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치주의, '사회주의혁명 정치' 완성에 봉사하는 '통치수단'으로 변질
  • ▲ 김명수 대법원장. ⓒ뉴데일리
    ▲ 김명수 대법원장. ⓒ뉴데일리
    엊그제 이 나라 헌정사(憲政史) 초유의 ‘판사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 과정과 실체에 대해서 여러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일간신문에서는 “인민재판과 다를 게 없다”고 비난했다. 그 본모습에 대해서는 “법원을 겁박하여 길들이기 위한 힘 과시였다”고들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현직 대법원장의 처신도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단다. 잘 알려진 자세한 사연대신에 어느 일간신문의 거침없는 비난을 소개한다.

    “정권의 수족처럼 움직이며 눈치를 보는 거짓말쟁이를 대법원장으로 보유한 나라.”

    더군다나 때마침 단행됐다는 법관 인사(人事) 조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법관 인사를 보면 김 대법원장의 후안무치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넘어 사법부 전체를 망가뜨릴 지경….”

    이에 동의한다면, 한마디로 ‘사법부 장관’ 그것도 ‘死法部 長官’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언제 적부터 이 나라 ‘사법(司法)’의 행태에 대해, 호사가(好事家)들의 입방아가 있어왔는데, 맥을 같이 한다고 보여 진다.

    “‘법무(法務)’한다며 ‘법을 내팽개친(法無)’ 상태에서, ‘사법(司法)’하는 일이 ‘법 죽이는 일(死法)’이 되고, ‘법원(法院)’은 ‘법에서 멀어지고(法遠)’ 있다.”

    요즈음 이 나라 ‘국민’들은 ‘법(法)’이 통하지 않는 ‘법무부(法無部)의 장관님’을 세 분씩이나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궁시렁거리질 않나. 마침내 ‘사법부(死法部) 장관님’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누어, 각각 별개의 기관에 이것을 분담시켜 상호간 견제·균형을 유지시킴으로서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통치조직 원리이다. 자유주의적인 정치조직 원리로서 국가권력의 전횡(專橫)을 방지하여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3권분립’(三權分立)에 대한 사전(事典)의 압축적인 설명이다.

    짧은 식견이지만, 나누어진 세 권력이 나라라는 솥을 세 발처럼 서로 대립하면서 떠받친다는 점에서는 ‘3권정립(三權鼎立)’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싶다. 세 발의 크기가 다르거나, 받드는 강도(强度)에서 차이가 나면 솥이 어찌 되리라는 건 물어보나 마나다. 그런데….

    익히 경험에 의해 학습이 진행 중이다시피, 저 여의섬의 큼지막한 축사(畜舍)는 ‘문의(文意)의 전당’이 되어버렸다. 그 연장선에서 ‘사법(司法)’이란 것도 다름 아닌 바를 어렴풋이 듣고 봐 왔다. ‘법(法)’ 보다 ‘힘(또는 떼)’의 지배가 되어 간다는 걸 ‘국민’들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느 원로 ‘법학자(法學者)’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사법권의 독립 없이 사회주의혁명 정치(democratic centralism)의 완성에 봉사케 하는 법치주의는 사회주의 통치수단(the Rule by Law)에 불과하지, 결코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권력통제 기능을 지닌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아니다….”

    그렇다. 마침내 ‘판사 탄핵’과 ‘사법부(死法部) 장관’의 처신으로 확실히 입증되었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하지만….

    실제적 상황에 가린 깊숙한 내막은 학문적인 정의나 학자의 따끔한 경고(警告)를 넘어서고 있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들 한다. ‘3권분립(三權分立)’이나 ‘3권정립(三權鼎立)’을 무시하거나, 저해하는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3권(三權)’이 특정 개인과 무리 앞에 아예 맥을 못 추며 무너져버린, 제대로 서지 못하고 누워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즉 ‘불립(不立)’의 딱한 처지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단다. 그리고….

    여러 이유 중에서도 이 나라 ‘국민’들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측면이 강했다는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더불어서 결국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주체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는 자성(自省)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는데….

    흔히 요란스레 입에 오르내리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넘어서, 아주 짧은 세월동안 “여러 번 경험한 나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는 거센 분노 또한 확산·결집되고 있다질 않는가. 그래서….

    이제 이런저런 자성(自省)의 결의와 분노의 함성을 모아서 “색(色)다른 경험이 필요하지 않은, 정상적으로 전진하는 나라”를 되찾을 준비에 떨쳐나서야 할 때라고….

    ‘입춘(立春)’ 추위가 아직 간간히 허세(虛勢)를 부리고 있지만, 봄은 이미 이 나라 곁에 와있다. 손에 잡힐 듯이….


    - 李 竹 / 時事論評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