 듯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노동정책과 관련된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다소 ‘냉랭한’ 분위기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껄끄러운지 한국노총 측은 간담회 도중 비공개로 돌리려 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간담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이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중에 많은 업적과 성과를 만들어 내서 많은 분들이 이미 탁월한 시 운영 능력을 알고 있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대통령 후보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고 ‘간단한 인사치레’를 마친 뒤 “이 후보가 와서 정말 환영한다는 말씀을 드리지만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이렇게 왔다 가면 이 다음에 어디서 볼 수 있게 될지 기약이 없다”며 “여기 오는 것도 두세 번 일정을 어그러뜨려 가면서 왔다. 한국노총도 바쁘다. 이 후보가 온다고 일정도 비워놨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갖고 있는 노동관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동안 토론회 등에서 (이 후보를) 봤을 때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만을 주장한 부분이 많다. 비정규직 부분에서는 해고의 자유를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기업인 이명박’으로서는 가능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라면) 노동계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채찍만 갖고 노조를 길들이던 시기는 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나 가능했다”며 “아직도 노동계를 배제하고 재계 중심의 국가 경제 성장을 고집한다면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질의응답으로 본격적인 간담회가 시작되자마자 한 노조 관계자는 이 후보의 말실수를 꼬집었다. 그는 “아쉽게도 이 후보는 말실수를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간지 편집국장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못생긴 마사지걸이 서비스 좋다는, 성을 상품화한 발언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며 “인천 남동공단에서 근로자들과 대화하면서 ‘우리 근로자들은 너무 일을 안한다’고 했다. 왜 이렇게 표 떨어지는 소리를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70,80년대 근로자 마인드를 21세기 지식 근로자 시대에 맞춘, 시대에 뒤떨어진 노사관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노동계 현안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노조에 대한 이 후보의 시각을 알아보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김주영 전력노조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빼앗겨 가면서 대한민국이 압축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면서 “이 후보 주변에 있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 전력산업의 구조조정과 민영화 추진을 주장한다. 전력 산업에 대해 피땀 흘려 일궈놓은 부분을 정확하게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배정근 공공연맹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친(親)기업’ 이미지를 염두에 둔 듯 “정치권이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사고를 갖고 있다. 사용자 고유 권한이라고 하겠지만 경영의 한 축으로 노조도 함께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한다”며 노동계의 회사 경영 참여 문제에 대한 이 후보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이 후보는 “양면성이 있다”며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하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게 없다”고 답했다. 

    이명박 "노사 동반자 시대" "생계형 노조 아닌 정치 노조는 자제해야"

    이 후보는 “한국노총에 오면서 어쩐 일인지 낯설지 않고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심정으로 왔다”며 “노동자로 있어보기도 했고 경영자 입장에도 있어 본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 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다양하고 실질적인 경험을 많이 했다”고 친근하게 다가섰지만 ‘할 말’은 했다. 

    그는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야 될 때다. 노사 갈등 관계에서 동반자 입장의 시대가 왔다”며 “노사 화합 없이는 어떤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이 지향하는 생각과 (나의) 생각이 매우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정책적으로 (대안을) 제안하는 방법도 높이 평가한다”고 호평했다. 그는 “과거 투쟁에서 이제는 화합정책으로 노사정이 잘 화합해야 된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기초질서를 지키고 법질서가 지켜져야 선진사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노동운동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사회질서가 무너졌다”며 “생계형 노조, 중소기업에서 저임금을 받고 열악한 조건에서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적 노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목적을 갖고 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노사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차선책이다. 노사 관계를 벗어나 정치목적을 위한 것은 노동자를 위한 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전 민영화 문제와 관련, “국영화로 잘해온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민영화를 당장 시키자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한전이 더욱 국제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는 이한구 정책위의장, 전재희 이주영 이주호 배일도 임태희 나경원 의원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