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생가에 '항미원조(抗美援朝)' 4글자 버젓이… 대놓고 6·25 왜곡 화순군, 능주초등학교에 정율성 벽화·조명… 정율성 교실도 재현해 놔보훈부, '정율성기념공원' 백지화 계획… 헌법소원도 청구할 계획
  • ▲ 23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율성거리에서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23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율성거리에서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공원을 광주광역시가 48억원의 세금을 들여 조성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23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광주시는 정율성의 항일 독립정신을 기린다는 취지로 10여 년 전부터 정율성로(路)를 비롯한 기념관과 동상, 정율성음악제 등을 마련했다.

    광주시는 또 동구 불로동 일대 878㎡에 정율성역사공원을 연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토지 보상비를 포함해 예산은 총 48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며, 공원에는 정율성의 삶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광장과 정자 등 관련 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전남 화순도 '정율성기념사업' 예산 집중… 초등학교엔 대형 초상화도

    전남 화순군은 2019년 정율성 고향 집 복원사업에 12억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해당 공간에 전시된 사진에는 '정율성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시절 남긴 소중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 항미원조란 본래 중국에서 6·25전쟁(한국전쟁)을 부르는 말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해 북조선을 돕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의 침략에 저항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며 자국의 참전을 정당화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10·25일을 항미원조 전쟁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런 이유로 '항미원조'란 말은 6·25전쟁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중국적 시각의 단어로 해석된다. 

    또 화순군은 2017년 정율성이 학창시절 잠시 재학했던 화순 능주초등학교 외벽에 1억원을 들여 가로 10m, 세로 11m의 대형 '정율성 초상화'를 그리는 등 경관조명 정비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에는 정율성 흉상도 존재하는데, 흉상 주변에는 담쟁이를 심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등 관광지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능주초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정율성 초상화 작업은 학교에서 한 것이 아니라 군청에서 지원해 그려졌다"며 "올해 초상화 수정작업이 한 번 진행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100주년 기념관 2층에 정율성 초등학교 시절을 재현한 교실도 마련돼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보훈부는 광주시의 이러한 '정율성 기념' 조성사업의 백지화를 위해 현재 헌법소원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본지 14일자 보도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사업이 묵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부 관계자는 "지방재정이든 중앙재정이든 국가재정 사용 준칙이라는 게 있다"며 "재정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내는 것이므로, 모든 재정 운용은 헌법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운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율성기념사업이) 우리 헌법의 가치를 저해하는지 알아보고 있다"며 "만약 그것이 맞는다면 헌법소원 청구 등 문제를 제기해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정율성은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했던 인물로, 그를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 ▲ 정율성 동상. ⓒ뉴데일리DB
    ▲ 정율성 동상. ⓒ뉴데일리DB
    정율성, 北·中 공식 군가 만들어… 중국으로 귀화한 '중국인'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출생한 후 의열단장 김원봉이 중국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가 항일 독립운동에 참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과 북조선로동당에 입당했으며, 1939년 중국 시인의 가사를 바탕으로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했다. 또 북한을 오가며 '조선해방행진곡' '조국의 아들' '인민공화국의 가치' 같은 북한 군가를 짓기도 했다.

    정율성은 1956년 연안파 숙청 당시 중국으로 귀화했으며, 1976년 중국인으로 죽어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묻혔다. 

    이후 정율성은 2009년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선정됐다. 북한에서도 정율성 평가에 호의적이며,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는 1991년 <음악가 정률성>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