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부터 그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유신의 독재자'라는 비난과 '산업화의 아버지'라는 두 가지 엇갈린 이름을 가진 박정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 서거 3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에선 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가기록원(원장 박상덕)은 29일까지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생전 사용하던 유품과 국내·외 정상들에게 받은 선물을 선보이는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 ▲ <span style=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 ⓒ 뉴데일리 " title="▲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 ⓒ 뉴데일리 ">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 ⓒ 뉴데일리

    30년 만에 조우한 이 지도자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전시회 초입에는 청와대 전경을 배경으로 한 실사의 박 전 대통령 모습을 담은 대형 포토존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옆에 서 사진을 찍었다. 예닐곱 살쯤 되는 어린 남매는 나란히 양쪽에 서서 박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고, 30대 중 후반쯤 되는 여성은 자신의 키와 대보는 시늉을 했다. 어떤 중년 남성은 박 전 대통령 어깨에 손을 걸쳤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양, 그렇게 박정희는 어느샌가 우리 곁으로 오고 있었다.

    입구에는 박 전 대통령의 '승전고' 마크와 휘호를 스탬프로 찍어 기념엽서를 만드는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중절모 사이로 흰머리가 성성하게 보이는 노신사부터 꼬마들까지 신나게 스탬프를 찍어댔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돼 있으면 어려움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즐겨쓰던 친필휘호다. 파란색 잉크물이 선명하게 엽서에 찍혔다. 

    입구에 들어서자 박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TV로 상영됐다. 흑백 영상 속엔 박 전 대통령의 주요업적과 해외 순방 활동 당시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아내 육영수 여사와 딸 근혜·근령과 단란했던 한 때, 아들 지만을 안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도 담겼다.

  • ▲ <span style=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 축하선물로 받은 '우차금동상' ⓒ 뉴데일리 " title="▲ 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 축하선물로 받은 '우차금동상' ⓒ 뉴데일리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 축하선물로 받은 '우차금동상' ⓒ 뉴데일리

    그가 취임 선물로 받은 '우차금동상'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의미로 국내 주요인사로부터 받은 것이란다. 적삼에 무릎까지 걷은 바지를 입은 농부와 소달구지 동상이다. 달구지 안에는 쌀 가마니와 그 시절 표기법대로 적힌 '세멘트' , '금'(金)이라고 새겨진 복주머니, 그리고 우리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과 아낙 동상이 그 위에 올려졌다. 가운데와 끝부분엔 각각  '중소기업'과 '선박'이라고 적힌 모형을 소 한마리가 우직하게 끌고 가고 있다.

    6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성실한 서민사회를 바탕으로 한 민주사회 건설"을 역설한 그였다. 한발을 세차게 올리고 힘을 써서 수레를 끄는 소 한마리가 마치 우리 민족성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땀흘려 일한 만큼 배불리 먹는 것, 당시 한국인 대다수의 희망이었으리라. '보릿고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겨내고 싶어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염원으로 박 전 대통령 시대에 '새마을 운동' 이 시작됐다.

    발걸음은 또 한곳에서 멈춰졌다. 그의 손때가 묻은 유품에서다. 이 곳을 찾은 중장년 관람객들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용하던 양수책상을 유심히 바라봤다. 낡기도 많이 낡은 나무 책상 위에는 박 전 대통령이 쓰던 결재용 받침대와 육 여사가 다정히 웃는 모습, 애완견 진돗개 진또의 사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옆에는 박 전 대통령 소장품인 대형 지구의와 세계지도가 놓여있었다. 내외빈을 접견할 때 사용하던 노란색 소파도 그대로 재현해놨다

  • ▲ <span style=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 ⓒ 뉴데일리 " title="▲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 ⓒ 뉴데일리 ">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 ⓒ 뉴데일리

    "이 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건 박 대통령 공로가 크지" "나쁜 점만 끄집어내선 안 돼, 국가를 위해 일한 분인데 이젠 올바르게 봐야 해"  "김일성한테 절대 안졌지. 체구는 작아도 어찌나 강직했던지…" 관람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부모 세대의 지나간 향수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리기엔 '박정희'라는 인물이 끼친 영향력은 여전히 컸다.

  • ▲ <span style=재미 과학자 김완희 박사가 박 전 대통령과 주고받은 친필 서한 ⓒ 뉴데일리 " title="▲ 재미 과학자 김완희 박사가 박 전 대통령과 주고받은 친필 서한 ⓒ 뉴데일리 ">
    재미 과학자 김완희 박사가 박 전 대통령과 주고받은 친필 서한 ⓒ 뉴데일리

    전시회 관계자는 "하루에 5300명 정도가 다녀간 것으로 집계된다"면서 "오늘 오전에도 단체 관람객들이 계속 오갔는데 박 대통령 전시회 인기가 굉장히 좋다"고 귀뜸했다. 실제로 전시회장에는 히잡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이슬람 여성도 있었고, 안내원을 통해 설명을 듣는 일본·중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일흔이 훌쩍 넘어보이는 한 여성은 전시물에 관련된 설명을 수첩에 열심히 적었고, 20대 초반 전경들은 유리관 안에 전시된 물품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갖다댔다. 장난기 어린 중·고등학생들은 박 전 대통령 초상화 아래서 '간지난다, 우와~ 잘 생겼다'를 연발했다. 모습과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저마다 그렇게 박정희와 소통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과학 진흥을 위한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생전 그가 재미과학자 김완희 박사와 주고받은 서신에서였다. 60~70년대 과학기술 기초를 닦은 전자산업 대부로 불리는 김 박사는 전자공업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130여통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전시된 편지는 2009년 6월 김 박사가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박정희의 업적'이라고 하면 으레 경제성장, 근대화를 꼽는다. 여기에 그의 업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과학기술 진흥'이다. 박 전 대통령이 한국 과학발전을 위해 설립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우리나라 본격 과학기술발전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KIST출신 동문모임 '연우회'는 이날 'KIST 설립자 박정희 과학기술 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공식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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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박 전 대통령의 활동한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 ⓒ 뉴데일리

  • ▲ <span style=김일성이 선물한 '금강산선녀도' ⓒ 뉴데일리 " title="▲ 김일성이 선물한 '금강산선녀도' ⓒ 뉴데일리 ">
    김일성이 선물한 '금강산선녀도' ⓒ 뉴데일리

    하늘 위에서 손피리를 불며 유유자적 노니는 수놓은 선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하다. '금강산선녀도'는 1972년 북한 김일성이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선물이다. 그 옆에는 '김일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박힌 명함이 놓여있다.

    관람객이 또 한번 멈춰 선 곳은 덩그러니 전시돼 있는 나무토막에서였다. 1976년 8.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리처드 스틸웰 미8군 사령관이 보낸 현장의 미루나무 토막을 패로 만든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 한마디로 김일성의 사과를 이틀만에 받아낸 일화도 있다.

    이 외에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아폴로11호 월석과 태국 타놈 전 수상이 선물한 상아로 만든 승전고, 대만 장개석 총통이 증정한 석사자상 등 42개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다양한 선물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내 一生(일생) 祖國(조국)과 民族(민족)을 爲(위)하여'
    전시회장을 나오는 길목에 걸린 그의 글이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노영종 연구관은 "간혹 전시회에 오는 분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원하는데 이번 행사는 기록물에 중점을 둔 것이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관은 "이번 '선물과 유품으로 만나는 박정희' 전시회를 계기로 기록물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기록물 기증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29일까지며 무료로 공개된다. 02-3701-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