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전 대사 체포영장 집행' 협조 요청… 뉴질랜드의 '외교관 소환 요청'엔 뭉기적
  • ▲ 지난해 8월 신임장 제정 당시 노에 웡 주한 필리핀 대사(왼쪽)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8월 신임장 제정 당시 노에 웡 주한 필리핀 대사(왼쪽)와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년 뉴질랜드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현직 외교관의 소환·처벌에는 미온적이던 외교부가 정작 국내에서 성추행 혐의를 받는 전직 필리핀 대사의 소환에는 열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를 두고 “외교부가 국제사회에서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외교부, 국내서 성추행한 필리핀 대사 소환 거듭 요청”

    “외교부가 최근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국내에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노에 웡’ 전 주한 필리핀 대사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해줄 것을 현지 당국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조선일보가 4일 보도했다.

    전문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알려진 웡 전 대사는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근무 당시 30대 초반의 여성을 뒤에서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로 피소됐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웡 전 대사는 성추행 논란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검찰에 기소되기 전에 필리핀으로 귀국했다.

    결국 웡 전 대사의 소환조사가 어려워지자 경찰은 지난 5월 인터폴에 요청해 적색수배령을 발령했고, 외교부는 이후 필리핀 정부에 “노에 웡 전 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신문에 따르면, 외교부는 최근에도 필리핀 측에 이 문제를 상기시키며 협조를 요청했다.

    신문은 한국 외교부와 필리핀 간에 벌어진 일을 두고 “뉴질랜드 외교부가 자국 남성의 엉덩이와 사타구니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한국 외교관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등 수사 협조를 한국 측에 요청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교부는 뉴질랜드 남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A씨를 보내달라는 뉴질랜드 외교부의 요청을 계속 거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뉴질랜드 요청 거절 아니라 정식 사법절차 통해 해결하려는 것”

    외교부는 지난 3일 “뉴질랜드 측의 요청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하려는 것”이라며 "현재 필리핀 총영사로 근무 중인 A씨를 귀임조치했다"고 밝혔다.
  • ▲ A 필리핀 총영사의 성추행 사건은 뉴질랜드 현지언론의 보도로 국내에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 필리핀 총영사의 성추행 사건은 뉴질랜드 현지언론의 보도로 국내에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날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A씨의 귀임조치 사실을 밝힌 뒤 “여러 물의를 야기한 데 따른 인사조치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진술도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고, 당사자 간 진술도 상반된다”며 “그래서 정식으로 사법절차를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어찌됐든 A총영사가 2017년에 그런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외교관이라고 해서 도리에 맞지 않게 감싸거나 사건을 축소할 생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성추행 혐의에 대한 뉴질랜드 경찰의 조사는 A씨가 이미 떠난 뒤인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뉴질랜드 측이 A씨가 떠날 때 면책특권 포기를 요청한 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외교관 면책특권은 해당국에 부임했을 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이미 A씨는 뉴질랜드를 떠난 상태였으므로 면책특권에 따라 조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측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 관계자는 또 A씨에게 성추행당했다는 피해자의 제보를 접수한 뒤 분리조치와 성희롱 예방교육, 뉴질랜드 대사관 관내 인사위원회를 열어 경고장을 발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그 후 피해자가 추가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2018년 2월 임기가 만료된 A씨를 필리핀으로 발령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8년 10월 뉴질랜드 주재 대사관 감사에 따라 A씨에게 1개월 감봉이라는 ‘합리적이고 충분한 징계’도 내렸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에 불편하다는 견해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