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씨발 놈, 개새끼….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감정이 폭발할지 모른다고 느꼈다. 일국의 국가원수를 면전에서 모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호실장은 오히려 자신이 더 화가 났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대통령 면전에서…아니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아무 죄없는 국민들이다. 사는 게 힘든 서민들이다. 경호실장은 애써 끓어 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예, 맞습니다 맞고요. 노무현 개새끼, 씨발놈 맞습니다. 자, 우리 모두 건배합시다!’

    노시개애애애애애애!

    대통령은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켰다.

    ‘아지매, 술 맛 좋소. 자 아지매 한 잔 더 드이소.’

    대통령이 여주인에게 술을 더 권했다. 그렇게 술자리는 화기애애하게 돌아갔다. 경호실장도 같이 술을 받아 마시면서 조금씩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치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때 경호실장의 눈에 별 말 없이 듣기만 하면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 남자가 들어왔다.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장년 남자였는데 보통 체격에 뿔테 안경을 낀 남자였다. 부드러운 손으로 보아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남자처럼 보이지 않았고 전체적인 인상에서도 기품이 있는 것이 서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자영업자가 아닌 어느 정도 반듯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모양이었다.

    ‘이보우, 이 국장. 댁도 한 마디 해.’

    ‘이 양반은 통 말이 없어 놔서.’

    김해가 고향이란 남자와 낚시꾼이 이 국장이라고 불린 뿔테 안경을 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어어어어, 이 양반 또 울어.’

    ‘다 큰 양반이 왜 그리 운다냐. 이 국장, 울지 마시오. 참말로 술맛 떨어진당께.’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국장이란 남자는 술을 마시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법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술버릇은 가지가지이니 술 마시고 우는 사람도 있는 것이 당연했다.

    ‘참 힘듭니다.’

    이 국장은 쥔 소주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거 누구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 아니겄소. 언제 우리덜이 속편하게 산 적이 있었는가. 그래도 한때 이 국장, 댁은 잘 나갔었구먼. 다 세상이 돌고 돌아 분지는 거니께 즐겁게 살더라고.’

    호남 말씨 쓰는 남자가 이 국장의 등을 툭툭 치며 위로 했다.

    ‘차아아아아암 죄소오오오옹합니다아아. 처음 뵙는 분 앞에서 울다니요.’

    ‘아닙니다. 술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좋은 일 나쁜 일 술마시며 다 터는 거지요.’

    대통령은 한 잔 쭉 들이켜고 이 국장에게 잔을 넘겼다.

    ‘술만 마시면 울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술 안 마시면 괴롭구요.’

    이 국장이란 남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말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놈입니다. 그 어렵다는 고시에도 붙고, 영남의 시골 촌구석 맏이로 태어나 서울의 일류대학에도 붙고, 어렵사리 아버님이 학비를 마련해 주셔서 대도시 일류고도 다니고, 참 열심히 살은 놈입니다. 그렇다고 제 콧구멍에만 쑤셔 넣을 것만 신경쓰고 산 놈은 아니구요. 그래도 손톱만큼의 양심은 있어서 유신반대, 민주화운동도 해본 놈입니다. 5공때는 넥타이 부대였고요.’

    ‘예, 훌륭하십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냥 그동안 1번찍고 살았습니다. 보수이니까요. 보수라고 나쁜 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같은 보통사람보다 조금 잘 사는 놈도 있지요. 어렵사리 고시 붙었는데 빽이 없어서 한직으로만 돌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데로 가려고 아부도 많이 했습니다. 나쁜 돈, 검은 돈도 좀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제대로 못 먹고 윗 분에게 상납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어어어, 그렇게 드으으으런놈 아닙니다. 남 먹는 만큼만 받아 넣었습니다. 남 먹는데 안 먹으니 혼자 잘난 척 하느으으으는 새끼, 개애애애새끼 소리 듣기 싫어 먹었습니다. 그래도 저 드으으으런 놈 아닙니다. 민주화운동도 했고 넥타이 부대도 했습니다. 선생님…아시지요. 그때 경찰 놈이 여대생한테 좆 지랄 한거. 그때 꼭지 돌았습니다. 그래서 서류 내팽개치고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씨발 놈들, 짤라 보라면 짤라 보라고 무작정 거리로 나간 노오오오옴입니다. 그런데…그래도오오오오 착하아아안놈은 아닙니다. 룸살롱 날라리들 가운데 내가 못 먹어 본 년 없습니다아아아아.’

