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미리 교수 페이스북 화면(좌)과 볼로냐대학의 수업 장면. ⓒ페이스북 캡처 / 위키피디아
    ▲ 임미리 교수 페이스북 화면(좌)과 볼로냐대학의 수업 장면. ⓒ페이스북 캡처 / 위키피디아
    '자유' '자치' '자율'… 중세부터 대학이 누려온 특권

    지금과 같은 대학의 본 모습은 중세 유럽의 볼로냐대학과 파리대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 대학의 특징은 당시 강력한 교회 권력과 국가 권력으로부터 교수와 학생이 누린 '자유', '자치', '자율'의 특권이 핵심이다. 사회 전 분야에서 교황과 군주가 때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도 대학 내 교수와 학생은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대학을 의미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는 교수나 학생의 집단을 의미하는 조합(guild)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의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에서 유래하고 있다. 또 교수를 통칭하는 프로페서(professor)도 프로(pro, 공공연히)와 페스(fess, 말하다 또는 주장하다)처럼 공공연히 자신의 주장을 전문적인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자유롭게 말하는 집단이다. 이것은 대학이 처음부터 치외법권 공간 같은 권한을 보장받으면서 외부로부터 어떠한 간섭이나 압력 없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려온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요즘 김미리 고려대 연구교수가 쓴 '민주당만 빼고'란 한 칼럼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직접 이해찬 대표 이름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하기도 하고, 친문 지지자들은 한술 더 떠서 임 교수 개인의 신상털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세월이 거꾸로 돌아가 지금이 21세기인지 중세 유럽 이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 헌법은 분명히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대학의 자율'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위협받는 나라는 과거 민주화세력이 그토록 한목소리로 외쳐댔던 '독재타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조국의 '앙가주망'과 사르트르의 '자기희생적 지식인 책무'는 정반대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려대 교수 28인의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3.28)'를 보면 당시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수와 지식인의 임무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며 그에 대한 공정한 견해를 표명하는 것을 포함한다"를 시국선언문에서 강조하면서 표현의 자유보장과 교수들의 적극적 사회참여를 호소하였다.

    지금 논란이 되는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도 1987년 당시 교수들이 국민의 명령을 대변한 시국선언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 멀리는 1960년 3·15 부정선거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직결된 당시 4월 25일 대학교수 258명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국선언발표와 함께 거리로 나선 것과도 관계가 깊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역사에 남을 '조국 사태'를 일으킨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앙가주망(engagement)'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사회참여를 정당화하려 했다. 조국 전 장관의 내로남불식 행태는 사르트르가 말한 '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자유와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의미의 앙가주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오히려 2009년 전국 철학 앙가주망 네트워크를 결성한 진보성향 교수 500여 명이 "정부가 소통이나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힌 시국선언은 아이러니하게도 10년 후 조국 전 장관과 현재 집권 여당보고 귀담아 들으라고 외치는 소리로 느껴진다.

    민주당 공식사과 없으면 제2의 촛불시민혁명 맞닥뜨릴 것


    대학교수의 외침이나 사회참여는 늘 살아 있는 권력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이 지닌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마저 탄압을 받거나 권력의 노예가 된다면 제2, 제3의 나치와 히틀러의 등장을 막지 못하는 비극이 반복될 것이다. 독일은 형법(Strafgesetzbuch) 제130조 4항에서 '공연히 또는 집회에서 국가사회주의(나치)의 폭력적, 자의적 지배를 승인하거나 찬양하거나 정당화'해서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나치 절대 권력이 초법적 권한 행사로 독일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기에,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견제와 균형의 안정장치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이해찬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민주화를 옹호한 진정한 진보세력이라면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공개적으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一紅)처럼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십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변함없는 진리다.

    현 집권여당이 국민을 우습게 보면 불행히도 거꾸로 제2의 촛불시민혁명에, 앞에 놓인 풍전등화와도 같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도 엄청난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