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검찰조사-출국에 단 사흘..현대-대우 로비스트로 유명, '박지원 재산관리인' 소문도
  • 지난 11월 26일 50대 후반의 한 남성이 입국했다. 그는 사흘 간 검찰 수사를 받고 29일 조용히 출국했다. 그는 DJ정부 시절 '현대그룹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영완(58) 씨다.

    ‘기소중지’ 상태인 김 씨가 제 발로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고 다시 출국할 수 있었던 것을 놓고 세간에서는 ‘이명박 정부와의 빅딜’ 설을 내놓고 있다.

    2003년 특검팀 구성 전 떠난 ‘대북송금 비자금’ 핵심인물

    ‘기소중지’란 피의자가 출국하거나 사라져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검찰이 취하는 조치다. ‘기소중지’가 되면 공소시효도 멈춰 나중에 다시 수사를 할 수 있다. 김 씨처럼 몇 년 동안 해외로 도피했던 기소중지자가 귀국하면 출국 금지 조치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김 씨는 사흘 만에 출국했다.

  • ▲ 美교민언론 '선데이저널USA'가 만든 '현대그룹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의 흐름도.
    ▲ 美교민언론 '선데이저널USA'가 만든 '현대그룹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의 흐름도.

    김 씨가 관련된 사건은 2003년 4월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비자금(이하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이다. 당시 송두환 특별검사를 중심으로 특검팀이 꾸려져 수사를 했다. 이때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북송금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권노갑 前민주당 고문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다. 박지원 前장관은 2006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권 前고문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세간에서는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을 故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 관광사업 등 대북사업을 이유로 2000년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에게 150억 원의 양도성 예금증서(CD)를 주고, 권노갑 前의원에게 3,000만 달러를 준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때 故정 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준 CD와 권노갑 前의원에게 준 미화를 명동 사채시장과 스위스 은행 계좌로 ‘세탁’해준 게 김영완 씨라고 한다.

    김 씨는 특검팀이 꾸려지기 직전인 2003년 3월 2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의 부인 장 모 씨는 그 전에 출국했다. 이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 뉴욕 맨해튼에 있는 1,000만 달러짜리 고급 맨션에 살았다고 한다. 2007년에는 이들이 출국 전 홍콩 HSBC은행 계좌로 150만 달러를 송금한 정황도 밝혀졌다. 검찰은 김 씨에 대한 기소중지를 계속 유지했다.

    그런 그가 제 발로 귀국했다. 지난 2일 대검 중수부는 언론에 “김 씨를 상대로 해외계좌에 입금됐다는 3,000만 달러의 행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대검 중수부는 “김 씨가 자수서를 들고 와 조사를 하고, 언제든 검찰이 부를 때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해 출국을 허락했다. 미국으로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씨의 그간 행적을 아는 사람 중에선 검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일각에서는 김 씨와 대검 중수부 사이에 모종의 ‘협상’이 있었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김영완, 무기거래상인가 권력브로커인가

    김영완 씨는 1953년생이다. 부산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서울 태생이라는 설도 있다. 서울 중앙고(62회), 고려대 교육학과(71학번)를 다니다 가족과 함께 美캘리포니아로 이민가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87년 서울에 ‘삼진통상’이라는 무기중개상을 차린 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부산 출신의 군 인사 인맥을 통해 미국제-독일제 무기 수입상으로 활동했다.

  • ▲ 우리 군이 보유한 CH-47D 헬리콥터. 성능이 매우 뛰어나 세계 각국이 운용 중이다. 우리 군은 1988년부터 이듬해까지 24대를 도입했다. 이때 에이전트가 김영완 씨였다.
    ▲ 우리 군이 보유한 CH-47D 헬리콥터. 성능이 매우 뛰어나 세계 각국이 운용 중이다. 우리 군은 1988년부터 이듬해까지 24대를 도입했다. 이때 에이전트가 김영완 씨였다.

    김 씨의 대표적 성과는 1988년부터 시작된 CH-47D형 헬리콥터 도입이었다. 김 씨는 당시 美보잉사 에이전트로 우리 군에 24대의 CH-47D 헬리콥터를 납품, 보잉사로부터 약 1,000만 달러의 커미션을 받았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커미션을 종자돈으로 1990년대부터 부동산 임대업과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 김 씨의 돈은 고교 후배 임 모 씨를 통해 주식·채권 시장에 돌았다고 한다. 명동 사채 시장의 장 모 씨와 허 모 씨가 김 씨의 ‘검은 돈’을 세탁했다고 한다. 이렇게 굴린 돈은 김 씨가 정치권에 로비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김 씨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1993년 ‘율곡사업 비리’가 터지면서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다음 한국을 떠났다.

