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 부친, 일본식 대처승…'대처승' 없애고 '비구승'적 한국 불교 만든 이승만…'망언' 조씨 주장, 한국사회 성숙 큰 장애물
  • ▲ 강규형 명지대학교 교수·前 KBS 이사. ⓒ뉴데일리DB
    ▲ 강규형 명지대학교 교수·前 KBS 이사. ⓒ뉴데일리DB
    조정래 작가는 10월 12일 열린 '작가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어이없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150여만 명에 이르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하고,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 유학파,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다 민족반역자가 된다”고 말했다. 극단적 국수주의 또는 종족주의는 종종 사회의 흉기가 된다는 것을 세계사는 가르쳐줬다.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이런 유치한 생각은 한국사회를 성숙시키는데 큰 장애물이 됐다.

    조정래 "일본 유학파는 무조건 민족반역자"

    조씨의 주장은 거의 망언에 가까운 내용이니, 일본에 유학했다고 친일파니 민족반역자가 된다는 한심한 기준으로 보면 일본에서 항일운동하다가 옥사한 윤동주 시인도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유학했으니 민족반역자다.

    고구려 중심의 민족사관을 가진 함석헌 선생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나왔으니 친일파. 릿쿄(立敎)대 대학원을 나온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이자 한국 종북세력의 거두 박성준 교수도 친일파. 문재인 대통령의 딸인 문다혜 씨는 일본 국수주의의 본산인 고쿠시칸(国士舘) 대학에서 유학했으니 역시 민족반역자.

    아예 일본 여자와 결혼한 진중권 전 교수는 그럼 일본인 그 자체가 되나? 이러니 "딸을 일본 극우파가 세운 일본 대학으로 유학 보낸 문 대통령 부부가 숨은 토착왜구였네!" "조국은 죽창 들고 토착왜구 물리치러 청와대에 쳐들어 가야겠다"라는 조롱이 나오는 것이다.

    진중권은 조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광기"에 가까운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에 조정래는 14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 진씨의 비판에 대해 "저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라며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로도 그렇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윤동주·박성준·조정래 부친…'文대통령 딸'도 민족반역자

    논쟁을 하다가 갑자기 나이·선배 타령하는 것도 대단히 '꼰대'스럽지만, 조정래는 자기 스승인 서정주 선생을 격하게 비판하지 않았나. 이런 것이 바로 "내로남불"의 극치다. 이런 실언을 방어하느라 궤변을 늘어놓는 집권 민주당도 한심하다.

    조정래의 선친은 일본에서 일본불교 교육을 받고 와서 일본식 대처승 풍습을 따라 부인을 얻고 애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조정래였다. 태생 자체가 '일본식'인 것이다. 해방 후 일본식 불교의 영향력을 줄이고 일본식 대처승제도를 약화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비구(독신자 比丘)승 적인 조계종 중심의 한국불교로 이끈 사람은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다. 조 작가 선친은 일본 유학생이니 조정래의 주장대로라면 졸지에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덧붙여 조 작가는 소설 <태백산맥>을 "국민 90%가 읽었고" 그 소설이 가진 "'오늘의 현실성'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비결" "내가 쓴 역사적 자료는 객관적"이라고 얘기하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태백산맥>은 허구에 기초한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근래 학술연구들의 주장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사소설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과 틀리는 부분이 너무 많다. 역사관도 매우 편향적이다. 학자들의 반론에 조씨는 논리적·실증적 재반론 대신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에 대해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은 신종 매국노들"이라는 인신공격으로 그동안 답해왔다.

    '조정래 기준' 최악 반역자 박태준, '위인'이라 칭송한 조정래

    소위 한국 기득권 우파들도 반성해야 한다. 이런 조정래 작가를 높이 평가하며 대우해 준 사람이 바로 박태준 전 국무총리 아니었나. 더군다나 고(故) 박태준은 일본에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내고 일본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사람인데, 조정래는 박태준 사망 후 그에게 바친 헌사에서 박태준을 위인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의 이번 논리대로라면 박태준은 그야말로 최악의 민족반역자 아닌가. 이 에피소드는 박태준과 조정래, 두 사람이 다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전 유성구 소재 모 서점에서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을 모아둔 서가에 "왜구 소설"이라는 팻말을 붙였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장난이나 페이크뉴스로 알았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과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에세이 등 여타 문학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많이 팔린다.

    그런데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왜구 소설"이라고 하면 그 소설을 번역하고 출간하는 사람들은 물론 읽는 독자들은 다 '왜구'를 사랑하는 민족반역자 겸 친일파가 돼 버리는가. 그 서점은 그러려면 아예 일본 작가의 책들을 팔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잘 팔리는 "왜구 소설"은 판매해서 돈은 벌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라도 하면 자기가 줏대 있는 애국자라는 생각이 드는가 보다. 세계적 조류에 뒤떨어진 종족주의에 기댄 정신적 자위행위를 통한 쾌감을 얻는 전형적 방식이다.

    "이런 수준 반일종족주의 탈피해야"

    일본을 향해 "죽창을 들라"는 등의 반일 선동과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본제를 더 선호하는 역설은 이미 뉴스거리가 안될 정도로 흔하다.

    죽창 선동을 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일본 상품불매운동의 정점일 때 기자회견에서 일본제 미쓰비시 제트스트림 볼펜을 들고 나왔다. "나의 반일감정도 어쩌지 못하는 부드러운 필기감"이라는 광고 카피로 그 일본 회사의 모델로 출연해도 될 만큼 그 볼펜은 자연스럽게 '명품'으로 널리 선전이 됐다.

    반일감정 선동과 중국 추종에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도 집에서 쓰는 '세컨드 카'(second car)는 일제 고급 렉서스 차량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수준의 반일종족주의는 탈피해야 하지 않겠나.

    * 이 글은 매일신문 2020-10-21에 실린 칼럼을 필자가 대폭 증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