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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가 쓴 "‘2007년 선진화체제’를 논하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다나카 나오키. 일본 21세기 정책연구소 이사장이자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 브레인이다. 그가 보내준 한 권의 책이 요 며칠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2005년 체제의 탄생-새로운 일본이 시작되다”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은 2005년 9월 11일의 중의원 선거를 계기로 전후(戰後) 일본정치를 규정해 왔던 ‘1955년 체제’가 사라지고 새로운 체제가 탄생했음을 고하고 있다. 실로 50년 만에, 그것도 평시에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정권기반의 총체적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05년 체제 탄생의 주역은 고이즈미가 이끄는 신(新)자민당이다. 왜 신이라는 접두어가 붙는가? 고이즈미의 투쟁 대상은 야당이 아니라 구(舊)자민당이었다. 그는 먼저 파벌의 각료 추천을 거부함으로써 자민당의 오랜 관행인 파벌정치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다음으로 그는 정부 보증과 예산 배당이라는 수단을 통해 정치자금을 모으는 일본식 정경유착의 온상인 ‘족의원(族議員)’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9·11선거의 유일 쟁점이었던 우정(郵政)민영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정·도로·농수산·문교·후생으로 이어지는 ‘5족(五族)체제’의 ‘알선정치’에 본격적인 메스가 가해질 전망이다.
고이즈미 개혁의 캐치프레이즈는 간명하다. ‘관(官)에서 민(民)으로’다. 이를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모든 기득권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에 2만4000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자민당의 전통적인 표밭으로 기능해 왔던 우체국 네트워크의 격렬한 반발 속에서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낸 고이즈미, 사람들은 그를 초기에 돈키호테 또는 ‘헨진’(變人·괴짜)이라 불렀지만 그는 분명 시대의 풍운아였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잃어버린 10년’의 종결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부정적 과거(old Japan)가 종지부를 고하고 희망찬 미래(new Japan)가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 그래서 새로운 체제의 구도를 명시적으로 그려보고자 하는 의욕이 이 책을 단숨에 집필케 했다고 다나카 이사장은 말한다.
병술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사회의 주요 세력들이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2005년 체제의 탄생을 외치고 있는 옆 나라 지식인이 부러울 뿐이다. 돌아온 ‘정치의 계절’이 갖는 중대성에 비해 구호가 아닌 결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출할 비전과 정책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2007년 선진화체제’를 정열적으로 논해야 한다. 일부 극단적 세력을 제외하고는 민주화 이후의 과제가 선진화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구체적 전략과 방책이다.
선진국 진입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1인당 3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향후 몇 년 동안 평균 몇 %의 성장을 해야 하며 성장엔진 가동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은 무엇인지, 어떤 나라들과 어떤 수순으로 FTA를 맺어나가는 것이 옳은지, 교육은 어떤 인재를 키워내야 하고 노사관계는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지, 이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은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지 등 종합적 선진화 프로그램이 활발히 논의, 모색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체적 접근의 필요성과 정확한 우선순위 설정(priority setting)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론은 이런 점에서 그 문제의식이 매우 제한적이다.
‘1987년 체제’ 극복을 논하더라도 ‘민주화시대의 종언과 선진화시대의 개막’이라는 거시적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선진화시대 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가 명료해지며, 그에 따라 한국정치의 양상 또한 ‘20세기형 이념갈등’에서 ‘21세기형 정책경쟁’으로 진화될 수 있다.
아직도 2년이나 남았다며 한숨 쉬는 이들이 있다. 그럴 겨를이 있다면 2007년 선진화체제를 열심히 논하고 준비하자. 그렇게 하기에 2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