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문제는 노 대통령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고전적인 분류법 중 하나가 ‘정치가(politician)’와 ‘국가지도자(statesman)’로 나누는 것이다. 모든 사안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당파적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을 정치가라고 부르고, 당파적 이익을 넘어서 국익에 대한 신념에 따라 움직이면 국가지도자라고들 한다. 물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비교다. 아무리 훌륭한 국가지도자도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고, 반대로 가장 당파적인 정치가도 국익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유형의 정치인이 그 시대를 이끄느냐에 따라 나라의 국운(國運)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국무장관 등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은 정치가는 너무 많아진 반면, 진정한 국가지도자는 사라졌다”고 했다. 이 같은 리더십의 문제야말로 미국이 맞고 있는 위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인이 국가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대 중·후반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고전하고 있는 노 대통령으로선 북한 핵실험에 따른 안보 위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리더십의 진가(眞價)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대한민국 안보의 최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군의 통수권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국민이 귀 기울이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노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스러움 그 이상이다. 우선 이 문제를 보는 대통령의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다. 노 대통령이 육성(肉聲)으로, 국민들에게 북핵 실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 9일의 기자회견 단 한번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날이었다. 북핵 실험으로부터 7시간쯤 뒤 국민 앞에 선 노 대통령의 회견 내용은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그날 나온 말 몇 가지만 추려보자.

    “상황에 의해서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민감한 외교상의 문제를 대통령 개인이 혼자서 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포용정책에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이 회견에서는 안보 위기 속에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단호함이나, 국민을 이끌어갈 원칙을 찾기 어려웠다. 국가 지도자라기보다는, 그날 온종일 TV에 나와 북핵 실험 사태를 설명하던 ‘평론가’를 연상케 했다. 그 뒤 노 대통령의 육성이 사라졌다. 다만 참모들의 손을 거친, 정제된 발표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서방 지도자들은 특별성명 발표, 기자회견,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경우, 북핵 문제에 더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현직이 아닌 전직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은 여전히 애매하다. 그는 지난 20일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을 만나,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어느 수준에서 지켜야 하는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북핵 실험 후 2주일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무엇을 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북핵 실험이라는 안보 위기 앞에서 국론이 흩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이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중심을 잡지 않으니, 국론이 모일 수도 없는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났던 한 학자는 “대통령이 북핵은 어차피 임기 내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니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국가지도자다운 리더십을 포기한 것 같다는 이 학자의 말이 틀렸다고 하기도 힘든 게 지금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