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단원들과 16일 부천아트센터서 체임버 콘서트…브람스 작품만 연주
  •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지난 16일 저녁,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깊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언제나 무대 중앙에서 홀로 빛나던 빛나던 솔리스트가 아닌,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음표를 나누는 '실내악 연주자이자 앙상블 음악가'로서의 조성진(32)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2024~2025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주 연주자로 활동하며 악단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온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직접 초대한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브람스의 대표 실내악 곡들을 선보이는 특별한 무대였다.

    이날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다이신 카시모토, 클라리넷 수석 벤젤 푹스, 호른 수석 슈테판 도어, 한국인 최초 베를린 필 종신 단원인 비올리스트 박경민, 그리고 최근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란계 오스트리아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무대에 올라 실내악의 정수를 들려줬다.

    이번 공연은 전·후반 프로그램 전체가 낭만주의 거장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작품들로만 구성됐다. 조성진의 화려한 단독 협연이나 독주 대신 오밀조밀하고 밀도 높은 실내악 무대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관객에게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
  •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1부의 시작은 브람스가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말년에 남긴 걸작 '클라리넷 삼중주 a단조'였다. 푹스의 따뜻하고 맑은 클라리넷 음색은 고색창연한 정취를 자아냈고, 솔타니의 첼로는 강렬한 첫 활 긋기로 단숨에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 삼중주에서 조성진은 자신의 소리를 앞세우기보다 배려에 집중했다. 1악장에서는 푹스의 클라리넷 선율을 묵묵히 뒷받침했고, 3악장에서는 첼로와 클라리넷이 주고받는 독주에 맞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포근한 앙상블을 완성했다.

    이어 연주된 '호른 삼중주 e플랫장조'에서는 피아노의 역할이 조금 더 부각됐다. 브람스가 타계한 어머니를 애도하며 작곡한 이 곡은 도어의 깊고 먹먹한 호른 소리를 통해 '검은 숲'이라 불리는 독일 바덴바덴 숲의 서글픈 풍경을 연상시켰다. 카시모토의 바이올린과 담백하게 어우러진 조성진의 피아노는 특히 3악장에서 섬세한 터치로 독주 파트를 소화해 내며 차분하고도 우울한 선율을 새겨 넣었다.

    2부는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로 채워졌다. 실내악에서 4중주는 각 악기의 음색이 가장 완벽하게 융합되고, 네 개의 성부가 균형 잡힌 음향을 창출하는 이상적인 형식으로 꼽힌다. 장르 특유의 협주곡처럼 두드러지는 피아노와 현악기의 대조 속에서도 조성진은 중심을 잃지 않는 성숙한 조율 능력을 보여줬다.
  •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 체임버 콘서트.ⓒ부천아트센터
    조성진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여린 음형과 섬세하게 조정된 음들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집시 풍 론도'로 알려진 4악장에서는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가 톱니바퀴처럼 확실하게 맞물리며 휘몰아쳤다. 마치 하이든의 고전적 위트를 19세기 낭만주의의 장대한 환희로 옮겨놓은 듯한 에너지로 연주가 끝맺어지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실내악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보다 연주자 간의 긴밀한 유대와 대화가 중시되는 장르다. 조성진은 앞선 인터뷰에서 "실내악은 기술적 수준보다 서로 간의 호흡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단단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브람스 특유의 따뜻한 서정성이 더 풍부하게 피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무대 위의 거장들은 기교를 뽐내기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모습으로 브람스의 밀도 높은 화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냈다.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e플랫장조' 중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이 따뜻한 배려의 정점이었다.

    완벽한 계산과 수행력만을 놓고 본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이날 부천에서 연주자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섬세한 감정의 교감, 소리를 양보하고 길을 터주며 빚어낸 앙상블은 왜 예술에서 기계적인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정체성과 신뢰가 더 가치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