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과 협상학(31) "북한이 남쪽 동족에게 핵을 쓰겠냐”라는 말 자체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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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사상자도 많았던 전쟁 중인 고지에 밤새 눈이 내렸다. 그 아래 무엇이 있든 하얗게 눈 덮인 산만 보고 세상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까? 낮에 기온이 올라가 눈이 녹으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것들이 속속 드러난다. 제대로 종전을 하려면 먼저 치워야 한다. 지난 2월 하노이 핵협상 실패 후 트럼프가 우리 정부에 했다는 “clean up these mess”(“이 지저분한 난장판들을 치워라”)라는 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외신과 전문가들은 미사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애써 ‘발사체’로 주장하고 있다. 그 심정은 이해하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로서는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북한이 남쪽 동족에게 그것을 쓰겠냐”라고 하는 그 말 자체가 위협이다. 실제로 북한의 이번 미사일훈련의 거리는 남한과 일본이 타겟이다. 북한이 제시한 올해 말까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더 심각한 국면이 예상된다. 

    협상학 중에 ‘제대로 듣고 설득하기’ 훈련을 위한 예시가 있다. 15개 팀을 만들어 팀내에서 한쪽은 진학 담당 선생님 역할을, 한쪽은 진학 대신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학생 역할을 맡는 롤플레잉이 있다. 15분에 걸쳐 서로 이야기 나누도록 하고 관찰을 했더니 단지 2팀만 학생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주목할 점은, 고3 학생 역할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두 팀을 빼고는, 담임선생님 역할을 맡은 측이 압도적으로 말을 더 많이 했다는 점이다. 즉 상대 설득은 내가 더 많이 하기 보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설득의 황금비율은 내가 말하기 30%,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비율이 70%라고 한다. 

    협상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철저한 자기중심성’ 해석이다. 쉽게 말해 상대는 A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상대는 A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더 강하고 명확한 것을 계속 내게 된다. 그 때마다 내 중심으로 해석을 하려다보면 말이 많아지고, 공감하기 어려운 논리가 나온다. 북한 비핵협상도 ‘지저분한 난장판들’을 먼저 하나씩 치우는 노력 없이, 덮어주거나, 대변해주다 보면 지금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지금 북한이 내려는 메시지는 그냥 발사체 연습이 아니라 자신들의 연내 관철 의지, 빅딜 비핵화가 아니라 부분적 비핵화로 완전한 경제 제재 해제 및 보상을 얻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입장을 먼저 명확히 해두는 것이 제대로 된 협상의 시작점이 된다. 노딜이 될지언정 상대와 내 이해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면 하노이 협상 같은 실패가 반복될 뿐이다. 비록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현실이긴 하지만 안보는 북핵을 억제하는 한미동맹이 있고, 북한의 혈맹이라는 중국은 아직 미국을 넘볼 수준이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와 북한의 경제 수준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리가 강력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북한의 메시지를 우리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북한에게 우리가 하얀 눈으로 그들의 심각한 상황을 덮으려한다는 오해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우리와 함께 핵안보 위협에 직접 노출된 일본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어주는 행동이 필요하다. 국내 정치같이 일본에게도 적폐 해결 우선 원칙을 내세우기 보다, 안보 만큼은 절박한 ‘같은 이해’를 고리로 협력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에 압력카드가 하나 더 생기면 협상력에 힘을 더할 수 있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