    ‘그랴서 이 나라에 처녀가 없당께!’

    호남 말씨 쓰는 남자가 농담을 해서 좌중이 웃었다. 그러나 이 국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거어어어업타아아알하는 놈은 아닙니다아아. 그렇게 드으으런 놈은 아닙니다. 살아알다보니 다 1번찍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빨간 소리, 좌아아파소리하는 놈들이 싫어 1번찍었습니다. 선생님, 이해하십니까아아아?’

    ‘예, 이해됩니다.’

    대통령이 조용히 답했다.

    ‘좆빠지게에에 아부도 하고 상납도 하니 좋은데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성골만큼은 아니지만 6두품만큼은 지냈습니다. 최고요직은 아니라도 국장자리에 앉아 보기도 했구요. 그런데에에에…그 디이이이이제이이이 시절에도 버텼는데 이 놈의 노무혀니이이이이가 들어서고 난 뒤로 짤린 겁니다. 무우우우론 제발로 고만 뒀습죠. 그래서어어 공직생활 그만두고 사아아아업을 한답시고 나왔는데 친구 놈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아아. 그 놈이 어떤 놈인데… 아가리에 풀칠도 못하더어어언놈이…이류대학 삼류학과를 간신히 졸업한 놈이…내가 그렇게 도와줬는데…제 놈이 나를 배신해…내가 바보였습니다.’

    ‘이 국장님, 아닙니다. 아니고요.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대통령은 이 국장에게 술을 권했다. 만취한 이 국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갑작스런 퇴직과 사기당한 충격으로 큰 심리적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그 오래애애애…알고 지낸 놈에게 당하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아아. 그래도 집에서는 무서우우운 아버지였습니다. 내 아버지처럼 힘있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퇴직하고 사기당해 큰 돈 날리고 난 다음부터 난 내 집에서 살 곳이 없습니다….’

    이 국장의 말은 거의 횡설수설이었지만 대통령은 대략 이런 정도로 거의 중요한 내용을 알아 듣고 있었다.

    ‘처으으음에 노오오무우우현이 원망 많이 했습니다아아. 대학 못 나온 놈이라고 무시이이 많이이 했습니다아. 그런데 이꼴 되고 보니 외려 노무현이가 부럽습니다아아.’

    ‘왜요?’

    ‘노무현이는 적어도 내놓을 명함은 있지 않습니까아아아?’

    명함? 그렇다. 이 국장은 현재 뚜렷한 직장도 없이 심리적 충격 때문에 반 폐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 국장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이 땅의 중-장년들이 많이들 이렇게 고통스레 살고 있으리라.

    ‘노무현이는 적어도 내놓을 명함으으으은 있단 말입니다아아아.’

    술좌석은 조용해졌다. 이 국장의 넋두리만 계속 이어졌다.

    ‘우리 딸년이 얼마 안 있으면 시집으으을 갑니다아아. 그런데 신랑네 가족에게 내놓을 명함이 없어어어어 창피스럽습니다아아. 저도 잘 나가던 놈이었습니다아아. 공직사회에서 국장까지 했던 놈입니다아아아. 서울시내 룸살롱 날라리 년들 가운데 못 먹어어어어 보오오온 년드으을 없습니다아. 그래도 드런 놈 아니야. 민주화운동도 하아아고오오오.’

    이 땅의 아버지들의 쓸쓸한 장년, 대통령은 가슴이 씁쓸해 술잔을 계속 들이켰다. 노무현 씨발 놈 개새끼. 대통령은 자신을 욕하며 술잔을 계속 비웠다. 안 마시면 술상을 엎어 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이 미칠 듯이 미웠다.

