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에도 법사위원장 어깃장에 위기일발, 본래 취지 벗어나 권한 비대… 수술 필요해
  • ▲ 지난 2일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진통 끝에 예산안을 처리하게 된 중심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몽니'가 있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2일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진통 끝에 예산안을 처리하게 된 중심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몽니'가 있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당초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로 순탄한 처리가 예상됐던 내년도 예산안이 3일 우여곡절 끝에 처리됐다. 예상과 달리 전날 하루종일 진통이 계속되면서 대혼란이 초래된 것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의 '상원의장'과 같은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새정치연합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지난 2일 아침,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가 처리키로 합의한 5개 법안에 대한 심사를 거부하고 나섰다.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이다.

    이상민 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국회법 제59조에는 다른 상임위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할 때는 그 회부된 날로부터 5일이 지나야 안건을 상정해서 심의할 수 있다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두 사람의 원내대표 또는 (여야 당대표 2명을 포함해) 네 명이 만나서 이걸 통과시키자 하면 국회의원이 네 명만 있으면 되지, 뭐하러 300명이나 뽑아놨느냐"라고 되레 반문했다.

    그의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3일에 법사위에 들어온 법안들은 최소 8일이 지나야 법사위 통과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산안부터 처리하고 법안은 9일에 처리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이상민 위원장의 발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마치 법사위원장인 자신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자기과시적 의미도 있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법안 처리 시점을 바꾸려는 이상민 의원의 얕은 '꼼수'가 결국 '몽니부리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치권의 정국 주도권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우선 예산안 정국에 있어서는 여당이 우위를 차지하는 모양새가 그려진다. 만일 여야가 합의하지 않을 경우 정부 원안이 그대로 부의되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자기 지역구에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예산을 끼워넣어야 하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 정부 원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반면 일단 예산안이 통과되면 그 이후에는 야당이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고 야당이 협조해줘야만 하는 까닭이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역학관계 때문에 여야 지도부로서는 예산안과 법안처리가 동시에 얽혀있는 현 시점에 적절히 균형을 맞춰서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을 선택하며 협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사리 이룬 합의도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어깃장을 놓으면서 휴지조각이 될 뻔했다.

    당시 여야 간 협상의 배석자였던 김정훈 정책위원장은 물론 김영우 수석대변인도 이상민 위원장의 '몽니'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이날 "우리 법사위원장님이 해도해도 너무하다"면서 "여야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한계 내에서 굉장히 고심한 끝에 어렵사리 합의를 했는데, 이것마저 법사위에서 처리를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것을 부정하겠다고 하는 독선"이라고 했다.

    이어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 뿐 아니라 많은 의원들이, 의회민주주의에 대해 정말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됐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심지어 그는 이같은 행태를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여야 원내대표가 야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큰 상임위원회의 반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회법 85조 1항의 '의안의 상정시기'에 나온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로 보고 이른바 '직권상정' 과 비슷한 절차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놨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상민 위원장은 긴박했던 2일 밤 야당의 긴급최고위에까지 들어갔다 나오면서 여야의 예산 및 법안 처리 합의에 대해 '야바위'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상민 위원장의 행태가 상식적인 의회운영의 궤도를 탈선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날 이상민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상원의장마냥 법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모습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소 여야합의를 지극히 강조해온 정의화 의장도 이날만큼은 칼을 빼들고 본회의에 곧바로 부의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본래 모든 법안이 소관 상임위에서 통과된 뒤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돼 있는 취지는 법률을 전문 분야로 하는 법사위에서 법안의 체계와 자구수정을 하라는 의미이다. 이를 넘어서 법사위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은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근본적 성찰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특히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법안도 법사위에서 한 번 소위로 보내버리면 함흥차사처럼 언제 심사될지 기약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가히 법사위원들은 법안의 '청부살인업자'로 불릴 법 하다는 성토가 줄을 잇는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국회에 법률 전문가가 드물어 법사위원회의 검토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각 상임위에 율사 출신 의원들이 포진해 있고, 전문위원 및 입법조사처의 충실한 지원도 받고 있다"며 "원래의 취지가 몰각되고 법안의 실질 내용까지 심사를 하는 법사위 심사가 계속 필요한지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시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