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유엔에 사과해놓고… 교과서엔 "미국이 조작한 도발" 딴소리
  • 8월 18일은 북한이 도발한 ‘판문점 도끼살인만행사건’ 42주년이 되는 날. 
    이 사건은 남북분단 이후 전쟁 일보 직전으로까지 치달은 긴박한 사태였다. 남북한과 주한유엔군, 미군 모두에 6.25전쟁 정전 이후 처음으로 각각  ‘준전시상태’가 발령된 가운데  함재기 65대를 실은 미 7함대 소속 미드웨이호와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가 한국 해역으로 향진했으며, 오끼나와 주둔 미 해병 1천8백명을 포함한 미 지상군 1만 2천명에 한반도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이런 가운데 미 본토와 일본 오끼나와 미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폭기와 전투기 도합 4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 비행했으며,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핵폭탄 장착 B-52 전폭기가 북한 상공으로까지 날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은 핵공격을 할 수 있는 호크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비무장지대를 따라 전진 배치했다. 

    겁에 질린 북한의 김일성은 사흘 후인 8월 21일 리처드 스틸웰(Richard G. Stilwell) 유엔군사령관(주한 미군사령관 겸직)에게 ‘유감표시 형태’로 사과했다. 

    하지만 북한의 교과서와 역사서, 백과사전, 보도선전물 등 거의 모든 문헌들은 김일성이 도발책임에 대해 사과까지 한 이 사건을 미군이 전쟁도발을 위해 조작했다고 기술하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고등학교 교과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 김일성저작집, 조선대백과사전, 대남선전선동매체 ‘우리민족끼리’ 등은 한결같이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낸 계획적인 도발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문점도끼만행사건이란 북한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유엔군측 초소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자르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만행사건이다. 미군은 판문점 유엔군 측 제3초소 남방 30m 지점에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가 있어 가지자르기 작업을 한 것이다. 

    △42년전 8월 18일 도끼 살인 만행 현장

    당시 판문점은 별다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공동경비구역이었는데, 한국군 측 제3초소(CP 3)는 북한군 초소 3개소(KPA 4, KPA 5, KPA 8)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그래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제5초소(OP 5) 측에서 제3초소(CP 3)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는데, 이 문제의 미루나무가 제5초소(OP 5)의 시계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주한 유엔군 경비대 작업반이 8월 3일 제3초소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해야한다고 권고함으로써 이뤄졌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아 영어로도 ‘The axe murder incident’(도끼살인사건)으로 불린다.

    첫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실시 후 2개월만인 이날 상오 10시 45분경 유엔군 11명(한국군 5명, 미군 6명)이 한국인 작업부 5명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측 제3초소 근처에 있는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을 때 박철 대좌 등 북한군 장교 2명과  사병 15명이 접근해 가지를 치지 말라며 시비를 걸면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것임을 설명하던 미군장교의 뺨을 때리면서 더 이상 자르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미군 장교가 항의하자 북한군은 초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30여명의 증원부대와 함께 폭력을 행사, 작업부의 도끼를 빼앗아  미군 중대장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와 바레트(Mark T. Barrett) 중위를 내리쳐 숨지게 하고 9명의 한·미군 장병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유엔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했다. 

    △8.18 당시 북한군의 잔인한 도끼 살인행위를 재현한 그림

    사건 발생 직후 스틸웰 유엔군사령관은 ‘폴 버년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이라는 작전명 하에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8월 21일 실행하도록 명령했다. 이 작전은 미 제2사단과 한국군 제1공수특전단 병력을 중심으로 특수임무부대를 구성해 실시됐다. 8월 21일 오전 6시 4분경 데프콘 3(DEFCON 3: 예비 전투태세)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이들 특수임무부대가 트럭을 타고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면서 작전은 시작됐다. 7시 40분경 미루나무가 절단됐고, 8시 30분경 작전에 투입된 모든 병력이 철수함으로써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폴 버년’이란 미국의 전래 이야기에 나오는 벌목꾼 이름이다. 

    미국은 사건직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위한 긴급조치로 미국 아이다호 주 마운틴 홈 기지에서 공대지 핵미사일 AGM-69 SRAM 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를 한반도로 긴급파견, 대구의 주한 미군기지에 재배치 시켰다.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미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4 전폭기  24대도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면서 공격명령만을 기다렸다. 주한미군은 핵공격을 할 수 있는 호크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비무장지대를 따라 전진 배치했다. 또한 이틀 후인 8월 20일에는 핵무기를 실은  B-52폭격기 3대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군산비행장 주둔 미 공군의 F-4 전폭기와 대한민국 공군의 F-5 전투기 및 F-4 전폭기의 엄호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에서 전속력으로 북상하는 위협 비행을 감행함으로써 전면전이 벌어질 위기감이 조성됐다.

