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이첩 경위·수사개입 여부, 靑 해명 사실과 달라"… 수사개시 시점도 미심쩍
  • ▲ 김기현(60)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경찰 수사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뉴데일리 DB
    ▲ 김기현(60)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경찰 수사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뉴데일리 DB
    김기현(60)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경찰 수사'에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수사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시작된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수사가 핵심이다. 경찰이 '김기현 시장'을 직접 겨냥한 수사개시 시점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2017년 말쯤이라는 게 경찰 안팎의 다수 의견이다. 청와대가 '김기현 첩보' 문건을 경찰청에 하달한 건 2017년 12월 29일이었다.

    특히 '김기현 측근 비리 수사'를 주도했던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은 김 전 시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확정된 날인 지난해 3월 16일 울산시청을 전격 압수수색해 '정치 중립성'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선거기간 내내 이슈가 됐고, 김 전 시장은 낙선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난 3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경찰의 '선거개입' 의혹이 더욱 짙어지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는 '하명수사' 의혹을 부인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4일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2017년 10월 민정비서관실 소속 A 행정관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스마트폰 SNS를 통해 비리 의혹을 제보받았다"며 "A 행정관은 이를 문서 파일로 옮겨 요약하고 일부 편집해 문건을 정리했다"고 했다. 이어 "A 행정관은 이를 당시 (백원우) 민정비서관 보고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백 전 비서관은 소관 비서실인 반부패비서관실로 전달하고, 반부패비서관실이 (이를) 경찰에 이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치권·법조계에서는 △청와대에서 첩보가 다뤄지는 과정,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 등을 근거로 "청와대 해명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본지는 법조인들 취재와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청와대 해명의 사실 여부를 짚어봤다.

    ①"靑, 익명 제보 수사 안한다"… 노영민 "압수수색 보고 받았다"

    "익명의 제보가 청와대에 들어오면 원칙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

    복수의 정치·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제보 내용의 신빙성·구체성 등이 있다면 내용 파악에 나선다고 했다. 이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이를 단순히 정리해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했으며, 백 비서관에게 이를 전달받은 반부패비서관실은 경찰청으로 이첩했다'는 고민정 대변인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고 대변인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는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등 수사개입 의혹이 있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11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정점식 자유한국당 의원 질문에 "제보된 첩보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련 기관으로 그냥 이첩하는 그런 절차를 밟는다"면서도 "(이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 전에 한 번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첩한 후 압수수색 보고를 받았다'는 수사 개입을 자인한 셈이다.

    전직 청와대 행정관 B씨는 익명 제보에 대한 수사금지 원칙 이유에 대해 '무고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제보를) 읽어보면 제보가 무고성 투서인지, 얘깃거리가 되는지 판단을 할 수 있다. 읽어보고 이야기가 된다 싶어도 문서로 (청와대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서로 들어오면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수사기관으로 이첩시킨다. 이런 내용은 (청와대에서) 다루지 않는다. 특감반원의 업무는 첩보 수집인데, 이들이 가져오는 첩보는 '꺼리가 된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청와대가 설명한) 김 전 시장 첩보가 들어온 과정, 문건 등은 상식적이지 않다."

    법조계 인사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김기현 문건'은 기존에 청와대가 '익명의 제보'를 다루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강민구 변호사는 7일 TV조선 '강적들'에서 "보통 청와대나 검찰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오면, 원칙은 '익명의 제보는 공람 종결'"이라며 "익명으로 제보하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는 등 이유로 원칙적으로 안 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다만 제보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다면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태근 변호사도 "익명의 제보가 들어오면 제보 내용의 신빙성·구체성 등을 종합해 수사를 할 수는 있지만 익명인 점 등의 이유로 대부분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가 당초 설명한 '익명의 제보자'는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밝혀진 상황이다. 송 부시장은 송철호 울산시장 캠프에서 활동한 측근이다.

