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9일 개헌을 전격 제안하면서 정치권이 크게 술렁였다.
당장 올 연말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추던 정국 분위기가 일순간에 급반전되면서 개헌정국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는 모습이다. 개헌 실현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시기적으로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런 개헌 제안은 정국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다.정치권 안팎에서는 일단 노 대통령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승부수’를 띄웠다는 시각이다. ‘시급한 과제’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 제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 확보’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략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리고 범여권의 신당논의 등 여당의 핵분열이 가시화된 현재의 정치적 제반환경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후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전격적인 개헌 제안으로 차기 대선과 맞물려 ‘반한나라당 전선이냐, 국정운영 실패에 따른 심판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받은 모습이다. 한나라당과 국정운영 실패 중 어느 쪽이 덜 나쁜지를 선택하라는 것인데, 이를 연말 대통령 선거 구도로까지 이어나가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는 관측들이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직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앞다퉈 발표한 반면, 한나라당은 “정략적인 발상”이라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국회 차원에서 개헌 논의가 진전되면 될수록 정치권의 대치전선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개헌 문제를 둘러싼 국민 여론도 분명한 입장으로 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당내 대선 주자들간의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 한나라당에서는 자칫 개헌 논의의 진행 상황에 따라서는 고질적이고 해묵은 주류 대 비주류간의 갈등이 재현돼 대선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심하게는 아예 ‘분열’ 상황으로도 치닫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개헌 논의가 경선 때까지 이어진다면 개헌과 관련된 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럴 경우 당 결속력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리라는 판단이다. 경선 시기와 규모 등을 놓고 가뜩이나 이견이 큰 상황에서 ‘개헌’이라는 또 다른 불씨가 더해지는 꼴이 된다는 설명이다.당장은 한나라당이 ‘개헌저지선’(개헌안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 필요, 총 296명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은 127석)을 확보했으니 개헌의 현실화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지만, 일부 대선주자의 차별화 전략이 개헌 논의와 맞물린다면 간단치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동시에 노 대통령의 전격적인 개헌 제안은 사분오열의 핵분열이 가시화된 여당 내부의 통합신당추진 등 정계개편 논의에 제동을 걸고 정국 주도권을 청와대로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헌'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 자체만으로, 이미 노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내 반노 진영에서도 개헌논의에 대한 여론 추이를 살펴야 하는 형편이므로 섣불리 행동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더불어 개헌 논의 전제조건으로 노 대통령의 탈당을 통한 중립내각 구성을 정치권에서 요구할 경우, 자연스럽게 한명숙 국무총리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치인 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해 당 장악력을 높이면서 본격적인 정치력을 행사하는 한편, '개헌을 통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았다'는 역사적 평가까지 뒤따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원대대표 김효석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제안과 관련, “선거를 앞두고 노 대통령의 승부사적 자질이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앞으로 2타 3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해, 이후 '개헌 정국'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