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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민은 이 정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뭔가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이런 국민의 바람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정권만 넘겨달라고 보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솔직히 한나라당이 지금 상태로 정권을 잡았다간 국민으로선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 꼴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열린우리당은 네 가지 고질병 때문에 지금 이 신세가 됐다. 먼저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파당(派黨)질이다. 정동영계·김근태계·친노파로 나뉘어 싸움질하느라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한나라당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유력 대선주자측의 의원 줄세우기 경쟁이 가관이다. 지역구 하나에 주인 행사를 하는 사람은 둘인 곳도 수두룩하다. 현 지역구 책임자가 한편에 서면 다음 총선에서 그곳을 노리는 사람은 다른 편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두 주자들부터가 가급적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이러니 아랫사람들 관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은 지난 4년 내내 정권 사람들이 벌인 노선 싸움에 신물이 났다. 해외 파병, 국보법 개폐, 한·미 FTA 등이 모두 다툼거리였다. 한나라당도 만만치 않다. 지난주 열린 대북정책 의원총회는 한나라당의 ‘이념 분단’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른바 소장파는 정권 급진세력이 추진했던 국보법 폐지와 헌법 영토조항 개정을 주장했다. 보수성향 중진 의원들은 “그러려면 차라리 당 간판을 내리라”고 했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떠나지 않는 이상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이런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4년 청와대 뒤치다꺼리 해주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말로만 당정분리였지 대통령 말에 충실한 ‘거수기 여당’이긴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았다. 국보법 폐지, 위헌결정을 받은 신행정수도 추진, 대연정 추진 등 예는 수두룩하다.
한나라당 앞날도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 대선주자들은 당과 상의도 하지 않고 벌써부터 몇 조 원이 들어가는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 두 주자 진영에 들어간 사람들은 공공연히 “당 사람들 능력은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러니 두 주자 중 누가 후보가 되든 ‘후보캠프 따로 당 따로’가 됨은 물론이고 정권을 잡더라도 ‘청와대 밑 여당’이 될 게 뻔하다.
열린우리당은 얼마 전까지 청와대 지침에 따라, 또는 내부 강경파에 휘둘려 국민 뜻과는 상관없이 입법권을 마구 휘둘러댔다. 전직 당의장이 “(사학법, 언론법, 과거사법, 국보법폐지법안 등) 4대 입법의 모자를 씌운 것이 잘못”이라고 했을 정도다. 한나라당이 요즘 들어 이런 열린우리당을 능가할 조짐이다. 선거법을 바꿔 촛불집회나 인터넷에서의 선거관련어 검색 등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집회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지난 대선 때 자신들이 당했다고 해서 정당 간 후보단일화 토론회의 TV중계를 금지하겠다는 발상도 옹졸하기 짝이 없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부결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우파 포퓰리즘’의 본보기였다. 이런 정당이 정권까지 손에 쥐었을 때를 상상하면 아찔하다.
한마디로 지금의 한나라당은 집권당감이 아니다. 체질과 구조와 행태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국민이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지난 4년 이 정권에게 가라고 다그쳤던 그 길을 한나라당 자신부터 걸어가면 된다.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부터 먼저 그 길을 뚫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