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천정배, '최전선'…"재보선 승리로 이만큼 얻어낸 건데"“선진, 한나라와 차별화? 정체성 혼란 가중”
  • 한·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처리를 앞두고 야권의 힘겨루기가 잇따르고 있다. 올 7월 발효를 앞두고 ‘발목잡기’ 성격이 아닌 정치인 개인과 특정 정당의 ‘주가 올리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는 4일 본회의를 열고 한·EU FTA 비준안을 처리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난 2일 주무부처 장관들과 여야정 회담을 갖고 FTA 비준안과 FTA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 개정안, 기업형수퍼마켓(SSM) 규제법을 일괄 처리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본회의 거부’를 외치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정 회담 이튿날 기자들과 만나 “피해 대책에 관한 우리 요구사항을 거의 100% 들어주는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느냐”면서 “한·EU FTA는 한·미 FTA와 달리 국민의 70~80%가 지지하고 이익도 훨씬 많다”고 협상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 내부에서 터졌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나란히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 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이들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미, 한·EU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과 기자회견을 함께 열고 FTA 반대의 최전방에 섰다.

    천 최고위원은 “왜 민주당이 한·EU FTA 처리에서 들러리를 서나. 민주당은 야 4당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4.27 재보선에서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을 저지하기로 정책 합의를 한 바 있다.

  • ▲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EU FTA 비준반대 범국본 회원들이 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 오른쪽부터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 연합뉴스
    ▲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EU FTA 비준반대 범국본 회원들이 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 오른쪽부터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 연합뉴스

    이튿날 손 대표가 국회에서 비공개로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격론을 주도했다. 이들은 비준안 처리 반대는 물론 한ㆍEU FTA를 원점에서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은 회의 도중 문을 열고 나와 “한ㆍEU FTA는 당의 명운이 걸린 문제인데 한나라당을 대체하려는 대안 정당으로서 (비준안 처리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회의는 30분인 예정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넘겨 끝났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나친 색깔 드러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고위당직자는 “4.27 재보선 승리로 FTA 협상에서도 민주당이 이만큼 성과를 낸 것인데 당 최고위원 분들이 저리 반색하니 할 말이 없다”면서 “본인 주가 올리기에 연연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야4당 정책공조를 주장하는데, 참여당은 결국 원내 1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대권 가능성만 믿고 우리가 끌려 다녀야 하나. 합의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90%이상 얻어냈는데도 반대하는 것은 당론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FTA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과제로 추진한 정책인데다 당시 각각 통일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반대로 돌아선데 대한 비판 의견도 만만치 않다.

    분당에서 살아 돌아온 손학규 대표 ‘견제용’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내 의원총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반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것인데 이들이 왜 밖으로 나와 농성까지 벌였겠느냐”고 했다.

    충청권 기반의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도 한·EU FTA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28일 FTA 소관 상임위인 외통위에서 통과할 당시 이회창 대표는 피해산업 대책 마련이 미비하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여야정 합의안에 사후 대책이 대거 보완됐음에도 4일 선진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밀실야합은 국회법을 능멸했다”며 반(反) FTA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은 선진당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보수정당 정체성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야권관계자는 “이번 FTA 반대로 선진당의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한나라당, 민주당 주연인 무대에 조연으로 서지 않겠다는 건데 선진당이 민노당과 함께할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정당을 넘어 전국으로 진출해야하는 선진당 입장에서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보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선진당의 반FTA 공세가 제2야당으로서의 박탈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 여권관계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틈바구니에서 주요 국가 정책결정과정에 배제되는데 따른 불만을 표출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정가에선 "당 노선이 FTA  반대인 민노당이 그러는 것은 이해가 가는 데 FTA 물꼬를 연 노무현정권 국무위원을 지낸 정동영, 천정배의원 등은 차제에 민노당으로 당적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지적이 나왔다. 또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선진당과 보수 정객을 자처하는 이회창 총재가 반대하는 모습은 추하기 이를 때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