    무능한 놈 노무현.

    씨발 놈 개새끼 노무현.

    4년간 허송세월한 놈 노무현.

    대통령은 머리를 쥐어 뜯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지난 4년여 간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나아아아 노무혀니니…그 대학도 못 나온 노오오옴 사람 취급도 안 하던 놈입니다아아. 그런데에에에 노무혀니니니 보면 무릎꿇고 싹싹 빌랍니다아아. 노무혀니니니가 지 코오오드 맞는 놈들, 빨간 놈, 노란 놈 안 가리고 마구 퍼주는 그 자리이이이 있잖습니까? 저도 그 자리, 아무리 하찮은 자리라도 하나 줬으면 합니다아아아. 적어도 딸년 시집 갈 때 하객들한테 줄 명함 박을 자리라도 하나 줬으면 합니다아아아. 딸년이 시집갈 때 우리 아빠아아아 한 자리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아아아. 너무우우우 사는게에에에 비참합니다아아아.’

    ‘이 국장님, 더 어렵게 사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힘내십시오.’

    대통령이 이 국장을 위로 했다. 만취한 이 국장은 아예 테이블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 국장은 엎어진 채로 미안하다, 미안해 소리를 반복했다.

    ‘이런 말얼 노무현이 귓꾸녕에 팍 쑤셔박어야 한당께. 워째 서민들 속터지는 것은 모를까. 그란디 이제 먼 소용이여. 이미 노무현이는 맛이 갔는디.’

    ‘누가 궁궐 속에 계신 노무현 대통령께 이런 말을 해주나. 측근들이 눈도 귀도 다 막았을텐데. 뚫린 게 입이니 아무 말이나 씨부렁대겠지.’

    경호실장은 말없이 술만 마시는 대통령을 보았다. 대통령은 무표정했다. 경호실장은 대통령이 술 잔을 비울 때마다 계속 술 잔을 채웠다. 대통령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맞고요….’

    ‘노무현 개새끼 씨발놈입니다. 죽일 놈입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술자리에 앉은 모두가 말이 없었다. 모두 술잔만 기울일 뿐이었다.

    ‘요즘 무신 신문서 노무현이를 개룩 대통령이라 했다제?’

    ‘이런 무식한 양반을 봤나. 개룩 대통령이 아니라. 계륵 대통령!’

    ‘개룩인지 벼룩인지…그란디 나가 봉께 노무현이는 계륵 대통령이 아니여.’

    ‘그럼 뭔데?’

    김해가 고향이란 장년 남자가 물었다.

    ‘끼룩 대통령이여.’

    ‘끼룩 대통령?’

    ‘그려 끼룩 대통령, 기러기가 끼룩끼룩 울잖여. 기러기 대통령, 끼룩 대통령이여.’

    ‘왜?’

    ‘기러기는 흔히 외로움을 상징하는 새 잖여. 지금 노무현이 곁에는 인간은 허벌나게 많어도 쓸만한 인간은 없당께. 노무현이는 누가 곁에서 직언해주는 눔도 없이 외롭게 사는 거여. 그러니까 기러기 대통령, 끼룩 대통령이랑께.’

    ‘그래, 말된다. 계륵 대통령이 아니라 끼룩 대통령이네!’

    김해를 고향으로 둔 남자가 무릎을 탁 쳤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 술자리는 끝났다.

    경호실장은 만취한 대통령을 부축했다. 대통령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다. 일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난할 수 없었다. 경호실장은 만취한 대통령을 그 누구도 비난해주지 않기를 바랬다. 경호실장은 만취한 대통령을 차로 데리고 가면서 대통령이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노무현 씨바아아알 놈 개새끼이이이.

    노무현 씨바아아아아알 노오오옴.

    끼루우우욱 대토오오오령 노무혀니이이이이.

    대통령을 차에 태우자마자 대통령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통령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를 바라보는 경호실장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부르며 울고 있는 대통령은 영락없는 ‘바보 노무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