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봐선 진중권은 '21세기 신종 친일파'"...극치를 달리는 좌파들의 위선
  • 나경원이 친일파면, 진중권은 무슨파?! 
    자녀 양육비나 日本 정부에 돌려주고 남의 흠을 잡아야 할 것이다
    金泌材    
     
    나경원 의원이 7년 전 일본의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좌파들에게 난타를 당하고 있다.

    일제시대도 아니고 '동맹국가' 행사에 참석한 게 무슨 죄가 된다는 것인지. 자살한 노무현 말대로 정말 ‘깜’도 안 되는 것 가지고 장난질이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 공고화를 통해 주일미군의 해·공군·해병대 전력, 자위대의 해상전력, 한국군의 지상군 전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 제대로 된 국가라면 중국-러시아-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韓美日 군사력 일체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자칭-타칭 시사평론가 진중권(사진) 씨가 나 의원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독설을 날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차라리 이렇게 얘기하시지. ‘초선 때라 제가 나경원인지도 모르고 갔어요. 가보니까 제가 나경원이더라구요. 그래서 즉시 빠져나왔습니다”라며 나 의원을 비난했다.

    참고로 진중권 씨는 부인이 일본인이다.

    진중권 씨는 2005년 5월 경향신문 기고문에서 자신의 아이에게는 두 개의 국적이 있다면서 '일본 국적 덕분에 (아이들이) 태어날 때에는 출산비를 전액 일본 정부로부터 돌려받았고, 매달 5만원 가량의 양육비도 받고 있다'고 했던 인물이다.

    그는 또 '사회의 지도층 여러분. 제발 제 기득권은 총 들고 제 손으로 지킵시다. 가진 것 없어 지킬 것도 없는 집의 자식들에게 시키지 말고'라고 말한 뒤, '이 빌어먹을 나라의 국적, 미제 국적보다 헐값에 팔리는 이 국산 국적을 나도 포기하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말만 봐서는 거의 '21세기 신종 친일파'라고 봐야 할 것이다.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진중권 씨가 오늘 큰 웃음(?) 선사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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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경향신문 인터넷 리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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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한국사회의 위선자들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親日)진상규명법' 만든 것은 왜 지적 않나?
     
    金泌材   
     
     
  • ▲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주도했던 친일파의 후손들. 좌측으로 부터 김희선, 신기남, 이미경이다. ⓒ
    ▲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주도했던 친일파의 후손들. 좌측으로 부터 김희선, 신기남, 이미경이다. ⓒ


    노무현 정부는 ‘치욕적인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미명하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진상규명법)을 제정, 2004년 3월22일 공포했다.

    당시 친일진상규명법의 제정을 주도했던 국회 내 단체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약칭 민족정기의원모임)으로 1~2대 회장을 김희선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맡았다.

    문제는 김희선을 포함 당시 법 제정을 주도했던 열린우리당 소속의 신기남, 이미경 의원 등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독립군의 딸’이라고 주장했던 김희선은 부친인 김일련(金一鍊)씨가 만주국 유하경찰서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는 特務(특무)였음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警察戰史(경찰전사)》의 저자인 金珖燮(김광섭)씨는 2004년 11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만주국 경찰의 특무(特務)라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 비밀경찰인 특별고등경찰(特高)과 같다”면서 “비밀 정치경찰, 고등경찰 등을 약칭해서 特高(특고)라고 불렀고, 이들은 독립운동가와 사상범에 대한 ‘잔학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기남은 2004년 7월 14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당시 “농사꾼이 논에서 잡초 뽑을 때 가리지 않는다”면서 “몇몇 친일 언론사 등에 대한 관심은 주가 아니며 우리 민족이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 법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신 씨의 부친인 신상묵 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일본군에 지원 총독부 국군병 지원자 훈련소에 입대 했던 사실이 2004년〈신동아〉보도로 밝혀졌다.  

    일본식 이름인 重光國雄(시게미쓰 구니오)로 창씨 개명한 신기남의 부친은 훈련소를 수료한 뒤, 반도호텔에서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좌담회에 참석했고,〈매일신보〉는 당시 좌담회를 8회에 걸쳐 장기 연재했었다.  

    당시〈매일신보〉보도에 따르면 신상묵은 좌담회에서 “나는 반다시(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복종하야(해야) 되겟다는(되겠다는) 정신수양을 하게 되엇습니다(되었습니다)”라고 일본군 입대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 신상묵의 대구사범학교 5기 동기생인 송재천 씨는〈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1943년 6월 충북 옥천 죽향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일본군 오장(伍長·지금의 하사) 군복을 입은 신 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해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기남 자신도 이 같은〈신동아〉보도와 관련, “선친은 일제시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교사생활 하다 군에 입대한 것으로 들었다”면서 부친의 일본군 복무사실을 시인했다.

    한편, 이미경 의원은 2004년 8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부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했던 사실을 스스로 ‘커밍아웃’했다. 그는 부친의 일제 때 행적과 관련, “지난해 말 고향 어르신의 말을 듣고 올라와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밝힌 뒤, “그러나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기 파괴적 선전·선동에 불과했던 친일진상규명법은 2010년 ‘對日(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