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요셉의 북한일상] '뱀뼈술'부터 '솔꽃술'까지 무수한 종류... 한민족 징표는 음주DNA?
  • 중국 인터넷 쇼핑몰 taobao에서 중국돈 179원(한화 약 3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주정도 52%짜리 북한산 개성고려인삼술 ⓒ taobao
    ▲ 중국 인터넷 쇼핑몰 taobao에서 중국돈 179원(한화 약 3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주정도 52%짜리 북한산 개성고려인삼술 ⓒ taobao

    대한민국만큼 음주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발달 정도가 아니다. ‘음주천국’이라 해도 될 만큼이다. 대학생들은 신입생 OT(오리엔테이션) 때 '잡탕주'를 말아 돌리며 “우리의 소원은 원~샷”을 합창한다. 아저씨, 회사원들은 저녁 회식 때마다 “위하여”을 연발한다. 

    올해 4월 통계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주 소비량이 130만 9000㎘다. 소주병으로 치면 36억 3,600만 병이다. 음주 가능한 성인 남녀인구를 약 3,500만명으로 봐도 국민 1인 평균 100병이 넘는 소주 소비다. 맥주와 막걸리는 포함되지 않은 통계다.

    그러면 북한의 음주문화는 과연 어떨까, 올해 통계청 기준 북한 인구는 남한 인구의 절반인 2,561만 1,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음주 가능한 성인남녀는 전체인구의 60%인 약 1,500만명 정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한해 술 소비량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뽑긴 어렵지만 그들 역시 남한 사람들 못지않게 술을 사랑한다.

    술 공장 문 닫으면 밀주... 사람과 돼지가 함께 취한다

    북한의 애주가들에게 한해의 첫날인 ‘설날’은 ‘술날’이다. 북한 일반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 남한소주 보다 5%이상 독하지만, 술 소비를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대부분 국영 술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 그래도 북한 사람들의 술 사랑을 계속됐다. 집에서 술을 만들어 자신들의 수요를 자체 충족시켰다. 북한당국에서는 개인들의 양주(釀酒) 및 판매를 엄격히 단속했지만, 시장의 수요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민간 소주를 북한에서는 ‘농태기’라고 불렀다. 술맛은 일정하지 않다. 만드는 집마다, 만들 때마다 술맛이 다 다르다. 개인들이 만든 술은 정제가 안 되어 색깔이 뿌옇고 앙금이 남는다. 대부분 개인이 만드는 농태기는 강냉이(옥수수)를 주원료로 한다.

    술을 '굽고' 난 찌꺼기를 ‘모주’라 한다. 그 모주는 너무 시어서 그냥 먹을 수 없다. 어떤 집은 모주에 밀가루를 섞어서 모주빵을 만들어 먹는다. 술 찌꺼기라도 버릴 수 없는 귀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신맛이 지나쳐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모주는 돼지 먹이로 활용된다. 돼지들도 취해서 비틀거린다. 모주에 알코올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량난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술을 담근 집들은 아사(餓死)를 면했다. 신기한 일이지만 먹을 쌀은 없어도 술 만들 쌀은 있는 법이다. 사회가 피폐해지고 개인들의 삶이 어렵게 되자 주민들은 오히려 술에 더 의지했다. 난방도 안 되고 땔감도 부족한 북한의 한겨울, 주민들에게 술은 추위와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은 존재다.

    "정치범 중 16% 취중 '말 반동' 탓" 통계도

    하지만 술은 개인과 가족을 하루아침에 정치범으로 몰락하게 하는 ‘악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생겨난 북한 술의 또 다른 이름은 ‘도깨비 작물’이다. 간부들이 술자리에서 만취해 어쩌다 말실수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온 가족이 큰 화를 입게 된다. 북한의 정치범들 중 16%가 ‘말 반동’, 즉 ‘말 한마디 잘못해서 끌려간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한 인권단체의 통계가 있다.

    술은 고급 '려과담배(여과솜이 달린 담배)'와 함께 북한사회의 고정 뇌물 중 하나다. 물론 일반 개인집에서 만든 농태기는 뇌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 북한 주민들속에서 단연 인기 있는 건강주는 ‘도토리술’이다. 물론 해외 수출용으로 나오는 38%짜리 ‘개성고려 인삼술’과 ‘백두산 들쭉술’은 뇌물용 고급술에 해당된다.

    1990년대 초반 북한군 1군단에서 정치장교로 있던 기자의 부친은 동료 장교들과의 술자리에서 25%짜리 소주를 큰 물고뿌(컵)에 찰랑찰랑 부어, 당시 9살이던 기자에게 권하며 말했다. “아들아 주량이 도량이란다. 쭉 마셔라”... 그다음은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 해외 수출용 북한술 '범뼈관절염약술 ⓒ bai do
    ▲ 해외 수출용 북한술 '범뼈관절염약술 ⓒ bai do

    김정일의 '원샷' 일화는 애주가들의 안줏거리

    북한에서 '애주가'는 부정적인 칭호가 아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노동당에서 갓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고령의 인민군 장성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나이 많은 장군들이 자그마한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김정일 자신은 큰 사발에 가득 부어 원샷 했다는 일화가 애주가들의 흥겨운 안줏거리다.

    북한은 스스로를 이른바 ‘강성대국’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술만은 ‘강성대국’으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북한의 명품 술인 ‘개성고려 인삼술’과 ‘백두산 들쭉술’, 그리고 북한 국민술인 ‘도토리술’과 김정은만을 위해 만들었다는 ‘차가버섯술’ 말고도 북한의 술 종류, 술 혁신은 가히 혁명적이다.


  • 평양대평양주공장에서 생산한 북한술 '불로술 ⓒ bai do
    ▲ 평양대평양주공장에서 생산한 북한술 '불로술 ⓒ bai do

    정력에 좋다는 뱀뼈술, 산삼술, 력도산술, 불로주, 백두산장뇌삼주, 송이버섯술, 화성범뼈관절염술, 건강에 좋다는 오미자술, 불개미술, 찹쌀술, 상황술, 검은찹쌀술, 수정술, 향술, 구락술, 금강술, 솔꽃술, 록용산삼술, 오갈피술, 살구술.... 

    지역 특산에 속하는 평양술, 평양소주, 강계포고술, 강정술, 인풍술, 북창술, 홍주술, 류경술, 량강주, 강계산머루술, 금강산주목술, 영평술, 그리고 붉은포도술, 백화술, 들쭉술, 목련포도술,  진달래술, 하나소주, 참대술, 룡성소주, 령정술,  왕지네술, 안학술, 고려술, 신덕술,  백로술, 도토리꿀술, 오발주 대동강소주.... 가지수는 셀 수 없다.

    맥주로는 ‘룡성맥주’와 ‘대동강 맥주’가 대표적이며 남한의 막걸리에 해당하는 ‘탁주’도 있다. 어쩌면 남과 북이 통일할 수 있는 마지막 공통점이 애주(愛酒) DNA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