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엔 "약간 우려"… '재인산성' 못 넘을 것이라 본 포석인가
  •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3일 오전 광주염주체육관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포럼 초청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3일 오전 광주염주체육관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포럼 초청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호남 방문 첫날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반면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향해서는 견제구를 던지는데 그쳤다.

    지난 주말에 먼저 호남을 찾았던 경쟁 대권주자들을 향해 '맞불'을 놓은 셈인데, 문재인~안희정 두 사람을 향하는 대응에 온도차가 뚜렷이 느껴져 어떠한 전략적 배경이 있는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안철수 전 대표는 13일 오전 광주염주체육관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포럼 초청토론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모두발언에서부터 "지난 대선에서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문재인 전 대표를 정조준한 안철수 전 대표는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실패는 끼리끼리 해먹는 계파정치 때문인데, 다음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반패권의 성지인 호남에서 패권 세력이 둥지를 트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열린 포문은 지난달 20일 대담집 발간을 계기로 불붙은 이른바 '양보 논란'이 거론되는 대목에서 거침없이 십자포화를 내뿜었다.

    최근 문재인 전 대표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안철수 의원이 미국으로 가지 않고 함께 선거운동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들이 있다"며 "내가 안철수 의원이 아니니까 (단일화를 해놓고 미국으로 가버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20일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라는 대담집을 내놓았다.

    이 대담집에서 “그때(2012년 대선) 만약 안철수 의원이 미국으로 가지 않고 함께 선거운동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질문에, 문재인 전 대표는 “그런 식의 아쉬움을,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알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전 대표는 "후보 양보 이후 40회가 넘는 전국 유세와 3회에 걸친 공동 유세를 했다"며 "선거 하루 전날 밤에도 강남역 사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안 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어 "양보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리가 아니냐"며 "양보했을 뿐만 아니라 도와줬는데도, 고맙다는 말은 커녕 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약간 더 심하게 말하자면…"이라고 운을 떼더니 "동물도 고마움을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전제하긴 했지만, 패널로 나선 김옥조 광남일보 편집국장조차 "아, 쎄다"라고 평할 정도로,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것이다.

    반면 최근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대항마'로 부상하며 호남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서는 절제된 표현으로 견제구를 던졌다.

    안철수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 국면이 참여정부 세력 간의 적통(嫡統)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약간 우려를 한다"며 "참여정부도 공과(功過)가 있는데, 과(過)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핵심 세력끼리 '정권을 달라'고 경쟁하는 모습이 과거 회귀로 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이른바 '참여정부'라고도 불리는 노무현정권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호남서 92.3%의 압도적 몰표를 받았다.

    그럼에도 △당선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남 사람들이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나를 지지했다"는 발언 △호남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던 새천년민주당의 인위적 분당 △호남 홀대 인사·예산 △2007년 11월 "전라도 정치인들과는 정치를 같이 못해먹겠다" 발언 등 수많은 논란을 빚으며, 압도적인 지지를 해준 호남의 등에 칼을 꽂았다.

    정권의 핵심 인사였던 문재인 전 대표는 대북송금특검을 추진하고, 2006년에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왜 (노무현정권을) 부산 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발언으로 장단을 맞췄다.

    안철수 전 대표가 언급한 '참여정부의 과(過)'란 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한때 친노 핵심이었던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과 천정배 전 대표는 이미 공개 사죄를 했다. 안희정 지사도 친노 적통 경쟁만 벌릴 것이 아니라, 호남에 상처를 준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뉘앙스로 읽힌다.

    다만 안철수 전 대표는 김삼헌 광주CBS 선임기자의 "(안희정 지사를) 문재인 전 대표와 같은 부류로 보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했다.

    "짐승"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문재인 전 대표와의 '양보 논란' 비판 때와는 뚜렷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친노로 분류한 것은 동일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서는 작심 비판을 가한 느낌이라면, 안희정 지사에 대해서는 견제구 정도를 던진 느낌이다.

    안희정 지사도 최근 국민의당과 '대북송금특검'과 관련해 여러 논란을 벌였는데도, 대응을 절제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결국 안희정 지사가 민주당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 보고,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호남의 반문(반문재인) 정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여전히 잠복해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호남을 다녀보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정리했다.

    호남에서 이런저런 후보가 계속해서 뜨고 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손학규 의장이 표현한대로 '어쩔 수 없으니 문재인(어쩔문)'도 일부 있겠지만, 대체로 문재인 전 대표 외의 야권 인사들 사이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낼 대안을 주목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떴다가 최근에는 안희정 지사가 호남에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시장이든 안희정 지사든 결국 민주당 경선을 넘어서야 본선에 출마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중진의원들로 구성된 국민의당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친문패권의 본질을 궤뚫고 있다.

    박지원 대표는 이를 가리켜 "안희정 지사가 상당히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재인산성'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차피 안희정 지사가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고 보면, 수위를 넘는 과도한 비판을 할 필요가 없다. 그 편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지사가 친문 지지자들의 극성에 의해 낙마할 경우, 안희정 지사의 지지표를 흡수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안철수 전 대표는 "네거티브를 하면 2등 안에 들 수는 있겠지만, 적이 많아져서 1등을 못한다"고 말했다. 결선투표제의 장점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안희정 지사에 대한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이유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안철수 전 대표가 이날도 거듭 공언한대로 "이번 대선은 나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라면,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다른 후보군을 향해서는 필요 이상의 네거티브를 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지원 대표는 지난 2015년 2·8 전당대회 때는 '대북송금특검'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표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투석을 시작했고, 나는 한 눈을 잃었다'고 '벼랑끝 대립'을 마다 않았다"며 "그랬던 박지원 대표가 안희정 지사를 향해서는 뜨뜻미지근한 사과를 하자마자 '역시 안희정'이라고 대응 수위를 조절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