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30일 '박원순 성추행 직권조사안' 의결… "강제성 없고, 증거도 경찰이 갖고 있어 실체 밝히는 데 한계"
  • ▲ 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묵인·방조 의혹 등에 대한 직권조사를 의결했다. ⓒ뉴시스
    ▲ 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묵인·방조 의혹 등에 대한 직권조사를 의결했다.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측 지원단체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인권위 결정을 반기며 진실규명에 박차를 가하기를 기대한다는 견해를 냈다. 일각에서는 인권위 조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인권위는 30일 오전 10시30분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직권조사 계획안' 안건을 의결했다.

    인권위는 "당초 제3자 진정으로 접수된 3건의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측과 계속 소통하던 중 피해자가 28일 위원회의 직권조사를 요청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직권조사 요건 등을 검토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성희롱에는 위력에 의한 성추행, 성폭력, 강제추행, 성적 괴롭힘 등이 해당한다.

    인권위, ‘박원순 성추행 의혹’ 직권조사팀 꾸린다

    인권위는 앞으로 별도의 직권조사팀을 꾸려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희롱 등 행위 △서울시의 성희롱 등 피해 묵인·방조와 그것이 가능했던 구조 △성희롱 등 사안과 관련한 제도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조사 및 개선방안 검토에 나설 계획이다.

    여성단체들은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정에 진상규명과 동시에 피해자 인권회복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측을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단체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성차별적 문화와 구조에 대한 광범위하고 충실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통해 책임있는 기관과 사람은 응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적극적 조치계획 수립 등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제도적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울시를 향해서도 "이미 서울시에서 진행하고자 했던 진상조사를 인권위에서 실시하게 된 사정을 고려해 인권위 조사에 엄중히 임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살려 어렵게 조사를 요청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측 "서울시, 인권위 조사 임해라"

    서울시는 이날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정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견해를 내놨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밝힌 바와 같이 피해자가 고용상 불이익과 2차 피해 없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복귀해 일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며 "하루속히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단체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상윤 기자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단체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상윤 기자
    그러나 일각에서는 강제성이 없는 인권위 조사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제조사가 불가능한 만큼 이번 사건의 실체를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지 여부가 서울시 측 협조에 달렸다는 것이다.

    김정희 바른인권여성연합 공동대표는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정은 당연한 것"이라며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끝나지 않고 경찰과 검찰 등에서도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서울시 일부 고위관계자들이 정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보이는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권위의 직권조사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단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아닌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면서도 "무엇보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많은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통한 진상규명 형식의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인권위 직권조사 강제성 없어… 서울시 측 협조 여부가 관건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박 전 시장 사망 여부와 상관없이 진상조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이뤄졌다는 부분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인권위 조사는 강제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사에 불응하더라도 다른 방도가 없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여론에 부담을 느끼는 서울시 측에서 어느 정도 조사에 협조할지가 관건"이라며 "현재로서는 인권위가 어느 정도까지 실체를 파헤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17일 외부 전문가만으로 구성된 '민간 합동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여성단체의 거부로 무산됐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서울시는 이번 사건 책임의 주체이지 조사의 주체가 아니다"라며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요구했다. 결국 이들 단체는 지난 28일 인권위에 박 전 사장의 성추행 증거 30여 개와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