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볕논평’ ‘파격’ ‘이색’ ‘꾀짜논평’ ‘정치판의 어린왕자’ ‘부드러운’ ‘온건’ ‘온정 브리핑’

    삭막한 정치판에 웃음꽃을 피우는 ‘소(笑)변인’이 되겠다는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의 최전방에 서는 야당 대변인에게는 왠지 어색한 말들이다. 


    이 대변인은 7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부드럽게 하고 싶었다”며 화제를 낳고 있는 지금의 ‘이계진표 논평’이 ‘정치실험’의 하나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당직개편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대변인 물망에 올랐던 이 대변인은 ‘유머가 통하는 때’를 기다렸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는 것이다.

    ‘해바라기 피는 마을’이라는 개인블로그의 ‘촌장’으로 직접 그린 그림 등을 이용해 정치권을 풍자해 왔던 이 의원은 그 ‘전력’을 대변인 논평에도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다. 정부․여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유연하지만 힘 있는’ 말이 상대의 잘못을 더 아프게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비생산적인 논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많은 의원들이 이 자리(대변인)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동안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껴 고사했다”며 “또 다른 고사 이유는 ‘소(笑)변인’과 연관이 있는데 지금처럼 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 지금보다 더 가볍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인터넷 언론의 비중이 커진 지금이 젊은이들 눈높이로 다가설 수 있는 시기”라며 “지금이라면 유머 정치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남들은 싸움하는데 나는 아름다운 블로그나 하고 앉아 있고 지역구나 왔다 갔다 하면 ‘보신주의’로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남들이 흙탕물에서 싸울 때 일조해야 당원으로 국회의원으로 할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물이 맑아지면 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대변인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대변인직 수락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정형근 의원이 잘한다고 격려해 백만원군 얻은 기분이었다”

    날카롭고 매서운 논평으로 20개월 동안 대변인직을 수행했던 전여옥 의원과 자주 비교되며 야당 대변인으로서 너무 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 이 대변인은 “전략의 차이로 봐 달라”며 “그 시기에는 그런 전략·전술이 필요했고 지금은 이계진의 부드러운 논평 방법이 통할 때”라고 반박했다.

    이 대변인은 자신이 ‘소변인’을 자처하게 된 이유가 한나라당의 취약층인 젊은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부족한 부분이 청소년들, 젊은이들”이라며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나 같은 방법이 좋지 않겠느냐”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한나라당은 재미있는 당이다. 꼴통 당인 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며 “박근혜 대표가 인선할 때 그런 것도 참고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대변인 문화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한나라당에서 대표적인 강경보수로 분류되는 정형근 의원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의원이 대변인직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정 의원이 이 의원에게 “진짜 잘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고 격려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좀 더 강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할 줄 알았던 정 의원이 그렇게 나와서 나도 솔직히 놀랐다. 정 의원이 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자신 있다. 기분이 좋았고 백만 원군을 얻은 것 같았다”

    “내 기조 꺾어야 하는 우려는 참고만, '엉거주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야당 대변인으로서는 너무 부드러운 이 대변인 스타일에 대한 당내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우려의 목소리 내 기조를 꺾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참고만 할 뿐”이라며 “모든 우려에 모두 맞추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 '엉거주춤'이 될 것 아니냐”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막춤을 추든 블루스를 추든 내 기조대로 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북을 친다고 북장단 맞춰 추고 스윙이 나간다고 스윙댄스를 추면 안 된다”면 “지금처럼 해도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충분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말하지 않고 대문에 개조심이라고만 써 놔도 무는 개가 있다는 것을 알 것 아니냐”며 “물리면 피투성이가 돼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며 과거 개에 물린 사람의 사진을 걸어 놓지 않아도 개 조심 할 것이다. 문자 하나만으로도 메시지는 전달된다”고 특유의 비유를 써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한 것은 모든 일을 다 웃음과 재미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며 “때론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정부·여당에 대해 공격할 일이 있으면 공격하겠다”고 야당대변인으로서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다만 사사건건 정치적인 공세는 하지 않겠다는 것과 공격을 하되 조금 부드러운 말을 골라서 너무 자극적인 문장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그의 ‘소신’ 때문인지 최근 쏟아내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은 ‘톡톡 튀면서’도 그 안에 뼈가 담겨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대접을 어떻게 하는지 보면 쌀 관련 전시회장에 가셔서 맨밥만 잡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반찬도 안 드려서 맨밥만 잡수셨다고 한다”(11월 28일)

    “혹시 내가 추병직 건교부 관에 대해 ‘이해한다’는 말을 하니까 각 관료들이 때가 왔구나 하고,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실 그것은 나의 밑밥이었다”(12월 2일)

    “인권위원회는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시 잠그고 'MT 여행 중'이라고 써 붙이든지 '내부 수리중'이라고 써 붙이든지 해야 옳을 것이다”(12월 6일)

    “혹시 손님이 많이 오시는 국제인권대회용 립서비스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봤다. 왜냐하면 손님이 오시면 무섭던 엄마가 갑자기 상냥해 지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손님이 가시면 다시 무서워 지셨다”(12월 7일)


    그는 이어 “우리가 잘해서 점수를 얻어야지 비난해서 점수 얻는 일은 덜 했으면 한다”며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나쁜 당이라고 해서 점수를 얻으려 하지 말고 한나라당이 무능하고 나쁜 당이라고는 것을 국민들이 느끼도록 자신들이 잘하면 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그들(열린당)은 하향평준화가 소망인 것 같은데 우리는 상향평준화가 소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박 대표, 상당히 세심하며 꼿꼿하고 강하다”

    이 의원은 자신처럼 ‘특이한 대변인’을 발탁한 박근혜 대표에 대해 “세심하면서 강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박 대표와의 거리에 일정한 선을 긋고 있었다.

