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예산안에 백신 구입비 없어… 문제 제기되자 4차 추경, 예산안에 '부랴부랴'어떤 백신 얼마 주고 들여올지 몰라 갈팡질팡… 거리 두기 안주, K방역 홍보비만 펑펑공무원 복지부동도 문제… "백신 선구매해도 된다" 감사원 확인하자 AZ 계약 체결
  • ▲ 지난 15일 '행동하는 자유시민' 등 시민단체들이 백신 구매 난맥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난 15일 '행동하는 자유시민' 등 시민단체들이 백신 구매 난맥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상윤 기자

    문재인정부는 애초부터 코로나 백신을 구입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초 제출한 2021년도 예산안에는 백신 구입비가 전혀 편성되지 않았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9월 말에야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4차 추경예산으로 1839억원, 2021년도 예산안으로 9000억원이 반영됐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본지에 제공한 제382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에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11월4일 열린 회의에서 강 의원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나성웅 질병관리청 차장에게 왜 백신 구입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 차장은 "어떤 백신을 구매할지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나 차장은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에서 예비비나 추경을 통해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에도 당국은 "어떤 백신 얼마 주고 들여올지 몰라"

    이에 강 의원이 "예산이라는 것이 원래 예측하고 (짜는 것 아닌가) 국민 60%를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면서 예비비나 추경에서 반영하겠다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지 않나"라고 지적하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답했다. 강 의원이 다시 "(백신을 들여와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그 '불확실성이 뭔가"라고 묻자 정 청장은 "어떤 백신을 선정할 것인지와 가격에 대한 부분"이라고 대답했다.

    박 장관은 강 의원의 추궁에 "현재 가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각 회사가 제시하는 가격차이가 너무 크다. 어떤 회사는 한 번 접종에 20달러 정도인데"라고 말했다. 가장 비싼 백신을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당시까지 어떤 백신을 구입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팡질팡했다는 말이다. 

    강기윤 "백신 구매는 당연한 것인데 예산 편성 안 해, 이해 못하겠다"

    강 의원은 "에버리지(백신 평균가격)를 한다든지 해서 어떻게든 국민 3000만 명에 대해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예산이라는 것이 예측을 해서 하는 것인데, 예측이 돼 있는 것을 계상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백신 구입 예산은 지난해 총 네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안에도, 2021년도 정부 예산안에서도 빠진 상태였다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비로소 추가됐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서 백신 구입 관련 요구를 하지 않아 관련 사업비에 포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풍경은 일반적으로 정부가 예산을 증액하고, 국회가 불필요한 예산을 일부 삭감하는 통상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국민의힘은 "K방역 홍보비는 펑펑 쓰면서 정작 온 국민의 생명이 걸린 코로나 백신에는 세금을 아끼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백신 구매 예산, 2021년 정부 예산안에 빠져 있다 국회에서 추가

    국민의힘이 백신 구입 예산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엉뚱하게 공공의대 예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 예산소위가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공공의대 예산 전액 삭감을 하기로 했지만, 민주당이 이에 반대하면서 11월19일로 예정됐던 백신 구매 예산을 비롯한 보건복지위 전체 예산 의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당·정이 이처럼 백신 구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연내에 백신이 개발돼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조 의원은 "질병청은 지난해 11월 말 감사원으로부터 '백신을 선구매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확인한 직후인 11월 말에야 아스트라제네카와 최종 구매계약을 체결했다"며 "코로나19라는 초유의 비상시국에 공무원들의 복지안동적 업무방식도 백신 늑장확보의 큰 요인"이었다고 비판했다.
  • ▲ 서울시내 한 카페에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알리는 표식이 붙어 있는 모습. ⓒ권창회 기자
    ▲ 서울시내 한 카페에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알리는 표식이 붙어 있는 모습. ⓒ권창회 기자
    "거리 두기에 안주, K방역 과신… 결국 웃돈 줘가며 구매"

    조 의원은 이어 "K방역에 대한 과신도 한국이 백신 확보전쟁에서 뒤처진 한 요인"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에 중점을 둔 K방역에 심취한 나머지 백신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또 "정세균 국무총리도 '백신 태스크포스를 가동한 7월에는 국내 확진자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정부의 K방역에 대한 자만을 인정한 바 있다"며 "정부가 뒤늦게 웃돈을 줘가며 백신을 구매하느라 예산부족 사태를 초래했음에도, K방역 홍보에 몰두하며 혈세를 낭비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7월은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 등 주요 백신 개발사들이 임상 2·3상에 돌입하던 시점이었다. 우리 정부가 백신 구매를 주저하는 사이 일본은 화이자와 선구매계약을 체결해 60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당시 언론은 연내 백신 개발 전망이 밝아지고 이에 따라 각국이 백신 확보 '전쟁'에 돌입했다고 지적하며 백신 구매를 종용했지만, 정부가 백신 구매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11월이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백신의 연내 개발을 확신하지 못하고 국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기대했던 것이 해외 백신 구매를 늦춘 원인이었던 것 같다"며 "당국이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③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