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교육 개혁의 과제들② 중요한 건 근대국가의 정신… '개념 혼란'이 우리 공교육 망쳐
  • 현대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산업혁명 초기에 그 틀이 형성되었다. 대규모 공장과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산업혁명기에 부모들은 일터에 나가고 집에는 아이들만 남게 되면서 국가가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교육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공교육의 원조는 강제교육

    오늘날의 대규모화된 공교육의 형태는 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는데, 프로이센은 공교육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이룬 근대화를 급속히 성취하고자 했다. 영국의 교육제도가 대체로 민간 주도로 형성되었던 반면, 국가주도로 근대화에 나선 프로이센은 좀 더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그들은 노동자, 농민의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에 나오게 했고, 만약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물렸다. 이 의무교육 제도가 바로 현대 공교육의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모인 아이들에게 프로이센은 국가 근대화에 필요한 대량생산식 학교 교육을 제공했다. 처음에는 철자법과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나아가서는 기술을, 그리고 독일의 문화와 유럽 세계사를 가르쳤다. 이 교육제도는 이후의 독일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프로이센은 이전의 중진국 수준에서 프랑스와 러시아를 압도하는 강대국, 바로 독일 제국으로 재탄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교육을 받은 국민은 애국심에 충만했으며, 학문적 성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가져왔다. 19세기 중, 후반에 이르러 독일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켰으며, 당대 최첨단의 기술 선진국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제도는 대부분의 근대국가들에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공교육은 원래 국가 주도적 접근을 통해 나라를 근대국가로 키워 선진국 대열에 서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거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공교육은 전반적으로는 근대국가에 요구되는 시민을 양성하고 동시에 그 속에서 탁월한 인재도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게 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국가 근대화라는 상위 목표에 공교육의 목표가 잘 부합해야 한다. 한마디로 나라 잘 되도록 하는 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목적이 모호해진 지금의 공교육

    여기서 말하는 근대국가란 오늘날 ‘자유국가’ 체제를 갖는 서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추구하는 모습을 말한다. 자유국가는 사회가 진리를 존중하고, 각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주고, 정부를 비롯하여 아무도 타인을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고, 폭력 거짓 선동 조작 증오 같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나라,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화된 정의의 정신을 구현하는 나라다. 

    반면 사람들을 빈부, 계급에 따라 인위적으로 나누고, 투쟁을 부추겨 부자의 것을 빼앗고 국민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유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속성을 가진 대륙 세력의 중국, 러시아, 북한 같은 독재 국가는 근대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공교육이 지향하는 이념이 근대국가 쪽인지 대륙 세력의 전체주의 쪽인지 질문해보는 것이 공교육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흔히 한국의 교육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한때 한국의 공교육은 타고난 교육열과 결합하여 프로이센의 예에서처럼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목적에 공교육 제도가 잘 부합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세계 최빈국에서 급속히 산업국가로 만드는 큰 역할을 했다. 경영 철학자 피터 드러커는 한국의 도약에 대해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했는데, 한국의 교육열은 수많은 관리자를 단숨에 양성하고, 무엇보다도 근대화의 동력이라 할 기업가 정신이 강한 나라를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평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공교육은 그 교육 목적이 모호해짐으로써 근대화 초기의 효과를 대부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열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라는 목적이 없거나 바르지 않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교육 이념이 근대국가의 방향과 반대면서 교육열이 높다면 오히려 해만 될 터인데,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은 ‘근대국가’라는 개념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의 목적은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의 정체성에 맞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근대국가’라는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 근대국가라 하면, 그 이전에는 수 천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따라다니던 가난을 털어내고 도약하기 시작한 국가로서, 전제 왕정을 지나 제헌 공화정으로 새롭게 세워진 국가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근대국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서구의 경우 300년 정도, 우리나라는 일제 이후 근대화가 시작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모든 기존 가치' 해체한 김영삼 정부

  • 한국 공교육의 교육목적이 처음부터 모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교육에서 근대의 정신, 근대 시민을 키우려는 지향점이 사라지는 현상은 1990년대 초에 나타났다. 당시 ‘민주화 운동’ 이후 등장한 김영삼 정부는 자신을 문민정부라 칭하고 여러 개혁 조처를 했는데, 그 개혁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모든 기존 가치의 해체’였다. 그 이전에 한국경제의 견인 역할을 해 왔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별 대안 없이 해체되었고, 대한민국 건국의 현장이기도 한 옛 중앙청 건물도 부숴버렸다. 혁신한다는 명목으로 근대국가적 교육이념도 폐기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 그리고 그 정신에 따라 1968년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는, 능력에 따른 소질의 계발, 애국애족, 과학입국, 근검 노작(勤儉 勞作)의 정신 등 근대국가를 세우기 위한 덕목들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문민정부에서, 과거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던 교육이념과 기존 교육법에 들어 있었던 교육목표는 모두 폐기하고, ‘창의력 계발’과 ‘인성 함양’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교육목표를 대체했다. 이 새로운 교육목표가 모호하다는 것은 이것들이 교육현장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되기도 어렵고, 또 전환되어도 근대국가의 건설과는 무관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근대국가로 향하는 이념이 없었다는 점은 그의 취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근대국가 개념보다는 종족적 의미의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대통령이었다. 

