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와 협상학(38) 인도적 지원으로 변화 끌어낸다?… 北체제 특성 다시 살펴야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동료가 타려고 오면 발을 슬쩍 문에 넣어본다. 그러면 센서가 작용해 다시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사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반화의 오류 중 하나이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는 책에서 실제로 그런 일을 소개한다. 인도에 자원봉사 갔었던 한 영국인은 저개발지역의 대부분 엘리베이터는 센서가 없는 구형인 줄 몰랐다. 평소처럼 그랬다가 발이 끼인 상태에서 엘리베이터 문은 계속 닫히며 몸이 끌려 올라갔다. 

    협상에서도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반화이다. 노사 협상이나 상사와 부하직원간, 부모와 자식 간에도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즉 내가 살아온 경험치를 토대로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빈번하다. 

    북핵 협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첫째,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생각이다.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 모두가 규탄했던 북한의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폐기를 남북, 미북 정상회담의 의제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넣은 북한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로인해 하노이 미북 협상은 깨진 셈이고, 중재자로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 트럼프는 ‘Mess’, 북한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며 우리를 비난했다. 

    둘째 북한 체제에 대한 일반화된 생각이다. 북한 경제가 더 어려워지거나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면 상대도 보상심리를 갖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북한은 경제제재로 설령 100만명의 아사자가 나온다해도 수령체제만 공고히 지키는 방안을 선택해온 나라이다. 정권이 바뀌기도 하는 우리로선 독재보다 더 심한 공포 왕정 속 국민의 저항감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황당한 천동설처럼 세상이 김정은 수령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으며, 우리의 선의도 수령의 영도력 때문이라고 믿는 점을 간과했다. 

    셋째, ‘우리민족끼리’라는 개인적이고 친근한 표현에 대한 생각이다. 즉 북한은 세계인으로서 의무를 지켜야할 때에는 우리민족끼리 예외로 남한에 무장해제와 경제지원을 요구하는 반면, 정작 남북이 공조하고 소통해야할 상황에서는 미국 또는 중국에 더 가까운 제스쳐를 보였다. 김여정의 남한 방문 시 우리 쪽에 대한 도도한 태도에 대해서는 백두혈통의 기품으로 평가했으나, 김정은의 재떨이 심부름과 시진핑 앞에서는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이 여린 모습에서 새삼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우리 생각의 일반화를 우선 극복하는 것이 곧 향후 우리 협상팀의 신뢰와 역량을 높이는데 필수적이다. 앞서 노사 간, 가족 간에도 흔한 일반화 오류의 해법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많은 전문가들의 가장 흔한 조언은 나의 말을 아끼고 상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그간의 북한의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 이제라도 냉정히 재해석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은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노사협상 문구에는 추상적으로 우리끼리 믿고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 

    올해 기업의 사정이 이런 만큼 서로 급여 인상은 몇 프로이고, 종업원은 어떤 의무를 다한다라고 서로 약속한다. 북핵 협상 시에도 구체적인 목표를 명시해야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환상도 남북 모두 거론하지 않도록 해 한다. 이미 대한민국 인구의 5%는 외국인이며, 해마다 2500만명의 방한객과 무역의존도는 100%에 달한다. 우리끼리라는 예외는 국내와 해외 모두에 통하지 않는다. 실제 북한도 경제를 비롯해 중요결정은 한국 보다 중국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명한 ‘협상의 법칙’ 저자 허브 코헨은 협상에서 전화를 먼저 거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한다. 전화를 하기 전에 상대와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되짚어 보고 선택수단과 대안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3차 정상회담 준비를 물밑에서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남한에 불리한 조항은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일반화된 생각일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안이다. 미북 정상회담의 급물살에 휩쓸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양쪽에 전화를 하되 일반화 오류를 수정한 후 대응하길 바란다. 

    권신일 前 美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