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부산 온천동 금강공원에선 산림청과 전국 53개 지방자치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소나무 재선충 5년 내 방제’를 다짐하는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광수 산림청장과 부산시 행정부시장, 각 지자체 부단체장 등 300여 명이 모인 자리 한 구석, 남다른 감회로 이날 행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충해과장 신상철(55) 박사. 대회 순간순간마다 그의 뇌리엔 소나무 재선충과 싸워온 20여 년의 추억들이 때론 아픈 기억으로 때론 가슴 차오르는 보람으로 스쳐 지났다.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실패한 재선충 방제였다. 일본은 재선충병으로 소나무의 90% 이상을 잃었다. 이런 악마와 맞서 싸운게 신 박사 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이겼다.

    일본산 원숭이 우리에서 묻어 들어온 재선충

    재앙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온 나라가 서울올림픽 열기로 들끓던 1988년. 부산 금강공원 동물원에 일본산 원숭이 한 쌍이 들어왔다. 원숭이를 우리에 넣고 수송상자는 버렸다. 밑에 깔았던 소나무 가지와 함께였다. 누구도 신경 안 쓴 그 소나무 가지가 엄청난 재앙의 시작이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해온 소나무재선충. 그들이 가지들에 복병처럼 숨어있었다.

    국내 처음으로 금정산 금정마을 주변 소나무 300여 그루가 감염됐다. 서둘러 벌목에 나서서 초기방제에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세를 더해간 소나무재선충은 지난 2005년까지 전국의 산과 들 7811ha를 휩쓸었다. 56만6000그루의 소나무, 해송, 잣나무들이 희생됐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소나무재선충을 ‘소나무 에이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북미가 ‘고향’인 소나무재선충은 정작 북미 지역에선 활약을 못했다. 그 지역의 소나무가 재선충에 강한 저항력을 갖고 있는 때문이라는 게 신상철 박사의 설명이다. 재선충이 물 건너 일본으로 들어온 것은 1905년. 항구도시인 나가사키에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 당국도 처음엔 재선충의 존재를 몰랐다. 소나무가 죽어가니 그저 솔수염하늘소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솔수염하늘소는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체. 60여년을 솔수염하늘소만 때려잡다가 1972년에야 소나무재선충의 존재를 발견했다. 이 재선충은 일본 상륙 83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왔다.

    2005년까지 재선충 맹위, 이후 급격히 줄어

    하지만 우리와 일본은 입장이 달랐다. 일본의 나무 중 소나무의 비중은 8% 정도. 하지만 한국은 25%가 넘었다. 산마다 온통 소나무 숲인 게 우리나라 아닌가? 

    2005년까지 맹위를 떨치던 재선충병은 2007년 10만8700 그루, 2008년엔 5만500여 그루로 급히 감소한다. 매년 30%씩 감염이 줄어든 것. 재선충이 ‘착해져서’도 아니고 갑자기 천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전국 지도를 붉게 물들이던 재선충 오염지역이 파란 청정지역 표시로 바뀐 것은, 신상철 박사와 그와 함께 일하는 산림병충해과 연구관, 연구사들의 숨은 땀방울 때문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5년 9월부터 시행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이었습니다.”

    신 박사는 공로를 특별법 입법과 과감한 정부의 방제 추진 덕으로 돌렸다. 하지만 겸양의 말이다. 가는 실같이 생긴 소나무재선충은 크기가 0.6~1㎜. 가족계획을 모르는 녀석이라 1쌍의 재선충이 20일이면 20여만 마리로 늘어난다. 이 대군들이 1.2~1.9㎝ 크기의 북방수염하늘소나 솔수염하늘소를 타고 이동하는데 감염 소나무를 자르고 태우고 해도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효과적인 방제법을 개발한 것은 신상철 박사 팀이었다. 감염 안된 소나무들에 아바멕틴 등의 약제를 이용해 나무주사를 놓아 감염을 막았다. 약제를 나무 주위 땅에 주입하는 ‘토양관주’라는 방법을 활용했다. 일주일 이상 걸리던 재선충병 감염 여부를 20여 분이면 확인 가능한 진단 키트도 엘지생명과학과 합작으로 개발했다. 이를 위해 국내 재선충의 유전자 정보도 연구했다.

    신 박사는 “재선충 게놈 지도를 현재 90% 이상 완성했다”며 “진단 키트는 내년부터 방제 현장에 본격 보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개 곤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이동을 파악하고자 이들의 등판에 달아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전파 추적 장치 개발도 이들이 했다. 무게 0.02g. 전파 송수신기의 특정 주파수 전파를 받아 증폭한 뒤 반사하는 반도체 소자와 구리선 안테나로 만들어진 이 장치는 앞으로 더 경량화 할 계획이다.

    신 박사 팀의 방제 기술 세계 이목을 사로잡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소나무재선충 국제회의에서 신 박사 팀의 한혜림 박사가 소개한 한국의 방제특별법과 나무주사 등 예방 기술 등은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재선충병으로 골머리를 앓는 포르투갈, 방제자금을 지원하고도 효과가 없어 속만 끓이던 유럽연합 국가들은 한국의 기술에 감탄했다. 토종 방제기술의 수출 가능성이 크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강원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친 신상철 박사는 1979년 산림과학원에 첫 발을 디뎠다. 올해가 근무 31년째이다. 우리 산의 푸르름 곳곳에 그의 땀이 자양분으로 스며있을 것 같다.

    “제 고향이 가평이에요. 잣나무, 밤나무가 많았는데 밤나무는 병충해로 많이 사라졌지요.”
    푸른 가평에서 자란 그가 우리 산의 푸르름을 지킨다. 운명처럼 주어진 숙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