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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진로를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파와 친노(親盧) 진영간 대립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폭발은 시간 문제일 뿐, 이미 양측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어섰다는 관측이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정계개편 주도권 싸움이 돼 버렸다’는게 당내 대체적인 분위기다.
친노 성향의 중앙위원을 비롯 당원협의회장 등 270여명이 참여한 ‘당 정상화를 위한 전국당원대회 준비위원회’는 5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즉각적인 해산과 향후 당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현재의 비대위에 대해 “당원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으면서도 역대 어느 지도부보다 오랜 기간 동안 유례없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으면서도 지난 6개월간 보여준 것은 무능과 독단 뿐이었다”면서 당 혼란 상황에 대한 비대위 책임을 공식화했다.
이들은 이어 “비대위가 부질없이 당내 갈등과 당․청 갈등만을 조장하면서 정작 중요한 국정현안에는 당론 하나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당은 한 자리수 지지율의 식물덩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서 “당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위기를 심화시킨 비대위를 즉각 해산하고 중앙위원회가 그 권한을 회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향후 당의 진로결정과 관련해서는 “정기 전당대회가 반드시 개최돼야 한다”면서 “정계개편이나 통합신당 논의 등 당의 진로와 관련한 모든 정치적 입장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평가받아야 하고 당의 운명은 당원들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신당창당 등의 논의와 관련해 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진행하려는 설문조사방식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에서 정한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며,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는 당내 다양한 의견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고루 참여해 전당대회 일정과 절차 및 안건을 확정하고, 전당대회 시점까지 질서있게 당을 수습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원들의 땀과 열정으로 세우고 지켜온 열린당이 국민의 사랑을 되찾고 민주개혁세력의 구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당의 혁신과 위기극복에 스스로 앞장서 나가겠다”면서 중앙당사 앞에서 전국당원대회를 통해 일단 당 지도부의 신당창당 등의 논의와 관련한 설문조사에 대한 실력저지 돌입을 사실상 선언했다.
친노진영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당 지도부 및 당내 통합신당추진파는 전혀 아랑곳않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와 통합신당파는, 이르면 6일부터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신당창당 등의 논의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당 지도부는 일단 이날 저녁 비대위 비공개 회의를 갖고 설문의 조사 대상 폭을 소속 의원에서 당원으로까지 넓힐지 여부 등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설문조사 질문 내용 등 구체적인 사안을 확정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지도부가 이날 저녁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일단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상 양측간의 전면적 내지는 갈등의 폭발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이와 관련, 친노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 김형주 의원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당 지도부가 결정할 설문조사 내용 등과 관련, “전당대회 자체를 형식적으로 당 해체와 신당 창당으로 가려는 정당화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뻔히 보이는 그런 설문의 디자인같으면 참여하기 어렵다”고 확실히 못박았다.
김 의원은 이어 김 의장이 이끌고 있는 비대위에 대해서도 “비대위라면 당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기구가 아니냐”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비대위가 기간당원제의 기초당원제로의 변화라든지 등의 당헌, 당규의 손질을 통해서 사실은 당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자꾸 일을 도모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발끈했다. 그는 “국민은 무늬와 색깔만 달리 해서 신당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비대위라는 성격과 현재 하려는 일이 매우 모순적”이라고 김 의장의 비대위에 대한 못마땅함을 여과없이 내보였다.
이에 앞서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4일) 편지를 통해 “당의 진로와 방향은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도부의 설문조사 실시를 비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는 것은 레임덕을 최소화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원내대표는 “당청관계에 대해 이제는 국민이 짜증을 내는 것 같다. 국민은 여당과 대통령에게 '이대로는 안된다,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서 “우선은 대통령과 여당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민심과 민생 챙기기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열린당이나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이, 요즘 당청이 보이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도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