    그는 “박 대표는 대충 넘어가고 큰 덩어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세심하다”며 “내 앞에서 나를 환영하는 사람들 중 저쪽에서 힘겹게 서 있는 사람을 챙기는데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또 “박 대표는 상당히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도 의지력도 강하다”며 “현장에 가서도 우물우물 대충대충 그만두는 것이 없다. 일정대로 사람마다 다 한마디씩 하는 것을 소화해 낸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것을 보면 참 꼿꼿하고 체력이 좋다”며 “평소 식사량을 보면 칼로리가 그렇게까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강인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는 “누군가는 박 대표의 집에는 자주 가느냐고 묻는데 ‘여자 집’에 어떻게 가느냐, 박 표도 불편할 것이다”며 “사사건건 박 대표가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심중을 헤아려 환심을 사야한다면 난 (대변인) 못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런 것 오히려 대표를 밖에서 좋지 않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병두, 말을 참 신사적으로 잘한다” 칭찬

    얼마 전 각 당 대변인들에게 “떡볶이나 함께 먹자”고 공개 제안한 이 의원은 열린당 전병헌 대변인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많고 거리낌이 없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능수능란하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많이 못 봤지만 순수한 것 같다. 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작전인지 모르겠다”고 각각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두 괜찮은 분들인데 내 제의로 서로 한 소리를 하고 싶어도 못해서 불만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생각대로 활동하는 것이어서 따라올 필요는 없지만, 사실 따라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새로운 대변인 문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원기 국회의장으로부터 “말을 예쁘게 한다”는 칭찬까지 들은 이 의원이 생각하는 ‘예쁘게 말하는 의원’은 열린당 민병두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같은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으로 민 의원은 참 신사적”이라며 “아는 것이 많고 경험도 풍부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고 칭찬했다.

    그는 “민 의원이 '신문쟁이'였기 때문에 발음은 좋지 않지만(웃음) 말을 참 신사적으로 잘한다”며 “나도 민 의원과 싸우고 대적해 봤지만 참 잘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후원금 NO, 의정보고서도 NO, ‘정치실험’ 중

    이처럼 새로운 대변인 문화상 정립 외에도 이 의원은 ‘후원금 없는 정치’에도 도전장을 내밀며 ‘정치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밖에서 정치인을 봤을 때 보기 싫었던 모양새나 말씨, 행위 등은 나 스스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조가 있다”고 ‘정치실험’의 기준을 말했다.

    이 의원은 현재까지 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고 100% 세비로만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이 실험 결과에 대해 내년 정도 중간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이 의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정보고서를 발행하지 않았다. 한번 발행하는데 3000만~4000만원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의정보고서를 통해 ‘자기자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한 달에 50만원씩 적금을 부어 4년 후 17대 의원직을 마무리할 때 한번 내겠다고 한다.

    “나의 정치 입문은 방송 못하게 한 열린당 덕”

    여당 대변인으로부터 ‘신사협정’을 맺자는 회의적인 반응까지 이끌어 낸 이 의원이지만 열린당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감정과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 일로 일생을 마치고 싶어 14대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국회의원직 제안을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거부한 이 의원이 17대에는 스스로 의원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방송을 하지 못하게 한 열린당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2003년 방송생활 만30년을 마쳤는데 그 당시 진행한 KBS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정부가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 했다”며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KBS채널을 통해 그러다가 당시 코드인사 논란이 있던 사장이 방송을 내려버리더라”고 개탄했다.

    그는 “7개월 동안 다른 방송에서 같이 일하자고 하는 것을 고사하고 내가 정치를 해 바꾸겠다고 나서게 됐다”며 “열린당과 가장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곳이 한나라당이었고 나의 이상에도 가장 근접해 한나라당 행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살아온 시대와 내 가치관이 한나라당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욕을 먹고 있지만 내가 들어가 조금이라도 (당 발전에) 기여 하겠다고 다짐했다”며 “후원금을 안 받는 것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돈과 무관한 정치를 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가 국민, 둘째가 당, 셋째가 지도부, 마지막이 자신이라는 이 대변인의 소신 있는 ‘정치실험’이 그의 바람대로 정치권에 새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이계진 의원 약력]

    ·1946년 강원도 원주 출생

    ·학력
    1965년 원주고등학교 졸업
    1970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경력
    1970년~1971년 원주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
    1973년~1992년 KBS아나운서
    1992~1994년 SBS아나운서 부국장 대우
    1995년~2003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인터넷방송국장
    한나라당 국민참여위원장
    現 국회 문화관광위원
    現 한나라당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