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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소식을 접한 22일 민주당은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다. 그러나 '민주당 독자생존론'을 역설하던 한 대표가 자리를 비움으로써 정계개편 방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는 듯 당직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고성이 들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경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법원 판결 소식을 접한 한 대표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가 결국 당 대표로서 참석하는 마지막 회의가 된 한 대표는 “이미 판결이 났으니까 그 순간부터 나는 당원 자격도 없다. 전(前) 대표로서 인사만 하겠다”며 “판결을 겸허히 수용한다. 당원동지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날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 대표는 “여러분들의 협력 속에서 의원 11명과 함께 민주당을 여기까지 끌어 왔다”며 “이제는 민주당이 정계개편 와중에서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고 동력을 발휘해 (정계개편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을 떠나더라도 마음을 그대로 (민주당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 어떤 경우든 정치자금과 관련돼 재판을 받게 돼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다시는 나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많은 분들의 신세를 졌다. 나를 낳아준 고향 지역구, 선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그런 분들에 대한 보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된 것에 마음 속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도 했다.
그는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과 순리, 정도로 (당이) 한국 정치 변혁기에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민주당이 영원하길 바란다. 국민 염원을 담아 민주당이 단단한 대지 위에 우뚝 서는 수권정당, 여당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 대표는 촛불집회를 위해 당사 앞에 모인 1500여명의 당원들에게 “오히려 내가 여러분에게 위로 말씀 드린다”며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집권여당도 했다. 한 점 후회도 없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것이다”고 인사한 뒤 여의도를 떠나 제주도로 내려갔다. 김효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같은 시각 한 대표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려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한화갑’으로 대표되던 민주당은 한화갑·장상 공동대표 체제에서 당분간 장상 대표 체제로 운영되며 26일 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진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계개편 방향 등을 놓고 ‘친(親)한화갑’ 진영과 ‘반(反)한화갑’ 또는 ‘친(親)고건’ 진영의 의견차가 커 난항이 예상된다. 또 그동안 고건 전 국무총리와의 연대를 강조해온 당내 ‘친(親)고건파’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도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전대에서 어떤 후보가 당 대표에 선출되느냐에 따라 정계개편을 향한 민주당의 행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내에서 전대 출마자로 김효석 원내대표, 정균환 부대표, 최인기 의원, 박상천 전 대표 등이 거론된다.
‘리틀 DJ’로 불린 한 대표는 1967년 김 전 대통령 선거운동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으며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남 목포·신안에서 14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뒤 이곳에서 내리 4선을 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