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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내 대표적인 정동영 전 의장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이 4일 김근태 현 당의장에 대해 “어느 의장보다 막강한 권한으로 전권을 행사했는데도 상황이 악화됐다”면서 김 의장 체제의 실패를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날 저녁 CBS 라디오 시사프로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김 의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당․청간) 대립국면이 심해졌는데, 김근태 비대위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정 의원의 발언은 최근 당의 진로를 놓고 벌어지는 당․청간의 대립이 극한 양상으로 치닫는 데 대한 김 의장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의원이 대표적인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탓에 정 의원이 이같은 발언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정 전 의장의 향후 정치행보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위기다. 정 전 의장이 이번 기회를 틈타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려는 본격 움직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 의장이 당의 진로를 놓고 친노그룹로부터는 비대위체제 해산을 요구받고 있는 데다가 노무현 대통령과도 노골적인 대립각을 세운 상황에서, 정 전 의장은 오히려 창당 정신과 노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부정하지 않는 고도의 정치적 스탠스를 보이면서 역으로 여권 갈등 구조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해 재기의 발판을 노리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정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김 의장 체제의 실패를 탓하면서도 ‘정 전 의장도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정 전 의장은)미국에 있을 땐 노 대통령의 권위에 손상을 주면 안된다고 발언했고, 어제 미국에서 돌아올 땐 창당정신과 가치는 지켜져야 하며,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는 승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폈다”면서 정 전 의장의 입장을 분명하게 대변했다.
정 의원은 또 김 의장의 지도부가 진행하려는 신당 관련 설문조사 방식에 대해서도 “당에도 헌법인 당헌이 있다. 당의 중대한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는 당원에게 물어봐야 한다. 헌법을 유린하는 게 쿠데타라면 당헌을 유린하는 것도 그런 발상이다”며 사실상 쿠테타적 발상이라는 입장을 내보였다. 정 의원은 “일단 당원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것을 의원총회나 중앙회의나 연석회의에서 참고해야 한다. 그것이 순서인데, 의원들에게 먼저 설문조사 하는 방식도 잘못됐다”며 “의원총회에서 비공개로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하고 관심을 집중시킨 다음에 의원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정 의원은 이어 ‘(신당추진파와 당 사수파 중)한쪽은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을 원치는 않는다. 어쨌든 지역구도 타파, 깨끗한 정치, 민생경제라는 창당정신에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창당정신을 잘 구현하지 못한 열린당의 지리멸렬에 대해 국민이 등돌렸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창당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친노, 반노로 나뉘어 싸우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지는 것도 대단히 유감스럽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기 때문에 집권여당이고,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지지가 높을 땐 대통령을 옹호하고, 대통령이 인기 없으면 차버리며 조변석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이날 발언은 정 전 의장이 지난 10월 1일 독일에서 귀국길에 들고 나온 ‘신중도론’과 맥을 같이한다. 당 안팎에서는 내년 1월쯤 정 전 의장이 본격 행동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시선이다. 정 전 의장은 귀국과 함께 “증오와 대결을 넘어 포용과 통합의 정치로 가야 한다”는 독일에서의 구상을 밝히면서 “국민은 좌우 양극단을 싫어하고 개혁도 안정적 개혁을 원한다. 교조주의는 통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며 자신의 ‘신중도론’을 설명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