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검찰에 '힌트' 주고 공소장 변경 허가 반복… '무형의 이익, 뇌물'이라는 궤변도
  • ▲ 이명박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에 제안한 논리, 사실상의 '힌트'를 선고에 그대로 반영했다. ⓒ정상윤 기자
    ▲ 이명박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에 제안한 논리, 사실상의 '힌트'를 선고에 그대로 반영했다. ⓒ정상윤 기자
    2019년 4월10일,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기존 직접뇌물죄에 더해 제3자 뇌물수수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장 변경은 항소심 재판부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었다.

    항소심 초기,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거래한 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의 직접뇌물이 될 수 있느냐"며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종용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가 기존 검찰 주장만으로는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당초 삼성이 2007년 11월 에이킨검프와 '프로젝트M'이라는 이름의 자문계약을 하고 2011년 3월까지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자문료 585만 달러(약 67억원)를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직접뇌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이 전달되거나 미국 10대 로펌인 에이킨검프를 이 전 대통령의 사자(使者)로 볼 수 있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라는 제3자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주장을 들고나온 것이다.

    검찰의 새로운 주장도 금세 뒤집혔다.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자금지원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증언하면서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려면 뇌물의 대가성이 확인돼야 한다. 이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사면이나 금산분리 등을 생각하고 다스에 자금을 지원했느냐"는 검찰 질문에 "어떤 특정한 사안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기보다 도와주면 회사에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서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2019년 5월20일, 검찰은 또 다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 역시 재판부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앞선 기일에서 재판부는 검찰에 "삼성이 에이킨검프(다스 소송을 맡은 미국 로펌)에 돈을 주면서, 에이킨검프가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석명(釋明·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힘)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재판이 어렵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뇌물은 금전이나 물품,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일체의 유·무형의 이익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제시해준 논리에 따라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허가했다.

    재판부가 검찰에 제안한 논리는 19일 항소심 선고에 그대로 반영됐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하면서 그의 뇌물수수 방식이 검찰의 최초 공소사실에 적시된 직접뇌물이 아닌 제3자뇌물이나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형의 이익으로 제공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취임 이후 삼성으로부터 에이킨검프의 법률용역을 이용할 권리라는 무형의 재산상 이득을 봤다"며 "삼성 미국법인(SEA)이 에이킨검프 인보이스에 따라 지급한 것은 제3자뇌물죄가 인정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