    ②공직자 첩보, 반부패실 담당인데… 사실상 '백원우 민정실'이 '주물럭'

    현재 청와대 직제상 대통령비서실 산하 민정수석실에는 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무비서관이 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민정비서관실이, 공직자 비리는 반부패비서관실에서 다룬다. 공직자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 들어오면, 민정비서관실이 아닌 반부패비서관실로 바로 간다는 것이 중론이다. 청와대 해명처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첩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 ▲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김기현(60) 전 울산시장. ⓒ이종현 기자
    ▲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김기현(60) 전 울산시장. ⓒ이종현 기자
    강민구 변호사는 "청와대가 첩보를 받으면 반부패비서실로 가지, 절대 민정비서관에게 가지 않는다"며 "민정비서관실이 반부패비서관에게 (첩보를) 준다는 건 누군가 민정비서관 친전으로 전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강태근 변호사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반부패비서관이 공직자 비리 등을 다루기 때문에 공직자 첩보가 청와대로 들어오면 반부패비서실로 가는 게 통상적 절차"라고 했다.

    김 전 시장 첩보 처리 과정이 '통상적 절차'가 아니라고 B 전 행정관은 말한다. 그는 "청와대 내부 규칙으로 보나 원래 민정비서관의 업무분장으로 보나, 민정비서관에게는 감찰 권한 없다"면서 "감찰권한 있는 부분은 대통령 친·인척과 특수관계인의 비리에 한해서다"라고 말한다. "(비리 등) 이러한 부분만 알아보고 수사기관에 이첩하는데, 이번처럼 시장 등 공직자에 대한 정보 권한은 (민정비서관에게)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이첩 과정에 대한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의 해명도 엇갈린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11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기현 시장의 경우 청와대 조사 대상이 아니어서, (가공없이) 그대로 이첩했다"고 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노 비서실장의 주장은 뒤집혔다. 고민정 대변인은 4일 해명 중 "A 행정관이 외부메일망의 제보 내용을 문서 파일로 옮겨 요약하고, 일부 편집하여 제보 문건을 정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이 추가한 비위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③檢 불기소결정문… 울산경찰 기소의견 모두 '무혐의'

    김 전 시장 측근 비위 내용도 '비위로 볼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수사결과다. 울산경찰은 박기성 전 울산시장 비서실장, 이모 울산시 도시창조국장 등 김 전 시장 측근을 비롯해 지역 레미콘업체 대표 김모 씨를 수사했다. 박 전 비서실장과 이 국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뇌물수수 혐의 범죄사실은 김씨로부터 제공받은 60만원 상당의 '골프접대' 뿐이었다. 김씨는 뇌물공여 혐의였다. 울산경찰은 이 혐의로 이들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울산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의 불기소결정문을 보면, 경찰은 "박 전 비서실장이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레미콘 업체를 C 업체로 교체하라고 이 국장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국장은 아파트 시공사 측에 C 업체를 특정하지 않고, '울산지역 업체'를 선정하라고 권유했다. 헌법과 지방자치법, '울산광역시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서다.

    '울산광역시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관한 조례' 제17조에는 '지역건설업체의 하도급 비율을 60% 이상 적극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조례 제17조의4에는 '우리시 소재 건설업체와 건설자재 60% 이상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고도 돼 있다.

    경찰은 2018년 4월 4일 수사보고서에 이렇게 결론내렸다. "이모 국장이 박 전 비서실장의 청탁 민원을 받아, C 업체의 김 대표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사실은 (시공사인) 피해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인정된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해 세 차례나 경찰에 보완 수사를 지휘했었다. 이유는 이렇다. △박 전 비서실장 등이 '조례 등에 근거해 지역업체로부터 레미콘을 공급받도록 시공사에 권유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조례 내용 및 각종 공문 내용과 일치하고 △만일 울산경찰의 수사 결과에 의하더라도 박 전 비서실장 등의 위법성 인식·고의 입증이 부족하며 △박 전 비서실장의 2017년 6월 24일자 뇌물수수 등 건의 경우, 박 전 비서실장이 골프비를 직접 결제한 자료를 제출한 점 등이다. 

    결국 검찰은 3월 18일 불기소결정을 내렸다. 시 조례와 울산시의회 회의록, 울산시청의 각종 공문 등에 근거해서다. 결정문에는 '다른 자치단체들도 지역업체 자재사용율 및 하도급율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시공사에 권유 또는 독려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보면 박 전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은 인정되기 어렵다', '김 대표가 박 전 비서실장 등의 골프경비를 대납했다는 증거가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