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다시는 안 볼 듯이 날선 비난을 주고받았던 열린우리당 잔류파와 탈당파 의원들이 7일 언제 그랬냐는 듯 한자리에 모였다. 민생정치준비모임 천정배 의원의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다. ‘강줄기가 돌고돌아 크게 만나겠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머리를 짜내자’는 것이 이날 출판기념회 자리를 메운 범여권 의원들의 '속내'였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천 의원의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도서출판 강 펴냄) 출판기념회에는 정세균 열린당 의장을 비롯해 조세형 상임고문, 정대철 고문과 열린당 탈당파 의원 등 ‘구 열린당’ 의원 30여명이 참석, 마치 ‘구 열린당’ 의원총회장을 방불케 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치권 인사 외에도 최열 환경재단대표,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 시민단체 및 법조계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천 의원은 이 자리에서 “서민·중산층이 큰 위기에 처해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해 열린당 정치인들이 전적으로 불러온 위기”라면서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모두 뭉쳐 대연대를 이뤄내야 하며 그럴 때 국민들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이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입해서 전력을 다하겠다”며 범여권의 통합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천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고양하는 데 헌신하고자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 서민·중산층의 생활을 편하게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해줘야 한다”며 ‘민생정치’를 키워드로 한 범여권의 대통합을 일궈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정치적 발언은 최대한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천 의원의 지지자 등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는 등 마치 대선출정식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열린당 박영선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출판기념회에선 열린당 소속 의원들과 고문들은 일제히 ‘천 의원 눈치보기’(?)에 바쁜 모습도 내비쳤는데, 범여권 대통합 추진 작업을 앞두고 본격화될 주도권 다툼을 놓고 나름의 '속내'가 있는 모양새였다. 

    조세형 상임고문을 축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선거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정치기술 또는 정치조직이 위력을 떨쳤는데 지금은 이런 것보다 인물을 찾는 것 같다”면서 “얼마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또 정직성 성실성을 가진 사람이냐, 특히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 줄 만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기준으로 볼 때 천 의원이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천 의원에게 강한 기대담을 내보였다. 정대철 상임고문도 “‘열린당, 이건 아니다’고 뛰쳐나와 ‘대통합이 그 길’이라고 했을 때처럼 (결단을)현실로 옮기는 천 의원이 좋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좋았다”면서 “천 의원 같은 사람이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때 아름다운 나라,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장영달 열린당 원내대표도 축사에서 “강줄기가 돌고 돌아 크게 만나겠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머리를 짜내자”고 했으며, 천 의원과 한때 막역했던 사이인 신기남 전 열린당 의장은 “오늘은 심상치 않은 날”이라면서 “천 의원의 행보를 눈여겨 봐 달라”고 말했다. 신 전 의장은 “언론에 나오는 지지율 중계방송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범여권의 대결집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출판기념회에선 열린당 잔류와 탈당파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다보니 다소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사를 한 강문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이사장이 천 의원의 열린당 탈당을 소신있는 결단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잡느냐가 문제인데, 당을 떠났다고 해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이어 “쓰레기는 일단 분리수거를 해서 재활용할 것과 소각할 것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일어난다”면서 “(열린당이)재생 희망이 없으면 빨리 정리하고 소각하고 재활용하려면 빨리 정리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강 이사장은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을 편하게 하는 정치를 해줘야 한다”면서 “입만 열면 불안하고 도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정치가의 역할이 아니다. '내 임기 중에 GNP가 올라갔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가가 할 말이 아니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일순간 열린당 의원들은 당혹한 모습을 내비쳤다. 사회자 박영선 의원이 “국회의원은 어디가든지 혼난다”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천 의원은 행사장 입구에서 참석자들을 일일이 환영했는데, 김근태 전 열린당 의장은 천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축하하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정신 차리라고 날씨가 추워졌다”면서 묘한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이날 천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김희선 양형일 김낙순 서혜석 정세균 장영달 김근태 염동연 이계안 정청래 전병헌 노웅래 김현미 유승희 김혁규 신기남 문병호 조정식 우윤근 윤원호 유기홍 정동채 최재천 제종길 오제세 노현송 이원영 최철국 김덕규 의원 등 열린당 잔류파, 탈당파를 가리지 않고 대거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