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이상 서서 일하지 않기’→2009년부터 대형마트 3사 의자 설치여성 안심주택, 여대생 전용 임대주택→‘구상’에 불과, 실행계획 없어직장맘지원센터, 여성건강지원센터→역할 모호, 과대포장 지적
  • ▲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새 여성정책인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새 여성정책인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발표한 서울시 여성정책에 대해 실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은 6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발표했다. 발표 전 장미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기자실을 찾은 박 시장은 여기자들에게 가져온 장미 한 송이씩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104회를 맞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인권’을 상징하는 장미꽃을 나눠드렸다”며 “여성이 웃어야 서울이 웃는다”고 말했다.

    이날 박 시장이 내놓은 ‘서울비전’은 오세훈 전 시장의 대표적 여성정책이었던 ‘여행(女幸) 프로젝트’와 여러모로 비교되면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오 전 시장의 여성정책은 하이힐이 보도블럭 틈에 끼이지 않도록 부서진 보도블럭을 교체하고 여성화장실과 전용주차장을 확대하는 등 여성의 ‘편의’에 방점을 찍었다. 당시 '여행 프로젝트'는 여성의 관점에서 편의를 적극 고려한 생활밀착형 정책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박 시장이 선보인 ‘서울비전’은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 전 시장의 정책과 비교된다. 여성의 편의에 그치지 않고 직장여성과 취약계층 여성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우호적 평가도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권고’ 기능까지 하는 성평등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서울시와 산하기관 여성 비정규직 2천9백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하는 등 진일보한 내용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새 여성정책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정책이 추상적이라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많다. 때문에 구체적인 세부실행계획 없이 설익은 구상만 발표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통업 여성 종사자 처우개선방안으로 내놓은 ‘2시간 이상 서서 일하지 않기’ 정책이다.

    이 내용은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발표 때도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시는 “각 자치구에서 조례로 규제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유통업체에서 여성 직원을 2시간 이상 서서 일하도록 하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린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자 곧 말을 바꿨다.

    시는 해명자료를 통해 “자치구 조례로 근무시간이나 유형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유통업계의 실정을 모르고 만든 탁상행정이란 비난도 쏟아졌다. 현재 대형마트들은 지난 2009년부터 대부분 계산원 자리에 의자를 설치하고 있다.

    당시 마트 계산원들이 장시간 서서 일하면서 건강을 해친다는 여론이 일면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의자를 설치한 것이다. 이와 함께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 주기적인 휴식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장이 직접 나선 자리에서 이 방안을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선전했다. '탁상행정, 퍼포먼스 행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정책들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많다.

    직장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지원한다는 '직장맘지원센터'는 상담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모호하다. 다른 역할이 없다. 앞으로 역할이 늘어나겠지만 직장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 지원이라는 구호는 아무리 봐도 과대포장이다.

    안에 타고 있는 승객을 볼 수 있다는 투시형 엘리베이터 설치도 은평 뉴타운을 시작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시행계획은 없다.

    25개 자치구에 설립한다는 여성건강지원센터 역시 실제론 기존 보건소 내 센터를 설치하는 것으로 현재 보건소가 수행하는 주민건강검진업무의 대상과 서비스 종류를 확대하는 정도다. 굳이 '여성건강지원센터'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사업이다.

    노후 공공건물을 여성 전용 안심주택으로 재활용하겠다는 내용이나 여대생을 위한 전용 임대주택 사업도 현재까진 ‘구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가 가장 중점 홍보한 성평등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시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중앙부처나 타 시도의 여성위원회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문기구를 넘어서 권고기능까지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문이나 권고 모두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본다면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장미꽃을 선물하는 ‘깜짝쇼’까지 하면서 준비한 발표치곤 ‘알맹이가 너무 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성평등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시 관계자는 “자문보다는 강하고 강제보다는 약한 중간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과 여성가족실장외 시청 주요 실국 본부장 5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만큼 실행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비전 발표라 아직 설익은 정책들이 꽤 있다. 여성 안심주택 같은 경우 주택정책실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며 “곧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