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아주냉동이 망한 후 들어간 대양실업은 야구장갑과 스키장갑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껴볼 수도 없을 물건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프레스 공정에서 일하던 저는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끼어 골절상을 당했습니다. 성장판이 손상된 팔은 뼈 하나가 자라나지 않아 뒤틀어졌습니다.

    팔을 드러낼 수 없는 장애라는 고통이었습니다.

    신나와 아세톤을 작업 중에 숨돌릴 틈 없이 들여마시며 일하다 보니 너무 많이 들여 마셔 후각을 잃어버린 것도 모른 채 단 하루 병원에 누워 있어 보지도 못하고 또 다른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아파도 그 누구에게 아픔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아볼 수 없는 서글픔,

    먹고 산다는 것의 고단함.

    반듯한 책상머리에 앉아 책에서나 읽는 경험으로,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밥상을 대하는게 당연한 사람에게 이런 고단함이 절실하게 느껴질까요?

    당장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월세와 만기가 다가오는 전세살이에서 어디에 방 한칸 마련할까 전전긍긍하는 고단한 사람들의 삶....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도 그 다음날이면 행여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진통제 털어넣고 일어나야 하는 그 절실함 말입니다.

    제 밥벌이를 해야하는,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생존의 무게와 이대로 그저 뒤틀린 장애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 암담한 미래, 가족에 대한 원망과 설움은 자꾸만 저를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공장 관리직이 된다는 것은 공장 노동자들에겐 하나의 성공 모델입니다. 힘든 철야작업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고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저는 검정고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증명이라도 있으면 관리직이라도 하면서 비록 장애를 입었지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결코 공장 노동자,공돌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맘 하나로 검정고시를 공부하였습니다.

    자신의 고학력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뒤늦은 생각으로 공부하는 저를 못마땅히 여기시며 하루 공장이라도 쉬는 날이면 시장 청소로 내몰고 밤늦게 공부하는 아들이 켜놓은 전깃불을 꺼버리는 아버지가 야속해서 저는 더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82년, 운좋게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받은 보상금 8만원과 오리엔트 퇴직금을 모아 입학금을 마련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공돌이가 대학생이라뇨? 네, 저는 해냈습니다. 출세한 겁니다. 사법시험을 통과한다면 정말 대단한 "신분상승"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검정고시 출신에 변변한학벌 하나 없이, 없는 집 자식으로, 장애마저 가진 제가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목표는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 교정 여기저기에서는 군사독재의 횡포에 맞서는 친구들의 거친 함성이 울리고 있었지만 질끈 눈을 감고 귀를 닫으려 애썼습니다. 그나마 힘겹게 얻은 대학 뺏지와 어쩌면 출세할 수도 있는 사다리에 발을 이제 겨우 올린 제가 사회정의, 민주주의라는 거창한 물결 앞에 알량한 그것들을 던져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얻은 대학뺏지와 기회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대학 4학년 사법고시에 실패한 후 다시 1년간의 재수 생활은 저에게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습니다. 고단한 삶을 거치느라 제대로 돌아 볼 수 없었던 저의 지나온 시간들과 창밖으로 들려오는 시민들의 함성은 쏟아지는 잠에 빠져버린,알량한 신분상승에 목을 맨 제 어깨 위에 서늘하고도 엄중한 죽비소리였습니다.

    그저 제 자신과 가족의 안일과 출세를 위해 내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와 제 가족, 많은 시간을 공장의 희뿌연 형광등 불빛 속에서 함께했던 내 공돌이 친구들이 겪었던 아픔들은 그저 개개인의 고달픈 팔자 탓이 아니고 사회가 안고 있고 오로지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출세라는 게 뭡니까? 개천에서 용이 나서 그 은혜를 제 집과 식구들 배불리고 등 따뜻하게 쓰는 게 출세입니까? 뼛골 빠지는 고생 속에서 힘들게 공부해서 검사,판사 되어 좋은 자리 꿰차고 앉아 호령하며 가족들 호의호식하게 하고 이름 드날리며 사는 거,그게 출세라면, 그걸로 만족하는 삶이 내가 추구하는 출세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나의 경험과 장애, 또 힘겹게 얻은 지식을 정말 귀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이씨

    이씨는 이런 고단한 삶 속에서 86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이씨의 대학생활 역시 스스로 힘겹게 학비를 벌어 다니는 고학의 연속이었음이 짐작이 된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헤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씨가 나와는 정치적 이념이나 시각이 다른 열린우리당 성남시장 후보라지만 그가 살아 온 인생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나라당에도 이씨처럼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자수성가한 이들이 많다. 이런 이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면서 너무 나약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그리고 이씨의 살아 온 길을 보면서 결국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다.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기업경영이나 하다 못해 남녀 간 연애에서도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가진 자들은 모두 부패와 반칙으로 돈을 벌었으니 사회를 위해 가진 것을 내놓는 것이 당연하다’라든지, ‘사회 공동체를 위해 가진 것이 많은 자가 내놓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앞서 소개한 이씨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회의 유지를 위해 누진세 제도 같은 것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어느 사람이나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마련인데 너무도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게 ‘우리 모두 같이 살아봅시다’ 운운하며 군중의 힘을 빌려 가진 자들을 협박하는 이들이 과연 양심을 갖고 정말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을 빌린 뒤 진정한 주된 의도인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의식 해소를 위해 가진 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 모두 같이 잘 살아야 하니 가진 자들이 가진 것 좀 많이 내놔야 한다’ 라든지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걷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은 강남 편’ 운운하며 가진 자를 혐오하는 군중의 힘을 빌려 뻔뻔하게 상대를 위협하는 이들을 보고 마치 후미진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지갑을 터는 악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적어도 군중의 권력을 남용하는데 습관이 된 이들은 파시스트나 다름없다.

    나는 적어도 부패와 반칙으로 부자가 된 사람보다 이씨 같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부패와 반칙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선량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면 우리 사회가 진작에 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단순한 선과 악의 잣대로 뚝 잘라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끝으로 이씨의 인생을 보면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원래 진보좌파들이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는 것은 이씨의 청년시절에 등장하는 많은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가진 자들이 좀 양보해 달라는 취지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진보좌파라면 적어도 가진 자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보좌파나 요즘 젊은이들은 마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강남 주민이 돈을 벌면 가만히 앉아서 돈벼락 맞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일부 사람들이 고 정주영 회장을 보고 정경유착을 일삼고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단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운도 아무한테나 따르는 것은 아니고 아무리 정경유착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도 능력과 노력이 없다면 그만한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남 주민들도 그 강남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나름대로 눈물겨운 노력을 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노력 끝에 얻은 자가 그렇지 않은 자보다는 많을 것이고 못 가진 자들이 ‘불로소득’이라고 비난해 마지 않는 ‘재산소득’을 얻는 즐거움마저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묘미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일 게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몸’보다는 ‘돈’을, 그리고 ‘두뇌’를 잘 움직이는 사람이 큰 돈을 벌게끔 되어 있다. 이런 냉엄한 현실이 싫으면 사회주의 사회에 가서 살아야 한다.

    나는 마치 가진 자는 사회를 위해 당연히 가진 것을 내놔야 한다는 둥 강남 부자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는 둥 자신의 빈곤과 무능의 책임을 가진 자들에게 몽땅 전가하고 불로소득에 이를 갈아대는 이들을 보며 마치 파시스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열린우리당 성남시장 후보 이재명 변호사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되건 안되건 관계없이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이씨의 살아온 길을 읽으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