    미국은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앞세운 전투선단을 한국해안에 출동시켰으며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병대 1천 800명을 포함한 미 지상군 1만2천명에 대한 출동 명령도 내렸다. 이밖에도 165mm M135 파괴포를 갖춘 미군 M728 공병전차가 ‘자유의 다리’를  조준했고,  미 육군 공병부대가 임진강에 도하준비를 위해 다리를 설치했다.  

    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모든 책임을 북한이 져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시간으로 8월 18일 오후 3시, 키신저 국무장관 주재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대리한  윌리엄 클레멘츠 국방차관, 합참의장인 미 해군대장 제임스 핼러웨이 제독, 대통령 안보 부보좌관 윌리엄 하이랜드 등이 참여한 가운데 특별대책회의가 소집됐다. 회의에서 키신저 장관은 현장 사진을 보고 극도로 분노했고 사진에서 북한군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북한군을 권총으로 쏴죽였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CIA에서는 이 도발이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참석자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만으로는 전면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고 특히 중국과 소련을 자극할 우려도 있어 스틸웰 장군은 우선 사건의 원인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고, 이에 북한측이 추가 도발을 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결국 대안이 승인되고 데프콘 3이 발동됐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주한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준전시체제에 돌입했다. 회의를 마친 키신저 장관은 중국을 통해 북한측에 조용히 있지 않으면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란 경고를 보냈다. 북한도 북풍1호(준전시상태) 선포로 맞서면서  전군에 완전무장을 지시하는 등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폴 버년 작전에는 카투사병으로 위장한 한국군 특전사 장병들도 참가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육군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로 64명의 결사대를 조직했다. 1공수특전여단의 지역대장이었던 김종헌 소령이 결사대 지휘관을 맡았다. 결사대가 해당 작전 지역에 투입돼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미 육군 공병들을 엄호하고, 육군 제1보병사단 수색대는 부근에 매복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약의 경우에만 전쟁에 돌입할 계획이었던 미군과는 달리, 아예 반격을 유도해서 전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기세였다. 박 대통령은 처음 보고를 받고 “우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당장 내 군화와 철모를 가져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전사 장병들에게는 공동경비구역내 북한군초소를 파괴하고 북한군을 살해하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이는 미군과의 사전협의 없이 한국 군부가 독자적으로 내린 명령이었다. 실제로 북한초소 일부가 파괴됐으나 북한군이 무대응으로 나오는 바람에 교전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절단 직전의 미루나무

    미루나무 절단작업 완료와 함께 미국의 강경한 태세에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8월 21일 하오 스틸웰 유엔군 사령관에게 유감표명의 메시지(電文)를 보내오고  유엔사가 나흘 후  3개 항의 요구사항을 북한에 전달함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북한 교과서는 미루나무가 있는 곳이 북한측 지역이며, 흉기를 먼저 휘두른 쪽이 미군측이라며 모든 거짓을 학생과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미국이 조작했다고 교과서와 역사서에 기술하면서 김일성이 사과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전명 ‘폴 버년’아래 미군에 의해 절단되고 있는 미루나무   
  •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김일성의 유감표명 메시지
    “It was a good thing that no big incident occurred at Panmunjom for a long period. However, it is regretful that an incident occurred in the Joint Security Area, Panmunjom this time. An effort must be made so that such incidents may not recur in the future. For this purpose both sides should make efforts. We urge your side to prevent the provocation. Our side will never provoke first, but take self-defensive measures only when provocation occurs. This is our consistent stand.”(오랫동안 판문점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다. 장래에 그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이 경주돼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양측이 노력을 해야한다. 우리(북한)는 귀측(미군)이 도발을 방지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절대 선제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고 도발이 발생한 경우에만 자위적 조처를 취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다.)

    ※도끼만행사건 관련 유엔사가 북한에 전달한 3개항의 요구사항
    1. The UNC considerded Kim's expression of ‘regret’ and his remarks on joint efforts to preclude future incidents in the Joint Security Area a positive step.(유엔사령부는 김일성의 ‘유감’ 표현과 향후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사건 발생을 방지하자는 공동노력에 대한 언급을 긍정적인 조치로 받아들인다.) 

    2. Those KPA personnel responsible for the brutal murder of the two UNC officers should be punished.(유엔사령부의 두 장교를 잔인하게 살해한 책임이 있는 북한군 인물은 처벌받아야만 한다.) 

