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 사설 <선거 전략따라 ‘기획 탈당’하는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탈당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에 여당에서 탈당하는 것은 5년마다 되풀이돼 온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여당 대선후보와의 갈등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세 아들 비리 의혹으로 탈당했었다. ‘말년 탈당’의 악습을 노 대통령이 네 번째로 이어가게 됐다. 정당정치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풍경이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이전 3명 대통령의 탈당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 대통령의 탈당은 벼랑 끝에서 밀려 떨어진 경우였다. 노 대통령도 벼랑 끝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스스로 선택해 뛰어내렸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여당이던 민주당을 탈당했었다. 현직 대통령이 여당에서 두 번 탈당하는 전무후무할 기록이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여당 지도부와의 숙의 끝에 이뤄졌다는 보도다. 여당이 흩어졌다 다시 모여 새 간판을 다는 ‘쇼’에 대통령이 걸림돌이 되니까 여당에선 비켜 달라는 것이었고, 대통령은 그 시기를 지금으로 택한 것뿐이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기획 탈당’과 다를 게 없다. 결국 모두 연말 대선 때 어떻게든 유권자 눈을 속여 보려는 것이다.

    대통령은 얼마 전 TV에 나와 국민에게 여당 지지를 부탁했었다. 여당을 탈당한 사람들은 대통령을 계속 지지한다고 한다. 모두 겉으론 다른 소리를 해도 뒤로는 쪽지를 돌리는 그런 사이들이다. 또 대통령은 탈당으로 옷을 갈아입고서 자신의 프로젝트인 개헌을 내세우는 것이 지금보다 유리하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이전 3명의 대통령은 탈당하는 순간 정치에서 손을 끊었다. 그러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야당 대표의 정치중립 요구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며 그 자리에서 거부했다. 노 대통령에게 탈당은 정치와의 결별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시작일 뿐이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가짜 탈당’이고, 대통령도 ‘가짜 탈당’이다.

    지금 노 대통령은 마치 여권의 선거 기획단장, 응원단장 같은 모습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도 다 행사하려 한다. 계속 이러다간 나라가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분란으로 지샐 것이다. 대통령이 끝까지, 마지막까지 국민에게 이럴 수는 없다.

    무슨 다른 답이 있겠는가. 대통령이 여권의 선거기획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를 보내는 것밖엔 길이 없다.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세계 어떤 지도자보다 많이 말하고 많은 화제를 만들었다. 국민은 이제 진력이 났고 나라가 조용한 가운데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기만 바라고 있다. 대통령은 기왕에 하는 탈당을 선거용이나 정치용이 아니라 국민용으로 쓰기 바란다. 남은 열 달만이라도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게 그나마 국민을 위한 탈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