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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간이 문제다’
5․3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8일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에게 예정된 공식 일정은 12개. 후에 추가된 동대문 두산타워 앞 유세까지 더하면 총 13개. 일정 자체가 서울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비며 돌아다니는 것이어서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강 후보에겐 만만찮은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1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강 후보는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스스로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강 후보가 이날 아침 6시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나와 처음으로 발길을 향한 곳은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리 4․19 묘역. 강 후보는 묘역에 참배하면서 “5․31 지방선거는 민주개혁세력이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선거”라고 했다.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의 결집이 그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날 일정의 대미를 장식할 유세가 서울 중구 명동으로 계획된 것도 이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명동은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
공식 선거운동 첫 테이프를 끊은 강 후보는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역과 쌍문역을 찾아 출근길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아침인사를 했다. 이때 수유역 인근의 한 노점상에서 ‘토스트’를 사먹기도 했다. “이제 서야 아침을 먹는 것”이라고 강 후보 캠프의 한 참모가 살짝 귀띔했다. 한 30여분정도 지났을까, 강 후보는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 예정지인 서울 강북구의 미아삼거리,숭인시장, 성신여대입구역, 혜화역을 찾아 적극적인 거리유세를 펼치면서 본격적인 강북표심 잡기에 나섰다. 연설 목소리나, 주먹을 불끈 쥐는 행동 하나 하나에서 비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참모들이 눈치를 주기 전에 먼저 시민들의 손을 ‘잡아채듯’(?) 악수를 하기도 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던 예전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전 일정의 마지막인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대문 두산타워앞 유세를 마치고 그제서야 강 후보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열린당 지방선거 로고송에 맞춰 춤추고 뛰어다닌 것도 부족해 분초 단위로 끊어지는 오전의 촉박한 강행군 속에서도 피곤한 기색은커녕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즐겁다”고 했다. 그만큼 현재 서울시장 판세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반전의 모멘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자신감도 한 켠에선 엿보였다.
강 후보를 태운 하얀색의 7인승 밴은 어느새 다음 오후 유세 일정 지역인 서울 은평구 불광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불광역 인근의 시장에서 탕 종류의 가벼운 식사로 참모진과 함께 점심을 마친 후, 강 후보는 은평구가 지역구인 이미경 의원과 함께 유세장을 찾았다. 본격적인 오후 첫 유세에 앞서 불광역 사거리 주변에서 강 후보는 은평구의 구청장․시의원 후보자측의 선거운동 자원봉사들의 지방선거 로고송에 맞춘 대대적인 꼭지점 댄스와 함께 자신의 기호 1번을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춤을 추기도 했다.
집단적인 '춤판'에 일부 시민들은 “나라를 다 말아 쳐먹고 양심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도 춤을 추고 자빠졌느냐”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거운동으로 인한 교통과 통행 체증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이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흥헐흥헐 거리는 모습을 보였다.이어 은평구 내의 응암시장과 홍제역 유세에 나선 강 후보는 “이 지역의 30년 낙후를 벗어나야 한다. 능력 의지 있는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 목숨 걸겠다”면서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또 “열린우리당이 잘못했다.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 제가 다 갚겠다”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급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오전 일정 당시가 떠올라 재차 기자들이 ‘아직도 즐거우냐’고 묻자 “즐겁다”며 살짝 미소를 띄어 보였다.
다소 지체된 시간 때문에 황급히 자리를 옮긴 강 후보는 이번에는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을 찾았다. 노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단상에 오른 강 후보는 “종묘공원은 어르신들의 보금자리다. 저희 부모님은 1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철이 없었던 것이 가슴에 맺힌다. 부모님같이 잘 모시고 싶다”고 다소 울먹거리는 듯하기도 했었다. 이때 한 노인은 “강금실은 좋은데 열린당이 좀…”이라면서 “민주당에서 나온 건 배신”이라고 했다. 이날 종묘공원에서 강 후보를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노인을 대접해 달라” “종묘앞에 노인전문병원을 지어달라” “평상시에도 좀 와서 우리들이 이러고 있는 것도 좀 봐 달라” “걱정없이 편하게 살게 해 달라”고 질책이 섞인 하소연을 늘어놨다.
