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에 보면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삼고초려’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대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현덕이 제갈공명을 세 번에 걸쳐 찾아가는 등 노력을 다해 제갈공명을 감동시켜 부하로 맞아 들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사성어다.

    한편 이 삼고초려라는 고사성어 외에 수많은 고사성어를 담고 있는 삼국지라는 책은 동양권 최대의 스테디셀러다. 물론 이 삼국지라는 책의 내용 가운데 70% 정도는 허구라고 하여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고, 여성 권익을 옹호하는 여성단체 일각에서는 이 책이 한낱 ‘무협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비난이 많이 쏟아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삼국지 열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삼국지가 위대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하찮은 소설이라면 세인들의 비난도, 관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비 현덕과 손학규 지사

    이 삼국지는 지금도 정치 현실이나 처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즐겨 활용된다. 삼국지에 워낙 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게다. 삼국지를 다시 읽어보면 요즘 한국 정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연상하게 하는 인물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이명박 서울시장을 생각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생각난다. 박근혜 대표를 생각하면 손권이 생각난다. 손학규 경기지사(이하 손씨)를 생각하면 유비가 생각난다.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삼국지의 유비를 연상하게 하는 손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보수진영 내에서 이명박 대세론이 거세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삼국지를 보면 중원의 거의 상당부분을 조조가 평정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포-원술-원소-마등과 같은 쟁쟁한 거물들을 차례로 제압한 조조는 중원 대륙을 완전히 제패하기 위해 적벽에서 손권-유비 연합군과 맞붙게 된다. 강동의 손권과 얼마 안되는 유비세력만 제압하고 나면 중원은 사실상 조조의 손아귀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는 지금 한나라당 내의 형세도 마찬가지다. ‘장강’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었던 손권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 후광’이란 이점을 갖고 있는 박근혜 대표와 얼마 안되는 세력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이명박 시장에게 저항하고 있는 손씨만 제압한다면 한나라당 내 대권주자는 이명박 시장으로 정해진다.

    지금과 같은 형국으로 볼 때는 한나라당 대선전은 재미가 없을 법하다. 이명박 대세론이 워낙 강하므로. 하지만 삼국지에서는 ‘적벽대전’이란 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다.

    박-손, 이명박을 ‘적벽’에서 무찔러라

    마찬가지로 차츰 김 빠져 가는 한나라당 내 경선 레이스를 흥미진진하게 바꾸려면 결정적인 반전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한나라판 적벽대전’이 필요하단 말이다. 물론 이 시장 측의 입장으로 볼 때는 서운한 이야기겠으나 보수진영 전체의 이득을 생각할 때 극적인 반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가 그냥 맥없이 쉽게 끝나면 본선 경쟁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장 분발해야 할 입장에 놓인 것은 박근혜 대표와 손씨이다. 오늘은 박 대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손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므로 손씨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집중하도록 하겠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는 풍부한 인재와 지리적 여건, 한나라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둔 이점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이점을 다 갖고 있었다. 반면 손권은 조조보다는 한참 뒤떨어지지만 그래도 풍부한 인재와 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유비는 한나라 황제의 숙부라는 명망과 자신을 추종하는 인재들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유비는 삼국지 내내 고생을 하고 지낸다. 유비는 뚜렷한 근거지가 없어 남의 땅에서 붙어 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조나 손권 이상으로 유비는 당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삼국지라는 소설이 유비에게 유리하게 집필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이런 이야기는 너무 구체적으로 하지 말기로 하자.

    유비는 한나라 황족의 후손이란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물론 사실 그 황족의 후손이라는 것도 아주 먼 인척관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 대중들에게는 한나라의 권위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적임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중요했던 것은 백성을 잘 살피는 인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백성과 부하를 사랑하는 지도자, 유비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조조군이 먼저 형주부터 점령하고 다음에 오나라를 치기 위해 침공해왔다. 유비는 허둥지둥 살기 위해 도망치는 과정에서도 따르는 백성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두 데리고 가려 한다. 그렇지만 행군 속도가 느린 백성들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된다.

    판단이 빠른 조조였다면 백성들을 버리고 자신이 일단 살기 위해 먼저 도망쳤을 수도 있겠지만 유비는 백성들과 같이 죽을 각오로 백성들과 함께 도망친다. 이런 점은 유비의 단점이기도 하면서 큰 장점이기도 하다. 사실 관우의 죽음에 흥분해 오나라를 치는 것 역시도 유비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장점이기도 하다. 유비가 그런 의리와 인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무 것도 없는 그를 따른 것이다.