    이렇게 근대국가 이념이 모호한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 정당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그 후 보수 정당이 이념을 명확히 하는 일의 중요성을 낮추어 보고, 실용이니 중도니 하며 표류하게 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그 이전의 대통령들이 어렵사리 토대를 닦은, 자유에 기반을 둔 시장자본주의 경제 속에 각자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성장하는 근대국가 시민의 모습을 지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문민정부였다. 새 정부의 별칭이 ‘문민’이라 한 것부터가 근대국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강한 선진국을 만들려던 이미지가 갑자기 조선시대의 문약한 문민국가의 모습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문민정부가 교육 목표로 내세운 ‘창의력 계발’은 애초에 교육 체계에서 강조해서 실현될 수 있는 덕목이 아니고 그저 멋진 구호일 뿐이다. 또 하나의 교육 목표로 강조되고 있는 ‘인성’도 부모에 대한 효도나 친구에 대한 우정 같은 가족공동체적인 인성이며, 이는 고향의 농촌과 같은 작은 공동체를 단합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일 뿐이다. 이런 수준의 인성은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시민의 덕목과는 무관한, 복고적이고 농촌공동체적인 덕목으로서, 오늘날의 현대 산업사회에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근대 시민사회의 독립된 개인으로 살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은 자립심과 근면, 계약의 의무를 지키는 일 등, 대도시의 열린 사회 속에서 개인이 익명의 타인과의 교류하며 건전한 사회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강조되어야 할 신중함, 약속 이행 같은 소양을 말한다. 

    근대국가를 향한 대한민국 정체성의 혼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아 생업에 종사하는 분업 체계에서 자연히 자라나기도 하고, 동시에 이것을 어기는 경우 분업 시스템이 깨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근대적인 인성 교육이다. 즉 근대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인성은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규칙에 맞게 상호 분업과 경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덕목을 말하는 것이지 농촌공동체적 유대의 속성들일이 아니다. 교육 현장이나 일반 시민까지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며 그 수단으로 자주 떠올리는 예절학교 체험 같은 것은 근대 시민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공교육의 목적에서 ‘근대국가’라는 지향점이 사라지면, 그 결과 교육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가 부정되고 종족적 의미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만연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교육은 대한민국을 위한 공교육이 아니라 막연히 ‘민족’을 앞세우고 조선 시대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식의 시대착오적 교육이 된다. 근대 이전 조선시대라면 그 지배 이념은 주자학적 가치관이며 이는 근대국가 건설과는 거리가 먼 관념론에 가까우므로 근대국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더 나아가 편협한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는 근대국가로 향하는 정체성을 지운 자리에 근대국가와는 정확히 반대쪽으로 퇴행하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잠식하는 부작용까지 만든다. 그러므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극히 조심해야 한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역사를 날조하고 수많은 동족을 학살하고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김일성 세습독재자와 그에 동조하는 자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인가, 아니면 가난에 찌들었던 한반도 사람들을 세계사의 주역으로 날개를 펴게 했던,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사람을 말하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 가지 방안은, 민족이란 단어가 나오면 즉시 “근대국가를 부정하고 수많은 동족을 학살한 김 씨 세습 체제와 그 동조자는 민족 반역자이므로 제외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달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엉터리 민족주의자들은 이런저런 조건 없이 민족을 국가의 위에 갖다 놓음으로써 근대국가를 향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 미국의 탄생

  •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90년대 이전의 공교육은 근대국가를 향한 뚜렷한 목적이 있었는데, 90년대 이후 공교육의 목적을 종족적 의미의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역행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 교육이념이 된 것이다. 근대국가의 개념을 좀 더 생각해 보자. 

    근대 시민으로서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새로 태어난 개인이다. ‘개인의 발견’을 통해서 사람들은 "조물주는 인간을 신을 닮은 존재로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며 부당하게 신체적 상해를 받지 않는다. 또한, 어느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가해서 성취한 재산은 침해될 수 없다”는, 신체권과 재산권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런 원리에 기초하여 세운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가 미국이었다. 제퍼슨이 존 로크의 사상을 바탕으로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의 3대 핵심 단어가 들어 있는데, 여기서 ‘행복의 추구’란 바로 재산권 존중을 말한다. 근대인에 있어서 ‘생명’과 ‘자유’ 같은 기본권만큼이나 ‘재산권’이 중요했으며, 그런 정신 위에 세워진 국가가 근대국가다. 

    우리가 1948년 8월 15일에 수립한 대한민국도 바로 이러한 근대의 정신 위에 세워졌는데, 대한민국 헌법에는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지난 60여 년간의 짧은 세월 동안에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여 위권의 교역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러한 근대의 정신이 있었다. 이렇게 근대국가 시민으로서의 인성이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며 재산권을 중히 여기며, 자립, 자조해야 한다는 근대시민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말한다. 

    이런 인성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분업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 될 때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이므로 교육 내용에는 예절의 강조보다는 ‘근대의 정신’ 같은 본질적 내용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교육에 사용되는 교과서 내용을 보면 이런 근대국가의 정신이 빠져있다. 다음 회에는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