노인들의 이런 말 때문인지, 강 후보는 이날의 마지막 유세 일정인 서울 중구 명동 연설에서는 가슴속에 사무친 듯 정치인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강 후보는 “선거가 막바지 일수록 분노가 치민다. 왜 빈부․지역 격차가 이렇게 심하냐. 이건 아니다”면서 “정치인들이 그동안 뭐했는지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강 후보는 “노인들이 버스라도 타게 해 달라고 하고, 건설인부들은 화장실, 샤워실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한다. 서민들이 요구한 것들은 무리한게 없다. 그런데 정치인들 왜 그런 말들을 하나도 안 들었느냐”며 “이제는 새로운 정치, 서민들을 위한 생활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 제가 하겠다”고 했다.
강 후보의 5․3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 일정은 오후 8시가 돼서야 이렇게 마감했다. 비록 공식 일정을 끝났지만 하얀색의 7인승 밴이 강 후보를 또 다시 선거사무실로 ‘싣고’(?)가는 분위기다. “공식 일정은 이것으로 끝났고 다음 일정은 정해진 게 없지만 선거사무실로 가실 것 같다”고 한 참모는 말했다. 강 후보는 내일도 또다시 시간에 쫓겨야 할 판이다. 직접 가서, 만나 지지를 호소해야 할 곳은 많은데 남아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상대후보인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기 위한 반전도 마련해야 하는데 ‘‘오늘’이 가고 또 ‘내일’이 오는‘ 상황이 괜히 짖궂기만 한 분위기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돌아서는 강 후보의 자그마한 어깨가 유독 무거워 보인다. 집권 여당의 운명을 결정할 어깨라서 그런가보다.
'강 후보의 공식 선거운동 첫날의 백미는 명동 유세'이날 강금실 후보의 5․3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의 백미는 당연 서울 중구 명동 유세. 정동영 의장을 비롯 김근태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와 서울지역 국회의원 등 40여명의 의원들이 강 후보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 나서면서 그 분위기 또한 대통령선거 유세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약 1000여명이 군집해 있는 가운데 명동 한복판에서 열린, ‘오! 필승 강금실’ 등의 지방선거 로고송에 맞춰 이뤄진 집단 ‘꼭지점 댄스'는 장관. 쩌렁쩌렁한 스피커에서 울리는 노랫소리에 맞춰 흥겨운 율동까지 곁들인 집단 춤판은 명동에 나온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일부 시민들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장시간 율동에 노래 소리에 어깨를 들썩였으며,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김근태 최고위원 등의 지원유세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정 의장은 이날 지원유세를 통해 “강금실의 바람이 명동에서 시작되고 있다”면서 “강금실이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이 바뀝니다. 13일간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장은 또 “국민들은 열린당의 어머니다. 매를 맞겠다.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어머니(국민)가 울며 껴안을 때까지 맞겠다.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낮은 자세로 지지를 호소했다. 정 의장은 지원유세에 앞서 이날 참석한 서울지역 소속 의원들을 호명하며 단상위로 불러 일일이 소개하면서 지방선거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도 지원연설을 통해 “수구세력이 오만 방자해졌다. 그 중심에 한나라당이 있는데 여론조사에서 싹쓸이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마다 속이 멍이 든다”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그러나 “우리는 따져야 한다. 우리가 잘못해서 변해서 국민들이 우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강 후보 명동 유세 현장에는 이미경 김형주 유기홍 이상경 우상호 김희선 이근식 박명광 유승희 김덕규 장복심 이경숙 우원식 이계안 유인태 김영춘 민병두 의원 등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