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여러분께서 주시는 어떠한 매도 달게 받겠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며칠만이라도 매를 거둬달라”(열린우리당 대국민호소문)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 판세를 뒤엎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의 고통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들은 더한 고통을 느껴왔다”

    25일 긴급 소집된 열린우리당 비상총회는 그야말로 ‘초상집’을 방불케하는 그 자체였다. 집권여당의 참담한 현주소를 반영하듯 시종일관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석 의원 대다수는 무거운 짙은 색계통의 옷차림에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라는 노란색 리본을 달고 회의장에 입장했다. 침통한 분위기속에 의원들의 의견 표명은 가급적 자제되는 모습이었으며 대신 당 고문들이 막판까지 ‘절대 자포자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참석 의원 대다수는 연신 한숨뿐이었다. 

    이날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 신관 건물에서 소속 의원과 고문, 주요 핵심당직자 등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상총회에서 정동영 의장은 “오죽 급했으면 선거를 몇일 앞둔 시간에 선거운동을 일시 중단하고 소속 의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비상총회를 열게 됐겠느냐”고 자문하면서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에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 의장은 이어 “이대로 가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 할 전망이다. 이는 민주평화개혁세력의 심대한 위기이자, 지방자치 11년의 역사가 후퇴하는 국면이 오고 (결국엔) 민주주의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서 “민주개혁세력 평화세력 미래세력이 와해되지 않도록, 국민을 위한 지방자치가 후퇴하지 않도록 싹쓸이를 막아 달라”고 힘겹게 호소했다.

    정 의장은 광역단체장에 나선 16명의 인물에 대해 “국가적 자산이 이대로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라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자세를 낮춰 사력을 다하자”고 했다.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것을 참성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이뤄낸 승리를 우리는 참성공이라고 한다. 합심해서 최선을 다하자”고도 했다.

    이어 진행된 회의에서는 16개시도지부장 및 선거본부장들의 “전국적으로 전북과 대전은 우세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은 지지층 결집이 이뤄지고 있는데 열린당은 지지층 결집력이 아직은 약하다”는 등의 지역별 판세 보고가 있었으며 일순간 장내는 숙연해지기도 했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조세형 당 상임고문은 “상황이 어렵다. 분명한 것은 주어진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선거라고 하는 것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켜야 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열린우리당은 지켜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성하고 행동으로, 정책으로 반영시켜서 민심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자. 작은 실패가 생산적인 꽃을 피우게 된다.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후보자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당 중진인 배기선 의원은 “지금 우리의 고통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들은 지난 2년여동안 더한 고통을 느껴왔다”면서 “열린당에 많은 기대와 지지를 보냈는데, 너무 가벼웠으며 너무 멀리 있었다. 지금 우리의 고통은 국민의 고통에 비하면 작은 것”이라고 했다. 배 의원은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는 매질은 우리를 죽이려는 매질이 아니라 다시 반성해서 부활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매질이라고 본다. 마직막까지 정성껏 다해보자”고 했다. 일순간 참석 의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떨궜다.

    임채정 의원도 “솔직히 지금 판세를 뒤엎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헌신하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며 “어려울 때,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한다. 지금 모습을 국민들은 2년후에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가하는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포기하지 말고 뛰어야 한다. 그런 모습속에서 새로운 감동의 꽃이 피어날 것”이라고 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포기하지 말고 기죽지 말고 성실하게 우리의 진심과 우리가 처한 상황을 국민들게 호소하자”고 했으며, 정 의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질 때 지더라도 국민 앞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피한방울 땀한방울 까지 쥐어짜서 국민의 가슴을 적시도록 하자”고 했다.

    그러나 회의장을 빠져 나오는 일부 의원들의 입에서는 "뭔가 확실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되느냐"는 등의 자포자기의 심정이 역력했지만 선거 6일을 앞두고 침통한 당내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의원들은 의견 표명을 대체로 자제했다. 

    현재의 위기가 당운을 결정한 중대한 상황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당내 저변에 깔린 모양새지만 선거 이후 책임론 문제 등 당내 각 계파간의 갈등문제는 잠복돼 있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어차피 선거 직후부터 책임론 문제 등이 속속들이 터져나올텐데, 뭣하러 오늘 이 자리에서까지 그런 얘기를 하겠느냐”면서 지방선거 이후의 책임론 문제 제기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걱정이다. 걱정이다”라면서 지방선거 이후의 초래될 당내 상황을 묻는 질문에 연신 한숨을 쏟아냈다.

    대전시당위원장인 박병석 의원은 회의 시작에 앞서 “대전에서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15% 이상 앞서고 있는데 무슨 접전지역이냐”고 언론 보도의 불편한 심기를 표하면서 “왜 자꾸 접전이라고 보도하느냐. 진실만 보도해 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열린당은 이날 참석자 전원이 머리를 조아린 후, 소속 의원과 당직자 전체의 이름으로 ‘싹쓸이만은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열린당은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성난 민심의 파고가 얼마나 높고 무서운지 깨닫고 있다. 모두가 못난 열린당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한다. 국민여러분께서 주시는 어떠한 매도 달게 받겠다. 엎드려 호소한다.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을 앞둔 지금, 며칠만이라도 매를 거둬달라. 열린당이 부족하더라도 지방자치는 살려달라. 열린당이 모자란다고 검증된 일꾼들마저 외면하지는 말아 달라. 열린당에 대한 노여움을 잠시만 뒤로 미루고 한 번만 더 지방권력의 균형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