    3. The UNC continues to insist on assurances that the safety of UNC personnel  in the Joint Security Area be preserved.(공동경비구역 내에서의 유엔사령부 인원의 안전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판문점도끼만행사건을 미국의 조작으로 기술한 북한 교과서 등 문헌들
    ▲판문점사건: 1976년 8웛 18일 미제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낸 도발사건이다. 이날 미제는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을 내몰아 쌍방의 합의가 없이는 처리할 수 없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의 나무를 망탕 찍어내는 행위를 감행하였다. 우리측 경비원들이 비법행위를 그만둘 것을 요구하자  놈들은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였다. 우리측 경비원들은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여 놈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놈들은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30여명의 불한당들을 더 증강하면서 발악하였다. 
    미제는 이처럼 계획적인 도발행위를 감행하고는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미쳐날뛰였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고급중학교 2,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103(2014), p. 66.)

    ▲미제는 1975년에 웰남(베트남)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쫓겨났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남조선에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1976년부터 핵시험전쟁인⟪팀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벌려 놓고 그것을 해마다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그해 8월에는 ⟪판문점사건⟫을 조작하여 우리나라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 92(2003년), p. 78.) 

                              
    ▲판문점사건: 1976년 8월 18일 미제가 판문점에서 일으킨 도발행위.
    미제불한당놈들은 이날 판문점공동경비구역 우리측 지역에 있는 나무를 찍어 버리겠다고 도발을 걸었다. 우리측 경비원들은 쌍방의 합의도 없는 그러한 비법적인 행위를  단호히 저지시켰다. 그러자 미제야수놈들은  흉기를 휘두르며  우리측 경비원들에게 집단적인 폭행을 가하였다.  우리측 경비원들은 단호한  자위적 행동으로 넘어 가 달려드는 미제승냥이놈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안기였다.(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 92(2003), p.79.)

     ▲미제는 ⟪판문점사건⟫을 조작하고 대대적인 전쟁소동을 벌렸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준전시상태에 들어갔다.(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 92(2003년), p. 86.)  

    ▲《판문점사건》 미제국주의자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낸 계획적인 도발사건. 《8. 18사건》이라고도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국의 포드행정부는 지난해 8월 18일 계획적으로 ⟪판문점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구실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 소동을 미친 듯이 벌렸습니다.》(출처: 김일성 저작집 32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1992, p. 4.)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낸 계획적인 도발사건이다. 《8. 18사건》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미제와 남조선당국은 전쟁의 방법으로 출로를 찾으려고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책동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다. 놈들은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여 1974년에는 하늘과 땅, 바다에서 2만 3천 800여건, 1975년에는 무려 2만 8천 150여건의 무모한 군사적도발행위를 감행하였으며 1976년 1월부터 7월 사이에만도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에서 우리측을 반대하여 400여건의 적대행동을 감행하였다. 미제는 우리측을 반대하여 계통적으로 불집을 일으켜 오다가 8월 18일에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계획적인 충돌사건인 《판문점사건》을 일으켰다.
    이날 10시 45분경 미제는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을 내몰아 쌍방의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할수 없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나무를 제멋대로 찍어내는 무례한 행위를 감행하였으며 지어 그러한 비법행위를 그만둘것을 요구하는 우리측 경비인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였다. 우리측 경비인원들은 적들의 분별없는 도발에 대처하여 부득불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우리측 경비인원들은 적들이 던진 도끼를 집어 놈들에게 던지면서 결사적으로 대항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적들은 미리 대기시켜놓았던 30여명의 불한당들을 더 증강하여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쌍방사이에는 격투가 벌어져 량쪽에 다 부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미제가 조선에서 불집을 일으키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꾸며낸 도발행위였다. 미국의 포드행정부는 남조선에 있는 모든 침략무력에 전투태세를 갖출데 대한 명령을 내리고 남조선일대에 현대적군사장비들과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그 무슨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우리 인민을 위협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에는 당장 전쟁이 터질수 있는 위기일발의 사태가 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오랜 기간의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단련되고 세련된 우리 당과 인민은 적들의 위협공갈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하여 응당한 조치를 취하였다.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장병들과 로농적위대원들, 붉은청년근위대원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은 당의 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쳐 적들의 침략책동을 물리치기 위한 투쟁에 용감히 떨쳐나섰으며 한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 한편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적들의 무모한 도발책동을 성과적으로 저지시키고 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지켜냈으며 사회주의건설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전쟁의 도발자, 광신자이며 세계평화를 유린하는 장본인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보여준 반면에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위력과 혁명적기개를 다시한번 시위하였으며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평화애호정책의 정당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출처: 조선대백과사전 22권,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주체90(2001), pp, 557-558; 우리 민족끼리, 주체103(2014년) 8월 18일)) 

    [서옥식 전 연합통신 편집국장, 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政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