    김 씨는 ‘율곡사업 비리’에 대한 관심이 잦아든 후 귀국했다. 김 씨는 김현철 씨와 김광일,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접근하다 권영해 안기부장으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이때 ‘율곡사업 비리’에 계속 매달렸던 당시 평화민주당(총재 김대중) 국방위원 권노갑 의원을 만나 율곡비리 정보를 주면서 친분을 맺게 됐다는 게 미국 현지 언론들의 ‘이야기’다.

    이렇게 알게 된 김 씨와 권노갑 前고문의 관계는 ‘매우 끈끈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2003년 10월 ‘권노갑 씨가 1999년 4월부터 2001년 7월까지 김영완 씨 소유였던 평창동 S빌라에서 거주했고, 김 씨의 식사 모임에도 초대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권 씨가 살았던 S빌라에는 2000년 김은성 前국정원 2차장이 권 씨를 자주 찾아가 국정원 고급 정보를 보고했고, 그 해 7월 진승현 씨와 함께 방문해 5,000만 원이 든 돈가방을 건넸다고 해 2002년 5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현장 검증까지 했던 곳이다.

    김 씨는 박지원 前장관과도 친했다. 김 씨는 1997년 말 대학 선배인 오정소 前안기부 차장에게 부탁해 박지원 前장관(당시 당선자 대변인)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 뒤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박지원 前장관의 측근인 박종이 씨(당시 경감)와도 그가 1998년 청와대 사직동팀(경찰 특수수사과)에서 일하던 때 친분을 맺었다고 한다. 이후 박 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김 씨의 ‘로비’는 각계로 뻗었다. <시사저널>은 2003년 7월 7일자 기사에서 ‘김병관 前<동아일보> 명예회장,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故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장, 이익치 前현대증권 회장, 김태정 前법무부장관, 김우식 前연세대 총장도 그와 친분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중 현대그룹과의 관계는 특이하다. 김 씨는 삼진통상을 운영하면서 사업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김 씨는 정주영 회장을 ‘아버지’라 불렀다고 한다. 김 씨가 정몽헌 회장과 만나게 된 것도 정주영 회장을 만나면서 함께 알게 된 이익치 前현대증권 회장이 1990년, 1999년 소개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 당시의 '피고인'들. 왼쪽부터 이익치 前현대증권 회장, 박지원 前장관, 권노갑 前민주당 고문. 원 속의 사진은 김영완 씨.
    ▲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 당시의 '피고인'들. 왼쪽부터 이익치 前현대증권 회장, 박지원 前장관, 권노갑 前민주당 고문. 원 속의 사진은 김영완 씨.

    검찰과 정보 관계자들은 김 씨가 이런 ‘마당발’을 통해 박지원 前장관과 故정몽헌 회장 사이에서 ‘돈 심부름’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완 씨는 박지원 前장관의 자금관리인?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씨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현금 재벌’이 아니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박지원, 권노갑의 측근으로 부상하면서 ‘재벌 행세’를 했다고 한다. 때문에 김 씨를 아는 정보 관계자들은 김 씨가 박지원 前장관의 자금관리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씨의 ‘재벌 행세’는 국내보다 미국, 특히 교민이 많은 LA에서 유명하다. LA 현지 교민언론들은 2003년 7월 경 “김영완 씨가 L.A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하려다 갑자기 중단한 일 외에 워싱턴 인근에서 ‘김대중 아들 돈인지, 박지원 돈인지 알 수 없는 거액이 춤추고 있다’는 소문이 번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교민 언론들은 “호남 출신 K씨가 2002년부터 워싱턴 인근 페어팩스 럭빌 센트라빌 카운티에 커다란 슈퍼마켓 3개를 오픈하고, 오는 가을에 볼티모어 인근에 또 2개의 큰 슈퍼마켓을 오픈한다고 한다. 시가로 1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야 하는 슈퍼마켓을 1~2년 사이에 5개를 오픈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때문인지 최근에는 ‘D.J 아들 돈 아니면 박지원 돈이 춤추고 있다’는 말이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 前장관과 김 씨, 김대중 정권 실세들의 비자금에 대한 소문은 지난 8~9년 동안 미국 교민사회에서 계속 떠돌았다. 김 씨의 경우 기소중지 중이던 2007년 초 ‘캐나다 여권’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당당히 입국해 여권 실세를 만나고 다녔다는 설도 있다.

    미국 교민사회에서는 김 씨 외에 현재 출국금지 조치로 발이 묶여 있는 로비스트 조풍언 씨, 지난 정권에서 로비스트 의혹을 받아온 D기업의 Y회장 등이 ‘DJ 정권 비자금’설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 김영완 씨가 입국했다 출국한 ‘미스테리’는 한동안 언론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특집] ‘DJ비자금 루머’ 실체 영영 묻히나?

    ①김영완, 입국-출국 미스테리
    ②조풍언, 대우그룹 구명로비의 의문
    ③성공한 로비스트인가 D기업 Y회장
    ④이명박 정부, 前정권과 ‘딜’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