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9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취임 후 처음으로 마른 땅 위를 걷는 느낌”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최악의 당 위기 국면을 가까스로 넘겼다는 자평이다. 선거 참패 원인과 책임을 놓고 불거진 당내 이견과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에 대한 불만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자신감도 한켠에 묻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 의장의 리더십에 당내 불만의 목소리는 아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제부터가 김 의장의 리더십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무대라는 것이다. 당․청 관계나 실용주의적 노선 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위기 수습이라는 대명제에 억눌려 있었을뿐,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는 의견이다. 

    당장 김 의장의 부동산·세금 등 정책기조와 관련해 실용도 개혁도 아닌 ‘불명확하고 어쩡쩡한’ 스탠스로 당내 양 진영으로부터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당내 개혁진영 리더격인 한 의원측은 “김 의장의 행보를 당 위기 상황에서 실용과 개혁노선 사이에서 전략적 조율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백번 양보해 보려 한다”면서 “지금은 참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김 의장의 태도에 대해서도 분위기는 ‘떨떠름’한 모습이다.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겠다”던 김 의장이 결론적으로는 노 대통령에게 아무말도 한 게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당장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 문제만 해도 당내 불만이 제대로 노 대통령에게 전달됐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의장의 지난달 28일 노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을 앞두고 김한길 원내대표가 김 의장에게 ‘김병준 카드 반대’라는 분위기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장은 “개각 문제는 이날(청와대 단독회동) 의제에서 후순위여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 ‘김병준 카드’에 대한 당내 불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꼽는 대목이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후 휴가 등을 이유로 당 회의에 불참했는게 이것은 김 의장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었다.

    이와 함께 김 의장의 청와대 단독회동을 놓고서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29일 당 지도부와 청와대 만찬 간담회에서 앞서 의제 논의를 위한 의례적인 단독 회동이었다고는 하나, 지도부와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까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점이나, 개각 반발기류에 맞서 “인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며 사실상 당내 반발을 무마해 준 사람이 김 의장이었던 만큼,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김 의장과 노 대통령간의 단독회동 사실이 알려진 직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동산·세금 등의 정책기조와 ‘김병준 카드’ 반대라는 당내 반발과의 ‘빅딜설’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더불어 김 의장이 7․26 재보선 문제를 놓고 김두관 전 최고위원을 언급한 점도 ‘이해못하겠다’는 반응이 많다. 김 전 최고위원은 5․31 지방선거 직전 정동영 당시 의장에게 “당을 떠나라”며 정동영계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들이댔던' 당사자로, 그에 대한 당내 반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언급을 했느냐는 것이다. ‘인물난’에 따른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여권 내부의 차기 대선 구도를 감안한 김 의장의 의중이 반영돼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당 안팎에서는 나온다. 실제로 김두관 최고위원의 출마 언급이 나왔던 당시의 비공개회의에서는 정 전 의장의 출마 문제도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결과가 어느 정도 보이는 7․26 선거를 김 의장이 여권내 향후 차기 대선 구도를 감안한 일종의 모멘텀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다.

    김 의장의 지난 한달간 총체적 행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난 1987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처신(대통령 후보를 최종 확정받되, 제2의 전두환 이미지로 가서는 안 된다)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김 의장이 여권내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의 한 사람이 만큼, 자칫 노 대통령과의 관계 악화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최종 대선 후보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보가 되는 순간 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도 늦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 사이에 자신은 노 대통령과의 적절한 관계만을 유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을 치고 나갈 경우 노 대통령 탈당에 이은 원심력에 의한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당이 휩싸이면 여권의 차기 대선구도가 확 뒤바뀔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한 행보로 '햄릿'이란 별명이 붙은 김 의장이 언제쯤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 지 그 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