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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선레이스에서 잠시 벗어나,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부산에서 열린 정책토론회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과 싸울 생각없다. 노 대통령도 차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과 너무 논쟁에 빠지는 것은 국민보기에도 좋지않다"며 맞대응을 사절했던 이 전 시장이 며칠 사이에 자신을 겨냥한 공세에 '청와대 배후설'을 강력히 제기하며 맞서고 있는 것.
이 전 시장은 지난 주말 "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느냐"며 노 대통령을 의식하더니, 13일에는 작심한 듯 "'이명박 하나만 죽이면 정권을 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를 죽이려 미쳐 날뛰고 있다" "내가 그렇게 두려우냐"는 등 초강경 발언을 동원해 맹비난했다.
이 전 시장은 특히 한 언론보도를 근거로 "설마설마 했는데 '(경선에서) 이명박이 되면 이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경선에서 배제시키려 온갖 음해를 하고 있다"며 "이 음모에 청와대가 결탁된 조짐이 보인다"고도 말했다.급기야 14일에는 청와대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이 전 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불응시 '법적조치'까지 거론했고, 이 전 시장은 "사과요구 이전에 야당후보에 대한 비방을 중지하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박 전 대표와의 치열하던 검증공방이 '이명박 대 노무현' 구도로 전환된 꼴이다.
이같은 구도는 이 전 시장측에서는 나쁠 게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임 후 정치개입을 공공연히 밝혀온 노 대통령으로서도 '지지율 1위' 대선주자와의 경쟁이 유리하다. 이 전 시장은 '집권세력 배후설'을 들고 나옴으로서 박 전 대표와의 대립각을 누그러뜨리고, 당 후보끼리의 상처내기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지율 1위'라는 것이 당내 경쟁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존재해온 것이 사실인 데다, 집권연장세력이 정권교체세력으로 이 전 시장을 선택했다는 자체가 기분나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에 비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셈도 된다.
이 전 시장측 핵심관계자는 "전략적 의미에서 이러한 구도가 생긴게 아니라, 집권세력이 본선에서 이기기 위해 한나라당 후보와 정세 분석을 하고, 후보관리 차원에서 이 전 시장을 공격해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며 "단초는 집권세력이 제공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집권세력이 이 전 시장보다는 박 전 대표가 본선에서 상대하기 쉽다는 결정을 내리고, 경선과정에서 이 전 시장을 집중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며 "공작을 그만두지 않는 한 대립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 박 전 대표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경쟁관계에서 박 전 대표를 정치 이슈 한가운데서 밀어내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과의 공방이 모처럼 여야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이 전 시장이 야권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려놓는 그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지율을 회복할 '특단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캠프 관계자는 "왕도는 없다. 원칙대로 정도를 걷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의 거친 공격이 오히려 고마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 초선 의원은 "여론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고백했다. 이 의원은 "여러 검증 공세를 국민이 이해하게 된다면 곧 40%대를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그러나 집권세력과 거기에 동조하는 당 일부의 공세도 계속될 것이므로 긴장을 늦추지않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캠프 핵심관계자는 검증공세와 관련, "문제제기를 하는 쪽에서는 몇개의 단어를 조합해 감성적으로 접근해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고 발을 빼면 그만이지만, 진위를 해명해야하는 쪽에서는 열배 스무배의 노력이 든다"며 애로를 토로하기도 했다. 상대가 최종적으로 '아군'이 아닌 '적군'일 경우, 눈치볼 것 없는 강력한 맞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노 대통령과의 공방을 이 전 시장이 피할 이유가 없고 내부의 과열경쟁보다 밖으로 눈을 돌리는 편이 이미지상으로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 전 시장측 장광근 대변인은 이날 "경선 싸움의 본질이 당내 후보가 아니라 권력핵심과의 싸움임이 밝혀졌다"면서 "'이명박 대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 대 집권세력 전체와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집권세력과의 '정권연장 저지투쟁'을 공식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을 대척점에 놓고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는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집권세력과, 이를 향해 칼을 빼든 이 전 시장 진영의 정면충돌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