    유비의 인정과 의리를 다룬 일화는 위의 이야기 외에도 많이 있다. 장판파에서 조운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 갖고 오자 유비는 아두를 수풀 속에 내던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잃으면 다시 낳으면 되나, 천하의 용장은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다’라고. 이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유비의 신하들이 감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유비의 리더십은 여포의 그것과 비교된다. 여포는 부하를 사랑할 줄 몰라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어떻게 보면 여포는 양부(養父)인 정원과 또 다른 주군인 동탁을 배신한 전과가 있기 때문에 결국 자신도 부하의 배신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 뿌린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솔직히 손씨를 보면서 유비가 떠올랐다. 물론 손씨를 가까이서 주의깊게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손씨의 성품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손씨와 유비는 대단히 닮은 점이 많다.

    손학규의 ‘와룡과 봉추’는 누구일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유표의 세력권 안에서 겨우 버텨가던 유비는 유표의 부하 채모의 초대를 받고 형주성으로 간다. 그러나 거기서 채모의 흉계에 말려 죽을 뻔 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난다. 채모는 자신의 조카 유종이 형주의 권력을 잡도록 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유비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형주성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어느 마을을 지나던 유비는 그 마을에서 수경 선생이란 학자를 만난다. 유비는 괴로운 마음에 수경 선생에게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한다. 자신은 언제까지 이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냐고.

    그때 수경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와룡과 봉추 가운데 하나만 만나도 천하를 얻을 것인데 결국 그들이 유비를 돕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어 수경 선생은 유비에게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뛰어난 책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해준다. 유비는 수경 선생의 말에 ‘제 주변에는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뛰어난 장수들이 있다’고 항변한다. 그렇지만 수경 선생은 ‘그들 장수들은 개개인의 무용은 뛰어날지 몰라도 전략을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는 원대한 능력은 부족하다’고 정곡을 찌른다.

    결국 유비는 서서의 소개로 알게 된 제갈공명을 영입하기 위해 3번에 걸쳐 그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낮잠 자는 젊은이 제갈공명을 꼿꼿하게 서서 기다리기까지 한다. 유비를 수행해 갔던 장비는 그것을 보고 ‘이 놈의 집구석에 불을 확 싸질러 버릴까’하며 길길이 날뛰지만 관우의 만류로 애써 분을 삭이기도 한다.

    제갈공명의 대 활약

    그런 삼고초려의 노력 끝에 제갈공명은 유비 진영에 합류한다. 그리고 제갈공명은 대활약을 펼쳐 유비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먼저 오나라에 가서 손권이 조조와 싸우도록 만든다.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일궈내고 그 과정에서 형주를 유비가 사실상 차지하도록 해서 제대로 된 세력기반을 갖도록 한다. 그 다음 뚜렷한 기반이 부족했던 유비를 위해 형주의 군사를 동원해 촉(蜀)을 치도록 한다. 촉에서 방통이 애석하게 죽자 대신 촉으로 가서 촉군을 무찔러 유비를 촉나라 황제로 만든다.

    유비가 죽은 이후에도 제갈공명의 활약은 계속 된다. 국력으로 생각해 볼 때 위나라의 3분의 1 정도도 안되는 힘을 갖고 제갈공명은 집요하게 위나라를 괴롭힌다. 그에게는 ‘한조(漢朝) 복원’이라는 역사적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며 촉이라는 변방에 가만히 있어서는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집요하게 위나라를 공격하게 했을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대강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눈치 챘으리라. 그렇다. 손씨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제갈공명’이고 현인을 구하기 위한 ‘삼고초려’다. 지금 수경선생이 손씨를 만난다면 무엇을 말할까? 당연히 ‘당신 밑에는 뛰어난 전략가가 보이질 않소’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 손씨의 모습은 뚜렷한 기반없이 떠돌던 유비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수경선생은 유비에게 ‘와룡과 봉추’가 당신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손씨는 언제쯤 ‘와룡과 봉추’를 만날 수 있을까? 유비가 ‘삼고초려’로 요약되는 인재 찾기 노력을 다 했던 것처럼 손씨도 인재 찾기 노력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