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변호인, '무죄추정원칙' 보석청구 '정당'…檢, 기각사유 대신 급사위험자 나열만
  • ▲ 검찰. 뉴데일리 DB
    ▲ 검찰. 뉴데일리 DB
    “구속만기일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한 달 반 정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새롭게 구성된 재판부가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검토하고 증인신문과 결심을 거쳐 선고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27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전 대통령 보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라는 재판장의 요구에 강훈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강 변호사는 이날 소변주머니를 쇼핑백에 넣어 들고 법정에 출두했다. 보름 전 암 수술을 받은 그는 수술 닷새 뒤부터 공판에 있을 때마다 매번 법정에 나왔다. 상처가 덧나고 회복이 지연되고 있지만 의료진의 강력한 만류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법부, MB구속만기 2개월여 앞두고 재판부 교체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이 시작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무슨 이유에선지 사법부는 재판장과 주심판사를 교체했다. 구속만기일인 4월 8일까지 40일 남은 시점에서 공판준비기일이 다시 열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5명의 증인을 채택했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법정에 출석한 증인은 3명밖에 되지 않는다. 핵심증인들에게 소환장 송달이 안 돼 증인신문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이 전 대통령의 재판기록은 A4 용지로 10만장에 달한다. 새 재판부는 40일 동안 10만장의 재판기록을 모두 읽고 증인신문을 거쳐 결심과 선고를 내려야 한다.

    강 변호사는 "남아있는 것은 4월 8일 구속만기로 이 전 대통령을 석방할 것인지, 아니면 한 달 여 앞둔 지금 석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며 "한 달 먼저 석방된다고 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커지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의 보석신청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프랑스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했다.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불리는 이 선언의 제9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므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판정되더라도 신병을 확보하는 데 불가결하지 않은 모든 강제 조치를 법에 의해 준엄하게 제한한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모든 피의자는 무죄로 보며 피의자 구속은 형벌이 아닌 신병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여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헌법도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제27조 제4항)”고 규정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강 변호사의 주장은 이 같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은 형벌이 아닌 신병확보 및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것이며, 이제는 그 우려가 없어진 만큼 보석을 허가해 달라는 요청이다.

    '무죄추정원칙' 근거한 보석청구에 검찰 기각이유 입증 못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 때문에 보석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검찰의 상식적 항변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피고인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되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보석을 불허해야 한다는 입장을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검찰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서울동부구치소에 급사위험자들이 몇 명이 수감돼 있는지를 나열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병호 전 국정원장,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과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의 보석도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속을 유지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한 기본적 설명조차 없는 태도로 볼 때 검찰은 피의자 구속이 신병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아닌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반인권적이고 위헌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법정에 출석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도 중요하지만 이 재판은 역사에 남을 재판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자신들의 모습이 이 재판을 통해 역사에 어떻게 남게 될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